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델리와 A김선영(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등장인물 코델리아 A 남자(목소리만 등장한다) 무대 하나의 방으로 꾸민다. 왼쪽에는 책상과 문이 있고, 오른쪽에는 창문이 하나 있다. 벽에 여러 가지 그림이 걸려있고, 가운데 이젤도 있다. 이젤 위에는 그림이 하나 올려져 있고, 앞에 의자가 있다. 무대 오른쪽 끝에는 작은 화단이 하나 있다. 창문을 열면 화단이 보이는 구조다. 실제 화단을 만들지 않고 빔 프로젝터로 대체하는 것도 가능하다. 코델리아, 방에 앉아 노트에 무언가 적고 있다. 코델리아를 비추는 불빛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비추지 않
물이 있는 자리박가연(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누군가는 연동을 회귀의 지역이라고 불렀다. 다들 이곳은 겨우내 눈이 많이 내리고 첩첩산중이라 떠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도 스물이 되자마자 연동을 떠났지만 이내 곧 돌아오게 되었다. 엄마도 외할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연동에서 자랐고, 스물이 되어 대도시로 떠나 십여 년을 살았으나 이혼 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열매와 고기를 먹으면서 우리는 뼈가 굵어졌고 살이 올랐다. 이곳의 숙명은 간절히 떠나고 싶은 자는 다시금 돌아
이민 절차임남규(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감자에 난 싹처럼 당신의 폐에는 암세포가 자랐다 나는 당신을 한참 동안 햇볕 아래 두었다 그림자 아래 머물면 더 빨리 자랄 것 같았다 당신이 좋아한 과자는 감자로 만든 것 그늘에 오래 둔 과자에도 싹이 자랄까 밀봉된 입구를 양손으로 잡았다 가슴을 열어둔 환자처럼 과자 봉지를 열어 두었다 이쯤에 폐가 있을까 가슴에서 한 조각을 꺼내 입에 넣었다 조각이 침과 섞여 암세포가 되었다 혀로 이에 붙은 것을 떼어냈다 보험 서류를 서랍에서 꺼냈다 눈을 감은 뒤부터 넣어둔 것이었다 가입자 서명란에는 부스러
커튼콜변자영(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오래 비어 있던 방에서 사람 사는 티가 났다. 주기적으로 환기를 시키고 청소를 했는지 공기가 쾌적했고 바닥에는 온기가 돌았다. 한쪽 벽면을 꽉 채운 책장에는 대학 입학 전까지 즐겨 읽던 책들이 늘어서 있었다. 캐리어를 구석에 밀어 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책들 사이로 간호 서적 몇 권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에는 지우개 가루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고 침대 위에는 누군가 뒤척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해질녘쯤 집으로 돌아왔다. 하얀 간호 셔츠 위에 분홍색 카디건을 걸친 어딘가 낯선 모습이
수취인불명배원우(원광대학교 문예창작과)택배가 왔다문 앞에 곧게 선 채로받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그 사람은 여기 없는데종종 그 사람의 생활이 이곳으로 도착했다작은 상자가 모서리를 가진 덕에반드시 구석이 있는 포장 방법이 사용되었다나는 그 사람의 짙은 눈썹이나 손등의 흉터가려운 곳을 긁는 손짓과 어눌한 발음 같은더 이상 벗겨지지 않을 외연을그것으로부터 상상했다내 생활의 구석에는쓸리지 않는 먼지가 몇 겹 놓여있다어떤 무렵은 공중을 떠다니기도 했으나구석은 항상 구석에 있는 까닭에먼지를 발견한 적은 없다다만 한순간도 모서리를 가져본 적 없어
어니언 꺼풀 강동현(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등장인물 언희 20세 휘연 29세 매니저 30세 할머니 70세 때 크리스마스이브 밤 장소 텅 빈 영화관 무대 중앙에 빨간색 영화관 의자 세 개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그 위에는 백열등, 무대 오른쪽 끝에는 초록빛 비상등이 설치 돼있다. 무대, 밝아진다. 자리에 앉아 울고 있는 휘연. 바닥에는 휴지뭉치가 가득하다. 청소도구를 들고 등장하는 언희. 가슴에는 노란 스마일 배지를 달고 있다. 언희, 주변을 서성이다 휘연 에게 말을 건다. 언희 : 저기요. 휘연 : ······. 언희 : 저기요!
