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15년 2학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번학기는 기말고사를 끝으로 지난 추억이 되겠지만, 올 한해 풀지 못한 삶의 고민과 과제들은 새로운 생각과 물음으로 2016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저도 몇 번의 호흡을 한 번의 한숨으로 대신했던 지난 기억들을 떠올려봅니다. 우리는 삶의 과정에 놓여 있는 필연적인 고민들 속에서도 결국 웃을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한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필연(必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해야만 한다는 뜻을 가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그 자체로 힘을 주기도 하지만, 저는 이 문장에 약간의 살을 붙여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싶습니다. 피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피할 수 없는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관점의 변화, 즉 정신의 변화를 통해서입니다. 정신의 변화는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의 변화를 뜻합니다. 정신의 변화는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꿈은 이러한 삶의 태도를 통해 하염없이 우리의 주변을 맴돌기도 하고 또 손에 잡힐 듯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속박된 정신은 삶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정신은 지금 무엇을 원하고 어디를 향해 있나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오직 이익만을 쫒는 삶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보지 못하고 오히려 잃어가는 현대인의 증상을 기이한 정신 결여증이라고 표현합니다. 삶의 목표에 이르고자 할 때에 가장 가지고 가기 힘든 것, 자신을 가장 무겁게 하는 것은 아마도 내면에 있는 또 다른 내가 아닐까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 다시 말해 이상과 현실 속에서 내가 왜 이 일을 하고자 하고, 왜 이 꿈을 꾸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직 내면의 자신과 합의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 자기 자신에 대하여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현실만을 위한 현실을 살아가게 된다면 삶의 의미와 꿈은 우리에게 낯선 단어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언젠가 먼 미래에 우리 자신에게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와 관련하여 삶의 극한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 새로운 꿈을 꾸며 결국 이를 실현했던 빅토르 프랑클은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프리드리히 헤벨의 말을 빌려) 다음과 말합니다. 나란 인간이 내가 되어진 인간에게 슬프게 인사한다.
 매 순간 다시 시작되는 우리의 하루들. 그리고 이곳을 가득 채우는 생각들은 단 한순간도 버릴 수 없는 삶의 이야기들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생동하기에 우리 삶의 호흡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이야기에 숨소리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때로는 잔잔하고 또 때로는 거친 소리가 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긍정은 필연적인 상황들을 자연스러운 삶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켜줍니다.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바람과 꿈들은 우리 삶의 이야기의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주제를 달리하며 자주 바뀌기도 하고, 실현되기 바로 직전에 좌절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필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꾸는 꿈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삶의 호흡은 가벼워야만 합니다. 아니 춤을 추는 사람처럼 가뿐 호흡이어도 즐거워야만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삶을 숨 쉬게 하는 작가이자 주인공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기존의 이야기에서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삶의 작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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