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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사로 보는 영화] "4월 15일 오후 3시, 우린 1분 동안 함께 했어"

아비정전, 1990, 왕가위

2021-04-12     원대신문
 2년 전만 해도 만우절이라고 하면, 만우절을 핑계로 이런저런 장난을 주고받곤 했다. 5인 이상 집합금지 및 사회적 거리두기로 올해는 해프닝 없이 지나갔지만, 평소엔 못할 농담을 던져도 웃어넘길 수 있는 날이다. 또한, 매년 이맘때면 회자하는 사건이 있다.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이 호텔에서 투신한 일이다. 거짓말 같은 일이라는 말은 그것이 거짓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장국영의 자살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MZ세대에겐 장국영이 낯설지 모른다. 그러나 <아비장전> 속 그의 눈빛과 연기로 장국영이란 인물을 쉬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장국영이 연기한 아비는 바람둥이다. 그는 애인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만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 사랑이라고 일컫는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 누군가를 갈망한다.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상관없어 보인다. 하지만 쉽게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고 약속하지 않는다. 자신이나 연인에게 솔직하다. 목이 마르면 목마르다고,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고 또박또박 말한다. 그것이 아비가 받아보지 못한 사랑과 주지 못한 사랑을 좇는 방법이다.
 소려진과 루루는 그를 잊지 못하고 시름하는 인물들이다. '앓는다'는 표현이 적확할 듯하다. 아비라는 병으로 그들은 아파하고 몸부림친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아비에게 끌리고, 그를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아비장전>은 과거에 얽매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려진, 루루는 아비라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다. 아비는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남모를 과거에 머무른다. 그의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 까닭도 여기 있다.  아비는 소려진에게 작업을 걸기 위해 그녀가 일하는 축구 경기장 매점에 매일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녀에게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초심이 한 바퀴를 도는 시간을 함께했다. "1990년 4월 15일 오후 3시, 우린 1분 동안 함께 했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7년 전이었고, 무더운 4월이었고, 15일이었으며, 오후 3시 정각에 들어설 때였다. 아비와 소려진은 1분이라는 시간을 공유했다. 그 시간은 이미 과거가 됐고,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절대 변하지 않을 그 1분으로 인해 소려진은 아비를 오래 앓아야 했다.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은 모두 불쌍하다. 부모에 대한 사랑이든 연인에 대한 사랑이든 상처를 봉합하지 않으면 더욱 벌어질 뿐이다. 아비는 소려진과의 이별 후 만난 루루를 남겨둔 채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의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필리핀으로 떠난다. 그러나 말 한마디 섞지 못하고 문전박대당한다. 친부모가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 또한 뒤통수만 보여준다. 사랑을 받아보지 않았기에 사랑을 주지 않으려는 처절한 복수다. 주먹을 꽉 쥐고 돌아서는 아비의 뒷모습에선 서글픈 표정이 읽힌다.
 '발 없는 새가 있다. 그 새는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다. 그 새가 단 한 번 땅에 내려앉는 순간은 죽을 때다. 어쩌면 그 새는 이미 죽어있는지도 모른다.'
 홍콩영화 특유의 뿌연 필름과 몽환적인 분위기. 중국으로 반환되는 홍콩. 고독으로 점철되는 청년들. 그리고 아비의 눈, 그러니깐 장국영의 눈 속엔 모든 불완전한 것들이 깃들었다. 거짓말이었으면 좋았을 그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그를 불멸로 만들었다. 발 없이 나는 새와 같은 그는 우리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들키고 싶지 않은 우리의 불안은 그로 인해 드러난다. 매년 4월 1일이면, 우리는 장국영이라는 1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오병현 기자 qudgus0902@w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