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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속에 들어온 한 권의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설국』, 문예출판사, 2004

이 생(生)에서 아름다움만을 보고자 했던 작가

2016-04-29     원대신문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본문 중에서)

   지난 4월 16일은 일본의 소설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기일이었다. 소설,『설국』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하며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에 이어 아시아의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다. 그는 언어로써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한계, 그 이상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고, 과정은 외롭고 처참했기에 선뜻 아름답다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1972년 4월 16일,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숨을 거두었다. 향년 73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지 3년만이었다. 자택에서 입에 가스관을 문 채로 발견되었다.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유서를 남기지 않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만한 동기도 없었다. 쓰다만 원고지에는 '또' 라고 단 한 자가 쓰여 있었고 만년필 뚜껑은 열린 채였다. 자살은 깨달음의 자세가 아니라고 말해왔던 그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에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왔기에 일본문단뿐만이 아니라 세계문학계의 충격도 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학세계에는 죽음에 대한 미학과 영원에 대한 동경이 깊이 녹아들어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는 세 살도 채 되지 않아 부모를 모두 잃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와 할머니까지 세상을 떠났다. 백내장을 앓다가 실명한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으나 그마저도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떠나보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미 10대에 생의 허무함과 소중한 이들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가 문학으로서, 생의 허무함과 죽음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자 했던 것은 바로 아름다움이었다. 생의 허무함과 죽음을 영원으로, 보다 비현실적인 세계와 인간사의 잡티들을 모두 제거한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승화했다.
   『설국』은 그가 추구했던 미학적인 요소가 집대성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고전무용 비평가인 시마무라는 북쪽 설국의 온천장으로 떠난다. 그는 가족이 있는 가장이건만 고마코라는 게이샤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고마코는 정식 게이샤가 되기 전부터 시마무라와 인연이 깊다. 고마코는 현재 제 스승에 대한 은혜와 의리 때문에 스승의 아들을 돌보고 있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에게 편안함을 느끼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열차 안에서 시마무라는 요코라는 여자와 동행하게 된다. 고마코의 친구이며 라이벌이었던 요코는 고마코가 스승의 아들에 대해 아무런 애정이 없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스승은 고마코를 자신의 며느리로 삼고자 했기 때문이다. 작품이 전개될수록 시마무라는 요코에게 점점 빠져든다.
   주제와 서사에 의존하는 현대소설이『설국』에 와서는 말을 잃는다. 플롯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설국』은 사실 '읽기'보다는 '감상'하는 작품이다. 비록 서사의 감흥은 독자에 따라 덜 받을 수도 있으나, 신비의 경지에 가까운 섬세한 묘사는 분명 문학만이 일궈낼 수 있는 예술의 성취이다.
   스웨덴 한림원 노벨 시상식장에 섰던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는 에도시대 승려 시인 '료칸'의 시를 읊었다.

   내 삶의 기념으로 / 무엇을 남길 건가 / 봄에 피는 꽃 / 산에 우는 뻐꾸기 / 가을은 단풍 잎새

   이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보고자 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에게는 현실로는 충분치 않았다. 마법이 필요했다. 그는 결국 영원 속으로 걸어갔다.

백재열(문예창작학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