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서 묻어나는 진실
슬랩스틱 코미디부터 시사개그까지…개그는 그 시대의 거울
웃음 코드의 변화, TV 오락프로그램 분석
정치 현실 풍자한 <개그콘서트>, 치밀한 구성 속에서
사회 비판한 <무한도전> … 시청자들로부터 호응
매주 주말 저녁, 텔레비전 앞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당기는 가장 큰 힘은 단연 개그․예능 프로그램(이하 오락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오후 6시 이후 공중파 방송 3사 프로그램 편성표만 보더라도 시사 프로그램은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반면 오락프로그램들은 평균 3개씩 편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관심은 주말의 오락프로그램에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오락프로그램은 평균 10% 이상의 시청률을 얻고 있어 주말 황금시간대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는 오늘날의 오락프로그램이 단순히 웃고 떠들기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 속에 뼈가 있는 개그로 예전의 개그와는 확실히 다르다. 시대가 변한 만큼 대중의 웃음코드도 변했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1980년대 KBS 코미디 프로그램인 <유머 1번지>에서 개그맨 심형래가 넘어지고 자학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통해 대중을 웃게 만들었다면 현재의 오락프로그램들은 사회, 정치 비판을 통해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다. 물론 과거 <유머 1번지>에서도 사회를 풍자하는 시사개그는 있었다. 故 김형곤 코미디언이 선보인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는 당시 잘 될 턱이 있나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코너에서 회장의 처남 역을 맡은 코미디언 양종철이 밥 먹고 합시다라는 말에 회장은 저거 처남만 아니면 짤라 버리는데라고 말해 당시 재벌가의 경영 세습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웃음 코드는 현시대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데 요즘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6일, 방송 10주년을 맞이한 KBS의 대표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는 타 방송국의 개그프로그램과는 달리 과거부터 지금까지 개그에 시사적인 요소를 가미해 대중으로부터 시대적 공감을 얻어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특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코너 중 뿌레땅 뿌르국 코너는 잘못된 정치 현실을 풍자하는 시사개그를 선보이면서 대중으로부터 씁쓸하면서도 공감대를 형성하는 웃음을 자아내 날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처럼 개그프로그램이 대놓고 사회를 풍자함에 따라 대중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었다면 MBC의 대표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은 직접적이진 않지만 치밀한 구성을 통해 은연 중에 그 속내를 드러냄으로써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얻고 있다. 이는 무한도전이 해당 홈페이지에 매주 방영되는 특집에 대한 기획의도를 정확히 제시하지 않고 있는데도 시청자들이 그 속에 담긴 메세지를 분석함에 따라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님을 입증시킴으로써 가능했다.
특히 지난달 22일 방송된 <무한도전> 패닉룸 특집(8월 22일 방송)은 미디어법을 은영 중 비판하고 있다. 폐쇄된 컨테이너에 갇힌 무한도전 멤버들이 1~2분 내에 주어진 문제를 풀지 못할 경우 지상에서 5m씩 올라가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컨테이너 안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통해 무한도전 멤버들은 지상에서 25m까지 올라간 컨테이너를 보고 질겁했지만 실제로 컨테이너는 지상에서 50cm~1m 정도만 떠 있었을 뿐이었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패닉룸 특집에 대해 단순히 보여지는 텔레비전이 대중들을 쉽게 속일 수 있는 점과 이러한 왜곡방송을 가능케 하는 미디어법의 위험성이라는 분석을 도출해 냈다.
이 외에도 <무한도전>의 여드름 브레이크 특집(6월 20일, 27일 방송)은 재개발 지역의 참담한 현실을 지적함으로써 시청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형사와 죄수로 나뉘어 서로 추격전을 벌이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동선을 따라가다보면 그 속에 숨겨진 의도를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미션을 수행하며 지나치게 되는 남산 시민아파트와 동대문 연예인 아파트, 그리고 김포 오쇠동은 모두 재개발이란 단어와 연관이 있고, 죄수들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300만원이란 돈은 오쇠동 철거민들에게 주어지는 보상금의 액수와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연예인들이 게임하고 즐기는 식의 오락프로그램을 넘어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있고 시사적인 요소를 가미한 프로그램은 대중에게 공감의 폭을 넓힘으로써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오늘날의 오락프로그램은 단순히 가볍게 웃고 넘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웃음 속에 뼈를 담고 있어 대중에게 일종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메세지를 알아차리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하다.
텔레비전을 단순한 바보상자로 만들지 아니면 바보(바다의 보배)상자로 만들지는 시청자, 바로 우리들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