특별하지 않은 한다은(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선생님, 이거 제가 먹어도 돼요? 아이의 손끝이 케이크 위 초콜릿을 가리키고 있었다. 익숙한 프랜차이즈 상호명이 새겨진 직사각형의 밀크초콜릿. 먹으면 혀에서 버터가 겉도는 싸구려에 불과한데도, 하나뿐이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곤 하는 것이었다. 허락을 기다리는 아이의 눈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아이는 재빠르게 초콜릿을 집어삼켰다. 토독, 톡. 오물거리는 작은 입에서 경쾌한 소리가 났다. 듣고 있자니 미뤄두었던 식욕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유나야, 우리 어머님이
구심력주의보 오병현(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엘리베이터 안은 시원하네요 무더위가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이번 여름은 길고 질겨서 멈추지 않는 눈물처럼 땀이 흐른다 삼면이 거울로 둘러싸인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에 비친 사람은 나뿐이다 모든 장면이 눈에 익는다 면과 면이 만나는 구간마다 내가 반복된다 몸이 떠오르고 있는데 얼마간 잘 수 있는지를 어림잡는 거다 지구를 떠올리는 힘은 무엇일까 출입문 앞에 붙은 기대지마시오 세계에 몸을 의탁하기엔 너무 쉽게 깨져버리는 유리의 성질 엘리베이터는 아무 때고 점검중이지만 인류는 화성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
무인도 인(in) 임수연(원광대학교 문예창작과) ▶때10월 1일 추석 당일 새벽 2시 30분 ▶곳무인도, 회사 ▶무대무대 중앙엔 큰 주사위가 2개 놓여있다. 무대 양쪽에 놓인 야자수 2그루, 탁 트인 바다,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는 배경 사진이 있다. 정장을 입은 채 버스 의자에 앉아있는 대영, 프랜차이즈 유니폼을 입고 책상 사이 의자에 앉아있는 다지, 늘어난 추리닝을 입은 채 무대 바닥에 앉아있는 유한 조명이 꺼진다.첫 번째 대영을 향해 조명을 비췬다.대영: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으악-!! (등을 돌리며 관객을 쳐다본다) 여러
스턴트 히어로안지영(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과) 연조는 아무도 자신에게 바라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낡은 아파트 사이를 뛰어넘거나 차에 치이고도 멀쩡하게 달리고 주먹만으로 악당을 때려잡는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지만 연조에게 주어진 역할은 몸에 딱 달라붙는 분홍색 쫄쫄이를 입고 거대한 분홍색 칼을 휘두르는 일이었다. 그 역할을 받게 된 것도 운이 좋았다. 어린이 전대물에서 핑크를 맡은 하영과 체구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제안받았다. 연조는 촬영이 끝난 뒤 전철을 탈 때면 이상한 기분에 잠기고는 했다. 방금 전까지 지구를 위
거미정맥류 이현주(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혓바닥을 닦을 때마다 역주행하는 기분 포스기 앞에 서있을수록 종아리가 투명해진다 겨울에는 발가락 끝에서도 심장이 뛴다 25초마다 한 번씩 거슬러 올라야 하는 일이 불가능해질 때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올라도 1층엔 도착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나는 거꾸로 매달려 있다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쭉 펴 봐도 손끝이 발등을 건드리지 못했던 유연성 검사 종아리가 끊어질 것 같아도 나는 손을 뻗는다 뻗어야 한다 사장님에게 자꾸 전화가 온다 그럴 시간 있으면 바닥이나 한 번 더 닦아
반걸음, 반걸음선현정(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작성 의도: 사람들은 엄마와 딸의 사이가 누구보다 더 가깝다고 하는데,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서 힘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엄마를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 어른에 조금 더 가까워질 때다. 그렇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용서를 해야 할까. 용서하고 싶지 않은 아이의 마음이 이상한 걸까.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라 쉽게 해결이 되지 않고, 쉽게 해결되면 왜인지 상처를 급하게 봉합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니 쉽게 해결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해결이 되지 않아도, 그 과
