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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8회 세계고전강좌

유가의 실천 도덕, 용학사상(用學思想)

2013-09-30     원대신문

  <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 『대학』과 『중용』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유가의 실천도덕의 상호 '체(體)'와 '용(用)'이니 『중용』은 '체'요 『대학』은 '용'이다. 즉 『중용』은 '도'를 『대학』은 '덕'을 그 종지로 삼아 『중용』은 성기(成己), 성물(成物)을 『대학』은 명덕(明德), 신민(新民)을 성덕(成德) 군자의 행위로 입론한 것이다. 그리하여 『중용』과 『대학』은 '용학(用學)'이란 이름으로 함께 불린다. 

 『중용』, 『대학』은 본래 『예기』 49편 가운데의 한 편이다. 『중용』은 제 31편, 『대학』은 제 42편으로 수록되었다. 한나라 때는 동중서가, 당나라 때는 한유가 『대학』의 팔조목을 들어 성의, 정심, 수신에서 평천하에 이르는 과정을 도의의 근거로 삼았다. 한유는 유학을 철학으로 발전시켜 향후이학(理學)의 단초를 열어 놓았다. 송대는 송조 육현을 비롯한 문장가가 많이 등장한 시대다. 이 시기에 송나라 땅에 문창성이 비추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고려시대에는 송대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대학』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대학』은 경 1장, 전 10장으로 되어 있는데, 경 1장은 공자의 설로 총론 격에 해당한다. 전 10장은 증자가 경1장을 부연 설명한 각론이다. 그리하여 성인의 말씀을 '경(經)'이라 하고 현인의 말을 '전(傳)'이라 한다. 『중용』은 경 1장과 전 33장으로 되어 있는데, 경1장은 역시 공자의 설이요, 전 33장은 자사의 부연설명이다. 물론 여기에도 이론은 있다. 수장(首章)에 자왈(子曰)이 없기 때문에 공자의 설인지, 자사의 설인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 1장은 자사의 설이고 나머지는 그 제자의 설이라고 한다.

 송나라 때에 이정(二程)로 칭송된 정이, 정호의 형제가 이 『대학』, 『중용』 두 편을 중시하여 성인지학, 제왕지학으로 인식,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정요입덕서(精要入德書)로 했다. 주희는 이것을 계승하여 『예기』에서 따로 떼어내어 사서에 편입하고 깊은 토구(討究)을 거듭하여 '대학장구', '중용장구', '대학혹문', '중용혹문', '용학집주', '주자어류'  등 그 평생의 심혈을 기우린 결정이 이뤄졌던 것이다. 

 

 ▲ 『대학』의 삼강령(三綱領)은 '명 명덕(明 明德)', '친(신)민(親(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다.

 

 주자는 33세 때 황제 효종과의 대좌에서 처음 『대학』의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말한 후, 광종의 시강(侍講)이 되어 매일 『대학』을 강의했다. 처음 "대학혹문"의 초고를 쓴 이후 이를 수정 보완해 59세에 완성하였으니 이 책에는 주자의 18년의 연토가 들어 있다. 그리고 60세가 되어 『대학』 서문을 쓴 이후에도 그는 죽기 3일 전까지 수정의 붓을 들어 3자를 고친다. 첫 번째는 유학의 대표적 논쟁으로 꼽히는 신민(新民)논쟁이다. 친민(親民 : 백성과 친함)을 신민(新民 : 백성을 새롭게 함)으로 고친 이유는 백성을 적극적으로 일깨워야 한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좋은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그 나라의 운명이라는 뜻으로 '명(命)'을 '만(慢)'으로, 친(親)을 신(新)으로, '身'을 '心'으로 3자(字)를 첨필하여 고쳤다. 이렇게 주자는 필생토록 『大學』에 집중했다.

 성인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 자신의 깨달음을 타인에게 베푸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 점에서 『대학』의 제 1장에 등장하는 명덕(明德)은 성기(成己)요. 신민(新民)은 성물(成物)이다. 부연하면 『중용』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은 『대학』의 명덕(明德)이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는 명명덕(明明德)이요,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는 신민으로 명명덕은 내성적(內聖的) 공부인 독선기신(獨善其身)이요, 신민은 외왕적(外王的) 공부인 겸선천하다.

