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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5.18 광주를 가다

2009년, 5월 광주 민중항쟁 그 현장에 서서
전남도청 별관 철거 … 국립 5.18 민주 묘지의 쓸쓸함, '소녀, 그리고 5월의 불꽃'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막내 아들

2009-05-25     이영훈 기자

김길자 씨(광주, 70세)는 1980년 5월 26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집을 나간 그녀의 막내 아들은 전남도청 별관에서 시민군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김길자 씨는 아들을 보기 위해 매일 전남도청으로 갔다고 한다.


26일, 김길자 씨는 아들에게 "계엄군이 전남도청으로 오니 오늘은 꼭 집에 가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아들은 "선배들을 도우며 활동하고 있고 여기서 할 일이 많다"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다음날 아들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 아들이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이었던 고(故) 문재학 열사이다. 그는 계엄군에 대항해 끝까지 투쟁을 하다가 새벽 3시 계엄군의 총탄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김길자 씨는 "당시 27일 새벽에 수백발의 총포 소리가 광주시내에 울려 퍼졌는데, 그 총포 소리 중 우리아들의 심장에 박힌 총알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가슴이 아파온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김길자 씨는 "하지만 5.18광주민중항쟁 기간에 전남도청 별관을 방문하는 수많은 참배객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아들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기쁨이고 자랑이었으며, 역사적 책무를 느끼게 하는 감동 깊은 시간들이었다"고 말했다.

전남도청 별관, 민중항쟁의 성지

지난해 6월, 광주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입구를 트기 위해 전남도청 별관을 철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어린 나이에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고 문재학 열사 외에도 전남도청 별관에서 18명의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했다. 29년 동안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서 역할을 해오던 전남도청 별관이 광주시의 도시발전 계획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 17일 전남도청 별관(구 전남도청)은 검은색 천으로 가려져 있었으며 그 위에 도청 철거를 반대하는 여러 시민단체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내부는 곳곳에서 콘크리트가 부서져 있는 등 난장판을 방불케 했다.


한 시민운동가는 "현 정부가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수치심을 느끼고 도청을 없애려고 하는데 이는 태양을 손바닥 하나로 가리는 격이다"며 "앞으로 전남도청 별관을 지켜 후손들에게 떳떳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이번 5.18민중항쟁을 기념하는 행사가 끝나면 공권력을 투입해서라도 도청 별관을 본격적으로 철거하는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민주화를 위한 열사들의 희생, 헛되이 되지 않길 바란다

국립 5.18 민주 묘지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안장된 곳이다.
17일, 광주시 망월동에 위치한 국립 5.18 민주 묘지에는 많은 시민들과 유족들이 참배를 하고 있었다. 800여 개의 묘지가 안장된 국립 5.18 민주 묘지는 10개의 묘역이 있는데 특히 10묘역은 행방불명자들의 묘역이었다. 1묘역부터 9묘역까지는 참배객들이 많이 붐볐지만 10묘역은 썰렁함이 느껴졌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었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10묘역에 안장된 것이었다. 오히려 더 많은 참배 행렬이 있어야 할 묘역이 사람들의 눈에서 잊혀져가는 듯해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고(故) 이세종 열사의 묘지 앞에는 70세의 한 노인이 눈물을 삼키며 묘비를 닦고 있었다. 그는 이석영 교수(전북대학교 명예교수) 였다.


1980년 5월 18일 작전명 '화려한 휴가'의 첫 번째 공수부대가 전라북도 전북대학교를 거쳐 광주로 진격하면서 전북대학교에서 시위하는 학생들도 무력으로 진압했는데 당시 기독학생총연맹의 회장으로 활동하던 고 이세종 열사가 진압대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학교옥상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석영 교수는 "이세종 학생은 가난한 학생들을 돕기도 하는 등 마음이 따뜻한 학생이었는데 시신을 직접 만져보니 너무나도 차가워 가슴이 너무 아팠다"며 "민주화를 수호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던 국민들의 고생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민주화를 잘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흐트러짐이 없었던 광주민주항쟁

오후 5시부터 광주 금남로에서는 5.18 전야제가 펼쳐졌다. '소녀, 그리고 5월의 불꽃'이란 주제의 마당극을 시작으로 진행된 전야제는 1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1부 '기억 너머에서󰡑에서는 춤과 노래 등으로 아픔을 겪는 민중의 모습을 그려냈고 무용과 탈춤 등으로 진행된 2부 '흩어진 기억들을 다시 모아', 3부 '아픔에 기억에서 희망의 기억으로󰡑는 세상을 꿈꾼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전야제가 끝이 났다.


전야제 마당극에서 계엄군에 의해 쓰러지지만 다시 살아나는 '민중의 역할'을 맡은 이종관 군(전남한빛고등학교 3년)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 중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은 유일하게 당시 절도나 범죄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에서는 5.18 당시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 학생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는 행사를 그대로 재현해 시민들의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