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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 백작’ 그는 대체 누구인가

군산 채만식 문학관

2011-03-31     장지현

식민지 시대의 혼탁한 물결에 휩쓸려 무너지는 한 가족.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무질서의 격류 속에 인간의 탐욕과 죄악, 파멸의 현실. 이는 고등학교 시절 모두 한 번씩은 봤을법한 장편소설「탁류」의 줄거리다. 우리들에게 조금은 생소한 백릉 채만식 선생, 이가 바로 「탁류」의 저자다. 4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훌쩍 떠나버린 백릉. 이제 그의 숨결이 깃든 채만식 문학관으로 떠나보자.

어렵게 찾아간 군산시 내홍동에 위치한 채만식 문학관에 들어서자 잘 정돈된 초록빛 잔디길이 기자를 반겼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눈앞에 펼쳐진 청록색의 둥근 벽이 기자를 매료시켜 ‘채만식의 삶과 고뇌’를 읽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백릉의 일대기를 연도별로 기록해 둔 연표로써  백릉의 치열한 삶의 여정을 시대적 상황과 연계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노라마식으로 소개 돼 있다. 원형공간 속에서 영상, 그래픽, 음향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마치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백릉의 문학 작품인 「탁류」를 비롯해「태평천하」,「레디메이드 인생」,「치숙」이 액자로 전시 돼 있었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에 홀로 지내는 게 익숙해 폭넓은 교우 관계를 갖진 못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신념과 생각에 부합하지 않으면 배타적으로 변하는 자신의 주장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문학관 안쪽엔 실제로 재현된 백릉의 행동과 목소리를 경험할 수 있는 음성녹음과 사실감 있게 연출된 채만식 선생의 모형으로 꼭 그가 살아 돌아온 듯한 분위기로 흠칫 놀랐다.
채만식 문학관 해설가 김선희 씨는 “하루 관람객 수가 많지 않아 걱정이지만 휴일에는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며 “학생들이 문학관을 꼭 찾아야 채만식 선생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체험해서 직접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학습이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2층에 위치한 영상 및 세미나 실은 채만식 선생 관련 영상 작품이 관람이 가능 하나 문학관 내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관람하지 못했다.

백릉이 살아 있을 적 그는 넉넉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항상 깨끗하고 정돈 된 옷차림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불란서 백작’이란 별명이 붙여졌다. 문학관 안에서 본 그의 모형은 백작이라기 보단 순수한 한 사내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모형의 옷 매 무세 또한 깔끔해 진정 백릉의 살아생전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 문학관을 방문한 김 아무개(43세 광주)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하기에 좋은 곳이다”며 “채만식 선생에 대해 직접 체험에 느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문학관을 나서기 전 기자의 발걸음 도장을 찍는 방명록을 작성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표지만 문학광장, 백릉 광장 등 낮은 턱과 비슷한 크기의 언덕이 황금빛 색 잔디를 안은 채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광장엔 방문객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평상과 벤치가 마련 돼 있고 아이들의 동심을 자아 낼 조그마한 철도 길과 작은 연못도 눈에 띄었다. 이 날은 고교 청소년 야구단이 놀러와 문학관 앞 쪽에서 야구를 즐기는 모습에 모두가 함께 자연스레 즐길 수 있는 만남의 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정히 사진을 찍던 박 아무개(28세 군산)는 “남자친구와 자주 문학관 쪽으로 운동을 다니고 있다”며 “오늘은 날씨도 좋아 사진찍기 좋은 장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멀리 보이는 금강 하굿둑을 배경으로 펼쳐진 채만식 문학관은 그가 출생한 임피면 읍내리와 같이 소나무가 우거지고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아름다운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문학관을 방문해 단순히 보고 가는 즐거움을 넘어 바깥 환경과 더불어 주변의 자연친화적인 부분과 문학적 경험을 직접 맛볼 수 있는 기행이 되길 기대하며 올 봄, ‘백릉 채만식 문학관’을 찾아 작가의 숭고한 문학 정신과 그의 삶을 엿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