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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 예술은 우리는 어떻게 치유하는가?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읽기

2021-03-07     원대신문

 

 I.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년 12월 20일 ~ )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철학자, 소설가, 수필가이다. 1988~1991 캠브리지 대학교 역사학과 졸업하고, 1991~1992 런던 킹스칼리지 철학 석사를 취득했으며,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중퇴한 뒤, 런던 킹스칼리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국 런던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 중이다.

 알랭 드 보통의 저서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다양한 현대의 주제들을 철학적인 문체로 다루고 있으며, 일상의 삶과 철학의 관련성을 강조한다. 2008년 8월 보통은 런던에 새로운 교육시설의 창립 구성원이 되었는데 그곳의 이름은 "인생 학교"(The School of Life)였다. 이 삶의 학교는 2014년 6월에 한국에도 세워졌다. 또 2009년 5월에는 새로운 건축단체의 창립 구성원이 되었으며, 그곳의 이름은 "살아있는 건축"(Living Architecture)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문체는 현학적이라는 평도 있지만, 현대인의 심리를 꿰뚫는 예리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유명하다. 그의 글은 항상 각오를 하고 읽어야 하지만, 일단 임계점을 넘으면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매력이 있다. ‘아름다운 문체를 구사하는 영국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저서

《왜 나는 너를 사랑 하는가》(Essays in Love, 1993)

《우리는 사랑일까》(The Romantic Movement, 1994)

《너를 사랑한다는 건》(Kiss & Tell, 1995)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How Marcel Proust Can Change Your Life, 1997)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The Consolation of Philosophy, 2000)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 2002)

《불안》(Status Anxiety, 2004)[6]

《동물원에 가기》(On seeing and noticing, 2006)

《행복의 건축》(The Architecture of Happiness, 2006)

《일의 기쁨과 슬픔》(The Pleasures and Sorrows of Work, 2009)

《공항에서 일주일을: 히드로 다이어리》(A Week at the Airport, 2009)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Religion for Atheists : A Non-believer's Guide to the Uses of Religion, 2011)

《철학의 위안》(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 2012)

《사랑의 기초-한 남자》(2012)

《슬픔이 주는 기쁨》(On seeing and noticing, 2012)

《인생학교: 섹스~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How to Think More about Sex, 2012)

《영혼의 미술관》(Art as Therapy, 2013)

《뉴스의 시대: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The News: A User's Manual, 2014)[8]

《낭만적 사랑 그 후의 일상》(The Course of Love, 2016)

《위대한 사상가》(Great Thinkers, 2016)

 

 마지막 저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그는 깊이 있고 어려운 철학이 아니라“인생 철학life philosophy”을 추구하고 전파한다. 철학과 미학의 바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항상 무언가를 가르치려 드는 목소리 굵은 저자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함께 걸으면서 가볍고 상냥한 목소리로 삶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친근한 작가다. 보통은 철학이나 예술의 ‘깊이’를 따지는 철학자가 절대 아니며,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완전해진다’고 말하는 성숙한 친구, 삶을 같이 나누는 “인생 철학자”인 것이다.

 

II.

 <영혼의 미술관>에서 “인생 미학자” 알랭 드 보통은 현대인을 위한 “삶의 예술론”(미학은 철학의 한 갈래다)을 개진한다. 그는 복잡한 미학이나 정교한 예술론을 모두 걷어내고, 오로지 지금 여기 살아가는 현대인의 직관과 감수성으로 예술에 접근한다.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인생의 질문들이 있다. 출판사 서평과 목차를 살펴보자.

 이 책은 예술작품이 우리의 고단한 삶을 보듬어 안고 한편으로 우리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예술의 치유 기능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이 특유의 철학적 글쓰기를 통해 써 내려간 독특한 책이다. 알랭 드 보통이 미술사가 존 암스트롱과 대화하며 직접 엄선한 전 시대의 빼어난 예술작품 140여 점을 선보이고 있는 이 책은, 한편으로 알랭 드 보통만의 위트 있고 섬세한 필치가 예술작품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더욱 그 빛을 발한다.

 

1부 방법론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

예술의 핵심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훌륭한 예술로 간주하는가?

어떤 종류의 예술을 창작해야 하는가?

예술은 어떻게 사고팔아야 하는가?

예술은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가?

