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카지노

[원광리포트] 21세기, '마음의 양식' 도 '스마트'인가요?

기술적 발전이 닿지 않는 구역, 감성

2015-11-15     원대신문

 

 

  은행잎이 나풀나풀 떨어지며 캠퍼스 곳곳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낙엽을 밟으며 걸어 다니다 보면 독서에 대한 생각이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독서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이게 된다. 종이책을 읽을 것인가, 전자책을 읽을 것인가?
   최근의 사회 풍토는 전자책에 좀 더 시선을 많이 주는 추세다. 그렇지 않아도 모든 게 첨단화된 시대다. 쇼핑도 인터넷으로 하고, 배달음식 주문도 전화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하고, 강의 역시 직접 학원이나 학교에 가서 들을 필요 없이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클릭 몇 번으로 들을 수 있다. 마음의 양식 역시 디지털 방식으로 쌓아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그러나 KTX가 있어도 느림의 낭만을 추구하며 무궁화 열차를 타는 사람들이 있고, SNS가 있어도 손 편지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있듯, 더 편리한 방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전자책과 종이책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니, 오히려 종이책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종이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캠퍼스의 나무 사이를 헤쳐 나가듯, 그 이유를 헤쳐보기로 한다.

   소나기처럼 짧고 굵게 내린 전자책
   시대가 디지털화되면서부터 아날로그적인 것들에 '위기론'이 붙기 시작했다. 라디오가 처음 생겼을 때는 신문의 뒤에 '위기론'이 붙었고, 핸드폰에 카메라 기능이 생겼을 땐 기존의 카메라 뒤에 '위기론'이 붙었다. 종이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8년 실리콘밸리 벤처기업 누보미디어가 전자책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로켓 전자책(Rocket e-book)을 선보이자 종이책의 뒤에도 위기론이 붙었다. 미래학자들은 이것이 출판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곧 종이책은 전멸할 것이며, 전자책이 출판계를 독점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 2010년에는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의 저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종이책의 소멸은 이미 시작됐으며, 이것은 5년 이내에 현실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2011년에는 미국에서 전자책 매출이 9천 3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종이책 매출액 8천 120만 달러를 넘어섰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같은 첨단기술의 발전도 전자책의 고속성장에 큰 몫을 했다.
   학교나 아파트에 수없이 많은 전자도서관이 생겨났다. 우리대학 중앙도서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홈페이지에 구축되어 있는 전자정보원을 통하여 원하는 분야의 책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도 어플만 깔면 원하는 책을 바로 즉석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굳이 몸을 움직여서 대출을 하고 들고 와야 하는 종이책에 비하면 상당히 편리한 방식이다. 김광태 중앙도서관 운영관리과 담당관은 전자책의 장점에 관하여 "방학 때도 시간과 장소에 제약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대학 학생들의 전자책 이용률은 학기 때보다 방학 때 훨씬 더 높은 편이다"며 "오디오북이라고 해서 책을 읽어주는 기능도 있다. 이것 역시 전자책의 연장선인데, 시각장애인들도 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평소 전자책을 자주 이용한다는 정희찬 씨(경찰행정학과 2년)는 "전자책은 간편하고 부피도 없다. 게다가 자동으로도 반납이 되는데, 이것이 전자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전자책을 선택한 사람들은 편리함을 가장 큰 장점으로 말한다. 편리함은 우리의 과학 기술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소나기 그치자 다시 무지개처럼 뜬 종이책
 이토록 전자책의 편리함이 공공연함에도 불구하고, 출판시장은 여전히 종이책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이는 종이책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이다. 종이책이 곧 소멸할 것이라던 미래학자들의 예측처럼 하늘 높이 올라가던 전자책의 상승세는 최근 밑으로 꺾이는 추세이다. 한때 전자책의 매출이 종이책을 앞질렀던 미국에서도 2015년 들어서 전자책 매출이 10%나 하락했다. 그에 반해 종이책의 매출은 20%나 늘었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지난 2014년에는 신세계와 SK플래닛에서 각각 운영하던 전자책 전문 서비스가 잇달아 종료됐다.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에 따르면, 오프라인 도서를 포함한 전체 매출에서 전자책이 차지하는 비율은 3.5%에 불과하다. 국내 출판사들은 전자책의 저조한 매출에 전자책 출판을 꺼려하는 눈치다. 모든 게 첨단화되었지만, 독자들의 독서 습관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았다.
   평소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자주 이용한다는 우리대학 한문교육과 졸업생 김영비 씨는 전자책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눈이 아파서"라고 말했다. "전자책은 기계가 있어야 이용이 가능한데, 종이책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또한 종이책이 확실히 책 넘기는 맛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기계'라는 것은 전자책에 있어서 장점이 되지만 단점이 되기도 한다. <수집의 즐거움>의 저자 박균호 씨는 인터넷 신문인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에서 종이책의 장점에 관하여 "전원과 추가 기기가 필요 없다. 한 두 권 정도라면 오히려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휴대성이 더 좋다. 전원이 필요 없다는 점이 얼마나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 또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종이책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전자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기계'를 오히려 단점이라고 꼬집는다.
 전자책의 도입이 동네 서점의 설 곳을 잃게 할 거라던 예측도 틀렸다. 영등동에서 서점을 운영 중인 김소현 씨는 "전자책 가격이 지금보다 더 떨어진다면 모를까, 지금까지는 전자책 때문에 서점이 직접적으로 위기를 맞았다고 느낀 적은 없다"고 밝혔다. 종이책은 여전히 독서의 본질이요, 근본인 셈이다.

   전자책, 홍수도 가뭄도 안 돼... 종이책과 상생 필요
   마냥 종이책만을 출판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안 그래도 지구온난화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종이책만을 고집하는 것은 계속 나무를 베어야 함을 뜻하므로 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출판 전문가들은 전자책과 종이책이 서로 잡아먹는 관계여서는 안 되며, 함께 나아가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자책은 전자책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있고, 종이책은 종이책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전자책은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가 하면 모르는 단어를 실시간으로 바로 찾을 수도 있다. 이는 종이책이 제공할 수 없는 기능이다. 그런가하면 종이책은 전자책과 달리 떨어뜨려도 부서질 염려가 없으며, 원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을 수도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전자출판팀에서 근무하는 정현진 씨는 종이책과 전자책의 전망에 관하여 "서로 역할을 어떻게 분담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사실은 둘 중 어느 것도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전자책과 종이책은 함께 상생해야 한다. 하나만 성장하면 그것은 출판시장에 있어 홍수와 같은 재해나 마찬가지이다.
 다시 선택지로 돌아온다. 독서를 다짐한 우리 앞에는 전자책과 종이책 두 개의 선택지가 놓여 있다. 멀티미디어적 기능이 더 중요한 사람은 전자책을 선택할 것이고, 종이의 질감이 더 좋은 사람은 종이책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종이책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실이다. 다양한 기업에서 멀티미디어를 강조하며 핸드폰과 같은 하나의 기계 안에 여러 기능을 넣으려고 노력하는데, 독서에 있어서는 그러한 기능이 중시되지 않는다는 점이 모순적이다.
 캠퍼스를 걸어본다. 낙엽이 부석부석 밟힌다. 꼭 책 넘기는 소리 같다. 기술의 발전이 아무리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든다 한들 결코 닿을 수 없는 구역도 있다. 그 구역이란 바로 '감성'이다.

박서영 수습기자 hisyiya@w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