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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여는 창] 개천에서 용 난다? 콩 심은 데 콩 난다

능력주의, 새로운 사회의 열쇠가 될 수 있나

2022-06-08     김정환

 스티브 잡스. 그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또래 아이들에게 고아라고 놀림을 받으며 불우한 과거를 보냈다. 풍족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을 중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여러모로 사고뭉치였던 그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스스로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잡스와 같은 인물을 두고 이런 속담을 사용하고는 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 이는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이 열악한 이가 큰 성공을 이뤄냈을 때 사용하는 속담이다. 이러한 인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위의 인정을 받고, 이따금 화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이 속담을 입에 올리지 않게 됐다. 그 원인이야 복잡하고 다양하겠지만, 쉽게 생각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드물어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상속사회 특성상 이 현상이 더욱 도드라진다는 평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는 '공정'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능력주의'를 화두로 삼았고, 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사회 논쟁 중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 사회의 거대 담론 중 하나로 자리잡은 능력주의. <원대신문>은 이 능력주의가 더 나은 사회를 열기 위한 창구로써 올바른 기능으로 작용할지 진단해보고자 한다.

개천에서 용 나는 건 옛말
 능력주의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사회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이다. 가장 많이 통용되는 예로 시험을 통한 개인 능력 평가를 들 수 있다. 또한 대학 학위를 현대 능력주의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는데, 현대 사회에서 학위가 평가의 기준으로 사용되며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능력주의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즉, 능력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 사회에 필수 불가결한 하나의 장치로써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능력주의가 본격적인 사회적 화두로 거론되기 시작한 지점은 인천국제공항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절차 논란이 불거졌을 때다. 당시 정규직 전환 절차의 공정성과 관련해 여러 의견이 오가면서 전 국민이 떠들썩했다. 인천국제공항 정규화 논란과 관련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단 하루 만에 20만 명의 동의를 받을 정도로 여파는 상당했으며 이때부터 국민 사이에서 공정과 능력주의에 대한 의견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가 본격적으로 이 공정과 능력주의를 내세우면서 청년층의 지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공정과 능력주의가 어째서 이토록 파급력을 가지게 됐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 사회의 실태를 되짚어봐야 한다.
 오래전부터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는 지금 우리나라 사회가 조선 시대처럼 부 뿐만 아니라 신분까지 대물림되는 사회로 퇴행하고 있다는 자조가 반영된 말이다. 해마다 전 세계 부자들의 명단과 순위를 발표하는 포브스 자료를 살펴보면 헬조선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3개 나라 30대 부자들 가운데 자수성가 비율을 확인한 결과, 우리나라는 13개 나라 중 13등(23%)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나라보다 경제 수준이 낮고 양극화가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도, 태국, 필리핀 등보다도 자수성가 비율이 낮은 것으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옛말이 돼버린 우리나라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는 지표인 셈이다.
 즉, 계층 상승의 가능성이 막힌 사회, 줄어만 가는 일자리 등 불확실한 미래를 앞둔 청년층이 개천에서 나는 용이 되기 위해 공정과 능력주의를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계는 존재하는 법
 능력주의가 사회 주요 화두로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능력주의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제한된 사회적 지위를 놓고 경쟁을 할 때 신분이나 재산, 운이 아닌 노력과 재능에 우선권을 준다는 말은 일견 정의롭다. 효율성과 공정성 측면에서 능력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진다는데 누가 불만을 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능력주의에 허점이 있다는 의견이 있다.
 국내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통해 과연 능력주의가 공평하고 공정한지, 또 윤리적인지 질문을 던진다.
 확실히 능력주의는 공정한 경쟁을 실현하지 못한다. 샌델의 말마따나 능력은 유전적 또는 태생적 운에 의해 결정된다. 이미 출발선부터 어긋나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능력주의를 통해 쌓은 부와 지위는 세습되면서 새로운 특권층을 형성하고, 이렇게 쌓인 능력은 다시 부와 지위를 독점하고 있다. 실제 미국 사회에서는 SAT 점수가 응시자 집안의 부와 연관도가 높다는 결과가 있다. 소득 수준이 올라갈수록 평균 점수가 올라가는 것인데, 부유하고 고학력인 부모를 가진 자녀의 점수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능력주의에서 완전히 공정한 경쟁도, 완전한 기회의 평등은 불가능하다.
 또한, 능력주의는 인간을 하나의 기준으로만 보게 된다는 비윤리적인 측면도 있다. 인간의 가치를 능력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인간을 오로지 하나의 척도로 재단해 순서를 매기는 것으로, 인간 존엄성에 대한 훼손이기도 한 셈이다.
 이러한 뚜렷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능력주의가 사회 변화의 마중물로써 거론되는 이유는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현실이다. 모든 축구선수가 메시처럼 뛸 수 없고, 모든 요리사가 미슐랭 스타를 따낼 수 없으며, 모든 작가가 셰익스피어처럼 글을 쓸 수 없다. 이처럼 능력주의가 능력의 차이에 따른 결과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기는 하지만, 현재 청년층이 능력주의에 매달리는 것은 평등한 기회나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공정성 실현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을 바라기 때문이다. 갈수록 줄어만 가는 일자리와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집값 등 퍽퍽해져만 가는 현실 속에서 금수저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완전한 능력주의의 실현이 아닌, 그저 자신의 능력에 따라 계층 이동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사다리다.
 능력주의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능력주의가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능력주의를 대체할 만한 합의된 대안도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담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결국 해답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몫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한 무관심한 시선을 거둬들일 때다.

김정환 기자 woohyeon17@w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