예술작품은 어떻게 전시해야 하는가?

 

III.

 그렇다면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예술의 기능은 무엇일까?

 첫째, 기억이다. 예술은 경험을 보존하는 방식이며, 일시적이지만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그 중요성을 오래 유지시킨다. 예술은 복잡성을 자르고 다듬어, 간략하지만 의미 있는 양상에 집중하게 해준다.

 푸른 옷을 입은 여인이 선 채로 편지를 읽고 있다(요하네스 페이메이르,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부른 배가 임신했음을 말해주고, 편지를 든 두 손과 얼굴에 긴장이 가득하다. 누구의 편지일까? 그녀의 머리와 겹친 벽에 걸린 지도가 편지와 함께 그 답을 암시한다.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 곧 어머니가 될 여자가 환한 빛에 물들어 멀리서 온 편지를 읽고 있다. 이 그림은 그런 순간의 감정을 우리에게 영원히 환기시킨다.

 둘째는 희망이다. 쾌활하고 즐겁고 예쁜 것들은 취미와 지성을 초월하여 인기를 누린다. 더구나 우리의 삶이, 세상이, 우리 생각만큼 따뜻한 곳이 아니라면 그 인기는 더욱 높아진다. 높이 41센티미터의 작은 성모마리아 상이 있다(생트샤펠 성당의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 성모는 환영하는 얼굴, 누군가 우리를 보고 무조건 반가워하는 모습에서 보고 싶은 그런 표정이다. 그런 미소를 만나는 일, 그런 미소를 선물 받는 일은 얼마나 드문가. 하지만 성모의 아름다움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편으로 인생이 어떤 빛깔을 더 많이 띠어야 하는지 깨달아 즐거워지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 자신의 삶은 대개 그렇지 않다는 절절한 느낌이 가슴이 아파온다. 이 세계에서 그 모든 천진무구함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셋째, 슬픔이다. 예술은 우리에게 고통을 더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다. 슬픔은 인생의 초기값이며, 혼자 견디지 말고 적절히 표출해서 무게를 덜거나, 더 높은 것으로 승화시켜야 할 재료라고 말이다.

 특히 예술에서 승화는 천하고 보잘것없는 경험이 고상하고 세련된 경험으로 변환되는 심리적 변형 과정을 가리킨다. 한 젊은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낸 골딘, <내 거울 속의 쇼반>). 어렴풋이 레즈비언임을 알아챌 수 있는 젊은 여성의 사진은 더없이 섬세한 구성을 보여준다. 열쇠는 거울이라는 장치에 있다. 거울 밖의 여자는 초점에서 벗어나 있고, 직접 보이는 부분은 얼굴의 옆면과 흐릿한 손뿐이다. 작품의 악센트는 그녀가 방금 전까지 사용한 화장 도구에 있다. 그 도구를 이용해서 그녀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그녀, 인상적이고 스마트한 모습, 세련되고도 웅변적인 손은 모두 거울 속에 있다. 작가는 친절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당신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 세련되고 우아한 자신이 되기를 바라는 그녀의 갈망을 이해하고 있다. 수 세기 동안 함부로 가질 수 없었던 그 소망을.

 넷째는 균형 회복, 다섯째는 자기 이해, 여섯째는 성장, 일곱째는 감상이다. 이밖에도 이 책은 좋은 예술의 판별 기준을 제시하고, 오늘날 예술을 사고파는 바람직한 방식, 예술 연구 방법, 작품 전시 방법들을 일별한다.

 

IV.

 알랭 드 보통은 현대 세계가 예술을 매우 중요하게,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본다. 새로 문을 여는 미술관, 정부의 예술 정책,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는 예술 수호자들의 열망, 예술학의 위상, 상업 예술시장의 위력이 그 증거다.

 그런데 예술은 종종 어렵고 따분하고 실망스러우며, 특히 현대 미술은 아리송하거나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럴 땐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탓하고, 문제는 분명 내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감상법을 알지 못한 데 있다고 자책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그가 보기에 문제는 주류 예술계가 예술을 취급하는 방식에 있다. 20세기 이후에 주류 예술계는 예술을 신비한 영역에 모셔두고 칭송하면서도, 예술의 목적과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침묵을 권유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예술작품 앞에서 고개를 갸웃하거나 가로저어왔다.