 동양학은 비논리적이고 비체계적이며, 비과학적이기 때문에 학문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인정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 서양학자들도 『大學』만은 가장 논리적, 합리적, 체계적, 과학적인 것이어서 환영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명덕, 신민, 지선을 얻는 과정의 순서로는 먼저 그 명덕, 신민, 지선의 자리를 확실히 깨닫고 몸소 체회(體會) 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굳은 의지로 망설임이 없이 가는 목표 방향이 결정, 정립되는 것이다. 방향이 정립되면 부동심. 마음이 흔들림 없이 오롯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정향대로 나갈 수 있다. 이 번뇌, 망상, 잡념이 일어나지 않아야 심신이 태평하고 어느 때, 어느 장소에도 환순, 안태하여 생각이 깊어지고 사상이 영명하여 지혜가 무궁하고 심중이 광명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사려가 꼼꼼 심원 정밀해져 사리(事理)가 극치해져 명덕, 신민, 지선의 공효를 얻게 되면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 

 명명덕, 평천하에 이르는 공효의 앞서 공부는 먼저 치국(治國) 공부인데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부강, 안정시켜 진보, 발전시킨다. 이런 포부와 희구에 앞서 제가를 해야 한다. 그러면 제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비는 사랑하고 자식은 효도하고 형제는 우애하고 부부는 화순해야 온 집안이 화기가 충만하고 사람마다 화락하는 것이다.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먼저 제 몸이 수양되어야 한다. 수신은 인격 완성이다. 일체의 불량한 습관을 혁제하고 고상한 품덕을 갖추어 완미의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심,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 마음은 몸의 주인이다. 희로애락의 용심이 중에 합하고 중심이 청명, 일사분란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誠敬)이다. 성경은 지성, 정성, 공경의 오롯이 한 마음으로 잡념을 일으키지 않고 인욕을 막고 천리를 간직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그것을 신독(愼獨) 공부라고 한다. 허장성세나 자기를 속임없이 천지신명께 일효도 부끄럼이 없는 것. 이게 바로 성(誠), 경(敬)이다. 이 경지는 그 양지 양능의 지고의 경계에 있으며 그 경계는 진, 위, 선, 악의 기미와 진리의 지극함에 있으며, 그 지극함은 경지를 깨달음에서 온다. 이것이 대학공부의 시초이며, 삼강령 팔조목의 논리정연한 해설이요. 시종, 본말공부의 선후인 것이다. 

 

 ▲ 『중용』은 과녁 중앙에 꽂힌 살처럼 흔들리지 않는 정도(正道)에 적중함을 뜻한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오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이오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이니라.(『중용』)" 이를 풀이하면 하늘이 모든 사물에 부여하여 준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대로 하는 것을 도(道)라 하고, 도를 중도에 맞게 하나하나 조절해 놓은 것을 교(敎)라 한다.

 오늘날 흔히들 '중용'하면 적당히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좌고우면하면서 오른쪽 발을 좀 내밀었다가 별 볼일 없으면 내민 발을 쑥 들이키고, 또 왼발을 좀 내밀었다가 불리하면 다시 쑥 움츠리는 그런 어정쩡한 사이비의 태도가 아니라 아주 엄격한 외줄기 외골수의 어느 때 어떠한 장소에서도 '정'의 편에 서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냉혹한 서릿발 같은 양심, '정'의 깃발을 고추 세우는 자세, 이게 바로 중용인 것이다. 중용은 이렇게 요즘의 잘못 변질된 성어가 아닌 것이다.

 주자의 주에 의하면 "한 편으로 치우지지 않고 기울이지 않고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中)'이라 하고, 시간적으로 영원히 바뀌지 않는 떳떳한 도리를 '용(用)'이라" 했다. 즉 '중'은 천하의 정도요, '용'은 천하의 바른 이치를 뜻한다. 그래서 공자는 '천하국가도 고루 잘 다스릴 수 있고 고관대작 많은 봉록도 사양할 수 있고 서슬 퍼런 칼날도 밟을 수 있다.'고 하였으나 중용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고도의 물질문명이 발달한 21세기에 들어섰다. 이 물질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정신문화가 극도로 쇠락하였다. 이 눈부신 발전의 과학문명은 드디어 핵공포를 안겨 주었고, 고도의 경제성장은 드디어 지구환경의 파괴를 가져와 인류생존을 위협하고 있고, 인륜도덕의 파멸로 살인강도, 퇴폐 폭력, 살부살조, 사회질서의 혼란과 불안감이 고조되어 절망의 위협이 시시각각으로 밀려오는 현실이다. 이때야말로 물질문명과 정신문화가 조화되는 미래 아니 현실의 당면과제인 것이다. 이 물질추구의 산물인 퇴폐, 폭력, 공포, 위협, 불안을 불식시키는 동양정신 문화의 추구야 말로 천인합일의 번영과 생존이 지속될 것이다. 이 동양 정신문화의 최고 보전인 『대학』, 『중용』의 실천학습이야 말로 바로 이 21세기를 열어가는 과제다. 그러므로 『대학』, 『중용』은 현재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유가의 실천 도덕이자, 용학사상(用學思想)이다.

 

 박금규 교수(전 원광대 교수)

 

 <필자소개>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및 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

 ·원광대 한문교육과 교수로 정년퇴임.

 ·전라시조문인협회장, 대학불교문학회장, 한국 문인협회 익산지부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