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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속에 들어온 한 권의 책] 원자력, 헬리오스의 태양마차

히로세 다카시,『체르노빌의 아이들』,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06

2016-03-19     원대신문
▲ 히로세 다카시,『체르노빌의 아이들』,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06

  예전에 모 일보에서 '원자력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라는 칼럼을 접한 적이 있었다. 원자력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예찬하는 내용이었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따르면, 다른 동물에 비해 나약한 인간을 가엾이 여긴 티탄신족 프로메테우스는 금기사항을 어기면서까지 인간에게 불을 선물했다. 불은 인간에게 내려진 최고의 축복이었다. 불은 문명의 발전을 가져왔고, 인간을 최상위 포식자로 격상시켰다. 그 불은 보존되어 오늘날 원자력이라는 정점에까지 도달했다.
그렇다면 나는 저 원자력을 '헬리오스의 태양마차'라고 부르겠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따르면, 태양신 헬리오스는 아들 파에톤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만이 제어할 수 있는 태양마차(태양 자체를 상징한다)를 내주었다. 결국, 제어에서 벗어난 태양은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왔다. 원자력은 태양처럼 인류에게 이로운 점이 많지만, 제어에 실패하면 그 대가는 참혹하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루고 있는 르포 소설이다. 작품은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남방 약 130km 정도 떨어진 도시, 체르노빌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고요한 새벽, 느닷없이 원자력 발전소에서 불기둥이 치솟는다. 발전소의 책임자인 안드레이는 가족들과 함께 피난 준비를 마친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정부에 의해 강제로 원자력 발전소로 끌려간다. 피난민들은 도시를 벗어나지만, 정부의 잘못된 통제 때문에 오히려 피난 속도가 느려진다. 방사능 가스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피난민들을 뒤덮는다. 하지만 정부는 자신들의 입장만을 고집할 뿐이다. 그들은 방사능 가스로 가득한 원자력 발전소에서 명령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던 자킬로프를 즉결 총살한다. 그 현장에서 방사능 가스에 노출되어 죽음을 직감하고 아내와 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탈주한 니콜라이를 붙잡아, 배신자라고 선전하며 총살한다. 사망한 갓난아기를 즉시 엄마의 품에서 떼어가 땅에 파묻어 버리는 정부 관계자들, 실명한 아들과 죽어가는 딸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모습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처참함과 원자력의 공포를 우리에게 생생히 전해준다.
소포클레스나 에우리피데스조차 꿈도 못 꿀 비극의 정점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에 벌어졌다. 살아남은 방사선 피폭자들의 고통은 사망자를 부러워할 정도였다. 그들에게 죽음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피는 응고되지 않고, 걷기도 말하기도 보기도 힘들었다. 죽기 전 몸이 애드벌룬만큼이나 불어난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온몸이 숯처럼 새까매지고 허수아비처럼 몸이 말라갔다고 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겪은 인류는 곧, 원자력의 시대를 벗어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체르노빌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그 사건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인간 지각인식의 한계다. 지난 2011년에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했다. 한국에는 2013년 기준으로 23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있으며, 5기가 건설 중에 있다. 서쪽에서 체르노빌이, 동쪽에서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우리의 원자력 발전소는 전적으로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위해 개발한 것이 전쟁보다 더 끔찍한 비극을 만든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류에게 '핵 딜레마'를 던져 주었다. 비극의 땅 체르노빌, 그 이름은 오늘날 우리에게 원자력의 양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우리는 헬리오스의 태양마차를 이 지상으로 스스로 끌어내린 것일지도 모른다.

백재열(문예창작학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