 이 책은 그 “예술 지상주의적” 구조를 뒤집어, 예술의 감상자이자 소비자인 우리의 필요에 예술작품이 어떻게 봉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글의 주요 주제가 ‘도구로서의 예술’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목차의 일부를 살펴보자.

 

1부 방법론, 1장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에서는 예술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일곱 가지 기능을 나열한다. 기억 / 희망 / 슬픔 / 균형 회복 / 자기 이해 / 성장 / 감상.

 

 이걸 보는 순간, 우리는 ‘아, 이 책은 예술론을 쓴 책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우리를 예술에 때려 맞추는 ‘권위’ 있는 책이 아니라, 예술을 우리의 필요에 맞춰 새롭게 재구성한 문학(거꾸로 읽지 말라!)적인 에세이다. 그래서 단점이 하나 있다. 학문적인 에세이에 이 책이나 저자의 말을 직접 인용하면, 평가자의 미간에서 갈매기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학점과 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 책은 신선하고 매우 유용한 시각을 제공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미술관의 구조와 작품의 배치를 새롭게 제안하고 구상해본다. 연대, 지역, 화파 등으로 작품을 구분해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별로 작품을 분류하여 전시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영국 테이트미술관을 비롯한 몇몇 미술관이 알랭 드 보통의 제안에 따라 미술관의 구조를 바꾸고 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배치했다고 한다.

 또한 흥미롭게도 저자는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고, 그 전략과 결과를 이 책에 수록했다. 저자가 예술가들에게 제시한 의제는 우리에게도 예술을 보는 아주 귀중한 눈이 될 수 있다. 그는 그 의제들을 정리하여 가상의 작품 의뢰 전략을 소개했다.

 

1. 사랑의 미덕 / 2. 사랑의 갈등 / 3. 섹슈얼리티 / 4. 슬픔, 불안 / 5. 불안정, 질투 /

6. 희망 / 7. 인간의 수명 / 8. 죽음의 경고 / 9. 노동의 즐거움 / 10. 노동의 슬픔 /

11. 타인 / 12. 자부심

 

<상례>

2. 사랑의 갈등

내용: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의 주요 원인들을 묘사해, 일상의 복잡성과 관람자들의 행동을 조화시키고, 자아수용과 공감 능력 향상을 격려한다. 하위 주제로, ‘연애의 단계’ ‘다툼의 단계’ ‘이혼의 슬픔’ 등이 가능하다.

목적: 미디어가 주로 초점을 맞추는 파국적 사건들(가령, 이혼이나 살인)보다는 연인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다툼을 상기시켜, 형벌처럼 느껴지는 외로움과 죄의식을 감소시킨다. 우리가 관계 유지를 위해 벌이는 다툼들을 덜 부조리하게 느끼도록 해주는 데 목적이 있다.

9. 노동의 즐거움

내용: 관람자에게 창의성, 협동심, 발명의 재주, 노동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목적: 자신의 전문 분야 밖에서 벌어지는 노동의 형태들에 대한 무지를 교정하고,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혜택을 가르친다.

11. 타인

내용: 처음 보는 순간 무엇이 정상인가에 대해 관람자가 자신의 의식을 반성하거나 의문시할 수 있도록 낯선 삶의 방식들을 묘사한다.

목적: 서로의 눈에서 타인을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는다. 명백히 반대되는 파벌들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정치적 협상 뒤에 놓인 각자의 처지를 알려준다.

 

V.

 예술은 미, 추, 숭고, 비속, 비극성, 희극성 등의 미학적 가치를 통해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는 특수한 소통 방식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쁨, 슬픔, 행복, 희망, 절망 등 수많은 크고 작은 감정을 느낀다. 감정과 함께, 감정 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이 삶의 온갖 사건들을 다루어 어떤 내용을 묘사할 때, 우리는 그에 감정으로 화답한다.

 우리는 예술이 전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수동적 존재가 돼서는 안 된다. 예술작품이 표현한 것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예술론과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데, 그 외에도 외부에서 받아들인 이론 및 경험에 자신의 삶을 조합하여 자신만의 예술적 기준을 빚을 필요가 있다. 예술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마중하는 것이 참된 감상이고, 예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삶을 위한 예술이 참된 인문학일 것이다.

김한영 번역가(『영혼의 미술관』의 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