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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속에 들어온 한 권의 책]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나, 라는 건 아니다"

은희경,『새의 선물』, 문학동네, 2014

2015-05-02     원대신문

 

 

"삶이 내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열두살에 성장을멈췄다"
   소설은 주인공 진희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조숙한 열두 살 소녀이다.
어머니가 자살하고, 외갓집에서 외할머니, 이모와 함께 살고 있는 진희의 성장기가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진희를 통해, 작품 속에서 제시된 새로운 여성상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었다.동네 여성들을 바라보는 진희의 시선은 독특하고 재미있다. 과부이며 소문 캐내기 좋아하고 하숙하는 선생과 바람을 피우는 장군이 엄마, 남편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매번 다시 돌아오고 마는 광진테라아줌마, 통속적인 로맨스를 꿈꾸는 진희의 철없는 이모까지, [새의 선물] 에는 통속적인 형태의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진희는 그녀들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진희는 처녀성을 가져간 사람에게 운명을 맡기는 여자의 선택을 바보 같다고 여긴다. 남녀 간의 경험이란 운명이 아니라 우연적 사건에 불과하며, 이는 여성이 성에 대한 금기를 강요받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진희는 금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금기에 대한 죄 또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남성 성기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남성들의 사타구니를 바라보는 습관을 들인다. 첫 키스를 치르고 난 뒤에도 그 상대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진희는 순결 이데올로기나 여성의 성적 금기에서 보다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여성상' 에 대해 기존 문학작품을 조사하다보니 '여성다운 멋, 사랑의 베풂을
통한 인간미와 순결함, 그 참모습.' 이라고 설명된 부분이 많았다. 그 말에 따르면 여성의 내면을 대표하는 것은 순결성인가. 내면적으로 악한 여성이라도 육체적으로 순결하면 성처녀가 되는 것인가.내면적으로 선하더라도 처녀가 아닌 이상, 정숙한 여인이 아닌 것인가. 기존의 여성상은 상당히 고루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진희는 자신이 좋아했던 허석의 하모니카 불던 실루엣이 실제로는 더러운 낯빛의 구부정한 아저씨였다는 것을 알고 로맨스의 허상을 깨닫게 된다. 진희는 상황과 이미지에 반하여 허석을 좋아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 이미지를 사랑했다면 이 더러운 낯빛의 아저씨 또한 사랑해야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자기기만적 로맨스의 실체를 폭로하고 있는 부분이다. 은희경은 진희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삶은 농담인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순결, 혹은 운명론적인 이데올로기에 갇혀 자유와 삶이 구속된채 살아가고 있다. 진희는 여성에게 지워진 암묵적인 금기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모두 운명을 가장한 우연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자연스럽고 농담처럼 유쾌하고 무겁지 않게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보부아르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닫는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백재열(문예창작학과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