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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아시아]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의 역사

아시안컵 초대-디펜딩 챔피언,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

2024-04-29     원대신문
2023 카타르 아시안컵 남자 축구대표팀의 사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제1회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

 지난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여정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월드클래스' 손흥민을 필두로 역대 최강의 스쿼드라 평가된 대표팀이 거둔 결과라 더더욱 아쉬웠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64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오를 최적의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회 내내 반복된 수준 낮은 경기력과 이후 불거진 선수단 분열 소식은 많은 축구팬들을 실망시켰다. 단순한 화풀이도 섞여 있었으나,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한 염려가 담긴 비판과 고언이 수없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다. 아시안컵 결과에 대한 소란도 잦아든 지 오래인데 이글에서는 아시안컵과 관련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역사를 가볍게 되돌아보고자 한다. 나아가 지난 대회 내내 반복됐던 '64년 만에 정상에 오른다'라는 염원에 담긴 의미도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아시안컵(AFC Asian Cup)은 1916년 남미의 챔피언십(현 코파 아메리카), 1930년 월드컵 다음으로 오래된 국제 축구 경연으로서 축구사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은 대회다. 대한민국 남자축구 대표팀은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제1회 대회와 그로부터 4년 뒤 대한민국에서 열린 제2회 대회를 연속으로 석권했다. 이 유서 깊은 축구대회의 초대 챔피언이자 첫 번째 디펜딩 챔피언인 것이다. 

 초대 아시안컵은 개최국 홍콩을 포함하여 대한민국, 남베트남, 이스라엘 총 4개국 풀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리는 대회였다. 현재와 비교하면 상당히 단출한 구성인데 대회의 규모에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참가국 면면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대한민국을 제외한 나머지 초대 대회 3개국 중 오늘날 '아시아  4강'에 들만한 국가가 없는데 그 사연도 제각각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서구문물을 받아들였던 홍콩은 20세기 초반부까지 동아시아 축구 최강국이었다. 하지만 다 지난 시절의 이야기다. 이번 대회에서 홍콩 대표팀은 1968년 이후 무려 56년 만에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하는 '선전'을 펼쳤다. 조별 예선을 통과하지는 못했다. 현재 홍콩 대표팀의 수준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지만 초대 아시안컵 개최지, 아시아 최고(最古) 축구클럽(F.C. 홍콩, 1886년 창단)을 보유한 역사에 비춰보면 씁쓸한 성적이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초대 아시안컵 대회 때만 해도 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시아 최정상을 다투는 강팀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축구를 포함한 그 어떤 아시아 스포츠대회에서도 이스라엘을 찾아볼 수 없다. 홍콩처럼 전력 자체가 떨어져서가 아니다. 중동국가와의 정치적인 문제로 1976년부로 AFC에서 축출되었기 때문이다. 

 남베트남의 경우는 이보다 더 비극적이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와 '반공전선 혈맹'을 구축하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남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전 패전으로 멸망했다. 박항서 감독의 활약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지금의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은 과거 대한민국과 대립하던 북베트남(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잇는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대표팀이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 세 개의 대표팀과 치열한 풀리그 경기를 치른 끝에 2승 1무의 호성적으로 초대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제2회 대회의 개최지는 대한민국이었다.   1959년 개최가 확정되고 난 직후, 정부는 서울 용산에 한국 최초의 국제규격 축구장(효창운동장)을 건설하여 남베트남, 이스라엘, 중화민국(대만)을 맞이한다. 경기장 일부가 파손될 정도로 엄청난 응원 인파가 몰렸다고 전해진다.

 한국은 1차전 상대인 남베트남을 5-1, 그다음 이스라엘 3-0, 중화민국을 1-0으로 물리치고 챔피언 자리를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던 김용식이 감독으로서 대한민국의 마지막 아시안컵 우승을 안겼다. 득점왕 또한 세 경기 중 총 네 골을 넣은 대한민국 대표팀 조윤옥에게 돌아갔다. 

 초창기 아시안컵 참가국의 면면을 살펴보았는데, 육십여 년에 걸친 아시안컵 역사에서 대한민국만큼 꾸준히 우승을 노릴 수준의 고점을 유지한 팀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대표선수 몇몇이 지닌 재능과 실력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한 국가의 스포츠 역량과 발전 정도는 해당 국가의 역량 및 발전 정도와 정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대표팀의 꾸준함은 그간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을 이끈 구성원 모두의 노력과 떼려야 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역사상 대한민국은 공동체가 마주한 어려운 목표를 여러 번 돌파해온 위대한 도전자였다. 밑바닥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선진국에 도달한 국가는 대한민국 말고는 없다. 이는 결단코 당연히 주어진 결과가 게 아니다. 물론 운도 따랐지만, 모두의 피와 땀 그리고 지치지 않는 도전과 노력의 결실이다. 우리 모두 이에 대해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아시안컵 초대·디펜딩 챔피언이면서 꾸준히 우승 후보로 거론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성취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음 대회에 또다시 우승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4년 뒤에는 이번 대회보다 더 치열하고 간절한 도전자가 되어야 한다. 역대 최고의 선수와 그에 걸맞은 최상의 스쿼드를 갖췄다고 우승이 따라오지는 않는다. 지난 아시안컵 결과가 그 증거다. 과거의 영광은 미래의 성취를 보장하지 않는다. 

 과거에 우리가 이뤄낸 모든 과정과 성취에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거나 미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과거의 영광을 잠시 내려놓는 겸허함과 간절함도 필요하다. 64년 만의 아시안컵 탈환은 실패로 끝났지만 대한민국 축구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축구란 곧 삶과 같다고 했던가. 앞으로도 대한민국 축구를 응원하며 울고 웃을 우리들의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제까지 자신이 이룬 모든 성취에 자부심을 품고 겸허하고 간절하게 도전하자. 여러분의 남은 학기를 응원한다.

 윤재민 교수 (원광대 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