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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말로는 표현해낼 수 없었던 슬픔, 상실의 문장

박완서,『한 말씀만 하소서』, 도서출판세계사, 2004

2016-04-10     원대신문
 

  과거 동아일보사에서 출간한 이순신 장군의『난중일기』완역본을 읽은 적이 있다. 조조(曹操)나 카이사르처럼 군인들의 문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사를 배제한 건조한 문체이다. 이순신의 문체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감정이 온전히 드러난 부분은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한 군데, 막내아들을 잃고서 남긴 기록, 그 부분만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의 슬픔이 처절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감정을 배제하려는 군인의 문장도 이럴진대, 독자에게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단련된 작가들의 문장은 어떨까. 정지용『유리창』, 김광균『은수저』,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는 지금도 독자의 목을 먹먹하게 한다.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고(故) 박완서 작가의 작품『미망』에 등장하는 문장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깊은 한을 뜻한다. 박완서 작가도 자식을 잃은 아픔을 알기에, 이렇게 절절한 글로써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아들을 잃고 나서 남긴 수기가 바로 이번에 소개할 작품인『한 말씀만 하소서』이다.
  올림픽으로 전국이 축제의 분위기였던 1988년 여름, 글쓴이는 하나뿐인 아들을 잃는다. 자신이 낳은 다섯 자녀 중 외아들이었으며 향년 25세의 젊은 의사였다. 아들의 장례식 당시에도 글쓴이가 어찌나 슬퍼했던지 누군가 주사로 기절시켜 장례에서 빼돌릴 정도였다고 한다. 글쓴이에게 술과 수면제 없이는 잠들 수 없는 괴로운 나날이 이어진다. 하지만, 아들은 죽어 땅에 묻힌 지 오래고 자신은 이토록 괴로운데, 세상은 올림픽으로 축제 분위기이다. 글쓴이는 자신을 집으로 모셔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딸의 가정에 어두운 분위기만 끼칠까 봐 우려하는 와중에도 아들을 잃은 슬픔만은 도저히 억누르지 못한다.
  어느 날, 글쓴이는 이해인 수녀의 방문을 받는다. 글쓴이는 그녀의 제안에 따라 부산에 있는 분도 수녀원 으로 요양을 간다. 그곳에서 글쓴이는 기도하며 끊임없이 신에게 묻는다.

  생각하는 대로 꿈을 꿀 수 있는 거라면 매일 아들 꿈을 꾸련만 그 애를 꿈에라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애를 왜 데려갔는지 한 말씀만 하시라고 처절하게 기도하고 몸부림친 끝에 꾼 꿈이었다. 내 인식의 한계를 초월한 신의 계시 같은 게 있어야 마땅했다.
(본문 중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글쓴이는 이 시기에 신을 무척 욕하고 원망하며 무신론적 회의에 빠져들었노라고 말한다.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주님, 당신은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가. 한 말씀만, 제발 한 말씀만 해 달라…….'
  글쓴이의 고통이 묻어나는 기도는 본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어느 날, 글쓴이는 어린 수녀가 친구와 대화하는 것을 듣고 사고의 전환을 생각해낸다. '왜 하필 내 아들을 데려갔을까'를 '내 아들이라고 해서 데려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로 고쳐, 지표로 삼겠노라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 후로도 아들을 잃은 고통만은 여전하여 글쓴이는 미국으로 떠난다. 처음엔 이국에서 평온을 찾기 위해 떠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글쓴이의 외로움이 강해진다. 결국, 글쓴이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다른 소중한 이들을 통해서 잊게 된 것이다.
  이 수기는 자녀를 잃은 부모의 심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 심정은 언어로도 감히 표현하기 힘든 슬픔을 독자에게 전달하여,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상실을 표현한 문장이 있다.
  하지만 소중한 이를 잃은 심정을 이렇게 가슴 절절하게 기록한 글을 나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백재열(문예창작학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