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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람을 만드는 것은 매너다

영화 - 매튜 본 감독, <킹스맨> (2015)

2015-05-17     원대신문
 
 거짓말이다. 이 작품은 사실 번듯한 남자가 장애인 여자를 패는 영화다. 영국 백인 귀족이 미국의 흑인을 때려눕히는 영화다. 양자는 기사도와 자본을 무기로 삼아 싸운다. 하지만 <킹스맨>은 단순한 스파이 영화가 아니다. 장르적 문법을 계승하면서 벗어나기, 각종 패러디의 향연, 사이드킥 영웅의 진화에 대한 수다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그들은 왜 영화의 명대사이기도 한 이 글의 제목을 배반하는가.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형식이기 쉽다. 먼저 영화의 표층을 살펴보자. 음식 수레에서 햄버거가 나왔지만, 귀족인 해리는 그것을 만찬이라고 한다. 이야기의 틀도 그렇다. 정장을 차려입은 첩보원이 우산을 들고 싸우는 멋진 장면들은, 고전적 영웅서사 코스에 충실히 담겨서 관객에게 서빙된다. 출생의 비밀을 가진 에그시가 비밀 조직에 들어가 성장하고, 마침내 악당을 물리치고 귀환한다. 이 명예는 나눠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선대의 영웅인 해리는 도덕적 결함을 안고 조력자로 남는다. <배트맨>과 <로빈 비긴즈>가 한 편에 담겨 있다.
 이 영웅들은 아서왕의 후예로서 이름을 물려받았다. 원탁의 기사(인간)들이 발렌타인(성자)과 가젤(자연)에 맞서 싸운다. 스파이 영화에서 신과 인간의 대결 구도라니! 그분께서 가라사대, 인간은 지구의 암세포이니라. 그래서 성자가 전하는 복음은 대량학살. 가이아 이론은 이렇게 폭력적인 에코파시즘의 형태로 부활한다. 물론 광신이다. 어쨌든 성자도 사람이니까. 문제는 악당이 자신도 정의의 영웅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하고 하나의 정의가 살아남았다. 자, 세계는 구원받았는가? 글쎄다. 영화에서는 킹스맨이 십억 명 이상의 목숨을 살린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발렌타인이 폭력 유발 장치의 스위치를 누를 때마다 세계 각지에서 폭력이 발생한다. 야구장 폭동, 거리의 소요, 주인공의 어머니가 딸을 죽이려 드는 모습이 날씨 보도처럼 중계된다. 그런데 이 장면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벤치클리어링, 시위 진압, 유아 살해 등은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세계의 폭력은 오늘도 맑음. 이 지점에서 킹스맨의 활약은 활극이 되고 만다.
 영화는 폭력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해리가 매너에 관해 매섭게 훈도했던 불량아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듯이. 그렇다면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무엇인가. 해리의 말에 단서가 있다. "manners maketh man" 여기서 man-ner-s를 '사람을-사람답게-만드는 것-들'이라고 읽어본다. 그것은 도덕이다. 우리는 착하게 살진 못해도 매너 있게 행동할 수는 있다. 대부분의 분란은 정보의 부족에서 오고, 왜 그랬는지 알면 상대를 미워하기 힘들어진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일. 예의라는 형식으로 타인에게 건네지는 배려와 존중. 영화의 연출이 그렇듯 메시지도 알고 보면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도덕이다. 여전히

 김솔(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