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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속에 들어온 한 권의 책] 사람이 사랑없이 살 수 있나요?

에밀 아자르,『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2003

2015-09-06     원대신문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본문 중에서) 
 제 부모에게 버림받은 열네 살 소년 모모는 창녀 출신의 로자 아주머니 집에서 다른 고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모모가 살고 있는 허름한 7층 아파트는 가난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그와 고아들에게 삶과 세상은 한 편의 난해한 이야기다. 모모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결코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다양한 인종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살아 돌아온 유대인, 버림받은 창녀의 자식들, 상처를 감추고 살기 위해 웃음을 팔아야 하는 창녀들, 주위에 아무도 없이 오직 빅토르 위고의 소설책만을 벗 삼아 늙어가는 하밀 할아버지, 두 가지 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트랜스젠더, 살인자, 버림받고 잊혀져 가는 사람들. 모모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소진되어 가는 삶에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를 내면에 지니고 살아간다. 그것은 '사랑'이다. 그들에게 '꿈'도 '희망'도 없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고아들을 맡아 키워주는 로자 아주머니를 비롯한, 모모 주변의 사람들은 그에게 모두 사랑을 일깨우고 생을 가르치는 스승들이다. 모모는 이들을 통해 절망과 슬픔을 견디는 내적인 힘을 기르는 법을 배우는 동시에, 각자의 삶을 껴안고 그 안의 상처까지 보듬을 수 있는 법을 배운다. 열네 살 모모에게 찾아온 성장통은 아프지만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과정을 동반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삶에 대한 무한하고도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그 지독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소외되고 상처받은 생들에게 있어서 잔인한 작품이기도 하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모모의 등에 지워진 삶의 무게는 가혹하다. 하지만 모모는 생의 무게를, 너무 일찍 알아버린 인생의 슬픔을 내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냉소로 그 무게를 떨쳐내려 한다. 하지만 그 냉소가 가슴 아픈 것은 그것이 무수한 눈물들이 굳어버린 흔적이기 때문이다. 생은 지닌 것이 없는 모모의 생에게서 빼앗아가기만 한다. 
 시간이 갈수록 고아인 모모를 길러준 로자 아주머니의 몸과 정신이 쇠약해진다. 하지만 그녀를 보살피는 사람은커녕, 찾는 사람조차 없다. 모모는 로자 아주머니가 죽어가자 홀로 끝까지 그 곁을 지킨다. 로자 아주머니가 힘겹게 내뱉은 마지막 말은 다름 아닌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이었다.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 작품 내에서 보여지는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애정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점이 안타깝다. 로자 아주머니를 떠나보내고 모모는 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하밀 할아버지를 다시 찾아간다. 그리고 다시 질문한다.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머뭇거리며 답을 하지 못한다. 
 가진 것 없고 무시 받는 이들의 삶을 지켜보고 떠나보낸 끝에 마침내 소년이 깨달게 되는 것은 생의 또 다른 말이자 필연적으로 추구해야 할 진리이다. 그 생의 비밀, 혹은 신비는 모모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함축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갈 수가 없다. 등 돌리고 살아갈 수도 없다. 사람을 외롭게 하고 상처주는 것이 사람이라면,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품어주는 것 또한 사람이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마침내 모모는 성장통 끝에, 작품의 첫 부분에서 하밀 할아버지에게 던졌던 질문의 답을 스스로 알아낸다. 자신이 만들어낸 소년에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작가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는 답을 길게 말하지 않았다.
 사랑해야 한다. 
 백재열(문예창작학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