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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아시아] 안락사 합법화는 필요할까?

'그녀는 안락사를 선택했다'

2024-04-12     원대신문

 

2019년 6월 2일 일본의 공영방송 NHK에서 방영된 스페셜 다큐멘터리의 제목이다. 다계통 위축이라는 진행성 신경질환을 앓고 있던 일본인 여성 코지마 미나는 2018년 스위스의 한 안락사 단체를 통해 삶을 마감했다. 한국에서 유학했던 경험을 살려 통번역 일을 하며 스스로 삶을 개척해왔던 그녀는 48세에 병을 선고받았다. 병이 진행됨에 따라 몸을 제어할 수 없게 되고 누워서 지내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것은, 자립심 강한 커리어우먼이었던 그녀에게는 절망적인 현실이었다. 어렵게 몸을 움직여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하였다. 그러던 중 안락사를 취재한 저널리스트 미야시타 요이치의 책을 읽고 스위스의 한 안락사 단체에 대해서 알게 된다.

안락사?

 안락사는 말 그대로 안락한, 편안한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안락사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고통'을 동반한 '불치병 환자'가, 그 고통 때문에 차라리 삶을 끝내는 것이 낫다고 여길 때, 의사가 약물을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이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약물을 의사가 직접 투여하는 경우를 '적극적 안락사'라고 하고,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 스스로 먹거나 주사하는 경우를 '의사조력자살'이라고 한다. 이 둘을 합쳐 일반적으로 안락사라고 한다.

 현재 안락사는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 한국에서 적극적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은 불법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만일 고통에 시달리는 불치병 환자가 차라리 죽는게 나을만큼 고통스러우니 죽여달라 했다고 해서, 의사가 약물을 투여해(적극적 안락사) 죽게했다고 치자. 죽은 사람은 법적인 처벌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고의로 약물을 투여해 사람을 죽게한 의사는 촉탁살인죄로 기소될 것이다. 의사가 직접 약물을 투여하지 않고 환자에게 건네서 환자가 그 약물로 사망했다면(의사조력자살) 의사는 자살방조죄로 기소될 것이다. 환자를 돕기 위해서 자신이 범법자라 되는 것을 무릅쓰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생명을 살리고 보호하는 의료의 목적이나 의사의 직업윤리에 비춰봐도 적절한 행위라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들도 있다. 미국의 일부 주,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스위스 등이다. 그런데 스위스만이 자국 국민이 아닌 외국인에게도 의사조력자살을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인 코지마 미나는 스위스에 가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한국인도 최소 12명 이상 스위스에서 삶을 마쳤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앞서 한국에서는  2022년 연명의료결정법에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내용을 추가하자는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이 개정안에서 사용한 조력존엄사는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용어이다. 의사조력자살이 일반적인 용어인데, '자살'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어서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이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한국 사회에서도 다시금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코지마 미나를 취재한 저널리스트 미야시타 요이치의 책이  『11월 28일, 조력자살』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고, 서울신문 취재반이 스위스 현장에서 취재한 내용을 기반으로 쓴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지인의 의사조력자살 현장에 동행했던 경험을 토대로 작가 신아연씨가 쓴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가 출간되었다. 2024년 3월 5일 MBC PD수첩에 '나의 죽음에 관하여'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2022년 발의된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제21대 국회의 임기가 오는 5월 29일로 만료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MBC PD수첩 영상에도 나오듯이 안락사를 희망하는 한 환자와 가족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환자는 척수염과 하반신 마비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며, 더 이상 마약성 진통제도 듣지 않는 상태가 되자 스위스에 가려고 생각하였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딸과 함께 가야만 한다. 그런데 스위스에 가서 의사조력 '자살'을 하면, 자살을 도우려고 스위스까지 데려가 준 딸이 자살방조죄로 처벌을 받게 된다. 때문에 환자는 국가가 안락사 관련 법안을 마련하지 않아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한 것이다. 

합법화의 문제점

 현재의 의료 수준에서는 완전히 치료가 불가능한데다가 독한 약을 아무리 먹어도 심한 통증이 나아지지 않아서 삶이 너무 괴롭다면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을까? 그런 환자들을 위해서 안락사를 합법화하는게 좋지 않을까? 그런데 실제로 합법화한 국가들의 상황을 보면 합법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1971년부터 안락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어 1984년부터는 안락사를 시행한 의사를 처벌하지 않았으며 2001년에는 법률을 제정해서 합법적으로 안락사를 시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판단 능력이 있는 성인 불치병 환자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있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시행하였다. 그런데 법률을 개정하면서 12세 이하 어린이의 안락사도 허용하게 되었다. 아파하는 어린이를 보고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하여 약물을 주사해서 죽게하는게 맞는걸까?

 캐나다에서는 정신적인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환자도 의사조력자살 대상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자살과 구분이 애매하다. 삶이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의료현장에서 합법적으로 죽게해주는 것이 인간적인 행위일까?

 다른 사례도 있다. 벨기에의 교도소에 수감중이었던 범죄자가 안락사를 신청하였다. 여러 건의 성폭행과 살인 범죄로 오랜기간 수감생활을 했는데, 이 범죄자는 정신질환자이기도 했다. 합법적인 안락사 조건을 충족한 환자가 범죄자라면? 범죄자가 감옥 생활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해서 법률에 따라 합법적인 의료행위를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할 때,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은 어떤 심정일까? 인권을 존중하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느낄까? 만약에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면 어떨까?

 이외에도 의료비 및 의료보험의 문제도 있다. 안락사를 합법화하면 조건이 되는 환자는 병원에서 의사에게 약물을 받고 고통스러운 삶을 끝낼 수 있다. 그 때의 처치 비용은 얼마가 적절한가? 해당자는 누구나 받을 수 있게 저렴한 비용으로 정했다고 해보자. 그럼 비싼 병원비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은 치료를 받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까? 그럴 경우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안락사 비용을 아주 비싸게 정했다고 해보자. 그럼 조건은 충족했지만 비용을 낼 수 없는 환자는 계속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죽어가기

  NHK 다큐멘터리에서 코지마와 같은 질환을 가진 동년배 여성이 중간중간 등장한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지만 죽음을 선택한 코지마와 가족의 케어를 받으며 살아가기를 선택한 여성을 비교한다. 11월 말 스위스에서 죽음을 맞이한 코지마의 유해는 추운 겨울의 스위스 강물에 뿌려졌다. 해가 바뀌어 봄이 되어 벚꽃을 보는 사람들. 코지마의 자매들은 그녀의 빈자리를 슬퍼하며 벚꽃을 바라본다. 한편 병과 함께,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로 한 여성은 가족들과 새봄이 되어 다시 핀 벚꽃을 보며 살아갈 희망을 다잡는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원해서가 아니다. 우주의 섭리나 하늘의 뜻, 신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태어나는건 내 결정이 아니었으니 죽는 것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하고싶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요즘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탄생이 그러했듯 죽음도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어떠한 흐름에 맡겨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김율리 교수 (원광대 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