전 화박정윤(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일억 번만 시도하면 나는 당신과 통화할 수 있다. 수첩을 잔뜩 사서 번호들을 다 적어놓았다. 공일공 공공공공 공공공공부터 공일공 구구구구 구구구구까지. 딱 일억 개. 우리나라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중 하나를 쓸 테니까. 누구에게나 걸면 누구라도 받을 테니까. 계속 걸다보면 당신과 통화를 할 수 있게 되겠지. 내가 여보세요? 하면 당신이 아, 여보세요? 번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적는 것만도 수일이 걸렸다. 그다음엔 순서대로 전화를 걸어 당신이 아닌 번호들을 차례로 지워나가는 거다. 그러니 사실은
엎어진 욕조양하얀(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입천장은 혀의 의자야혀는 오랫동안 쉬는 기간을 가져천장에 박힌 돌기들을 하나씩 헤아릴 때면해도 저무는 것이 지치는지 언덕에 걸터앉지이때다 싶어 새들이 노을의 살점을 뜯으면허공엔 출발지와 목적지가 엇갈린 날갯짓들 가득해나는 칭얼거리는 어둠에 익숙해져서눈을 감고도 저녁의 눈곱을 떼어줄 수 있어나의 말은 젖은 책이 되어뒷장을 넘기지 않아도 알 수 있을까새벽을 오래 앓은 창문들이 바람에 땀을 말리면아픈 이마를 짚어주는 수건의 축축함도 잦아들고이부자리에 누워 세어본 양들도 모두 달아나지침을 삼킬 때
탁류, the ready made - 탈출 김은송(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채만식의 소설 『탁류』와 『레디메이드 인생』의 주인공 2세들이(송희, 창선) 결혼해서 군산에 정착했다는 설정.※작성의도: 탁류와 레디메이드 인생의 인물 이후 세대의 시선으로 기성세대를 조망해보는 동시에 관습 내에서의 인간과 그것을 탈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대립구도를 그려보고자 하였다. 해당 작품에서 ‘탁류’는 가부장제이며 the ready made는 그 구조 속에서 기성화된 사람을 의미한다.※주요 등장인물1. 주인공-박 희규 (과거에는 간호사. 현재 순간에는
심시티원세경(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당신은 어느 건물에서 사셨나요? 누군가는 내게 없다고 했어요. 도로를 잇다 보면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죠. 우리도 그래서 모였어요. 저는 네모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시청 앞에서 누군가에게 각을 세웠지요. 도망치지 마세요. 당신은 아니에요. 제가 살지 않는 마을이 달라질수록 마음도 달라졌어요. 어느새 떨어진 블록을 맞춰봅니다. 자신만의 벽을 세우며 당신을 기다렸어요. 공장을 등지고 바람이 불어올 때 오래된 시장에 사는 사람들을 봤어요. 누군가가 나보고 당신을 독점하지 말라 했어요. 우리가 살던 마
도쿄 안드로이드김지민(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놀이공원에 간 날이었는데, 날씨가 흐렸어. 전날 비가 많이 왔었거든.나는 텅 빈 유골함을 안고 있었어. 안고, 그냥 벤치에 앉아있었지. 사라가 떠났거든 그 전날에……. 사라가 죽은 것은 아니야. 도쿄로 떠나겠다고 했거든. 그녀의 할아버지인가 할머니인가, 누군가 거기에 산다고 했어.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그냥 자기가 죽어버렸다 생각하라고 했지. 그리고 비어있는 유골함을 주고 갔어. 어쩌면 사라다운 행동이었지. 가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던 사람이었거든. 하지만 너무 폭력적
죗값박윤식(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등장인물변호사범인의사학생선생학생2학생3학생4 1.접견실 변호사 등장. 바로 뒤에 범인 등장. 변호사와 범인,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는다. 변호사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번에 변호를 맡게 된 국선변호사······.범인 됐습니다, 어차피 서로 다 아는 처지 아닙니까? 번거롭게 자기소개는 무슨······.변호사 아, 네······. 지내는 건 좀 어떠십니까?범인 감옥 생활이 뭐 별 것 있겠습니까.변호사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요?범인 먹으라고 할 때 먹고, 자라고 할 때 자고, 일하라고 할 때 일하
벨루카 강민아(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벨루카가 죽었대. 우리 지난여름에 보러 갔었잖아.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가 먹어서 죽어버린 게 아닐까. 시영은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가운데에는 케이크가 놓였다. 편편하게 발린 생크림 위에 딸기와 초콜릿이 장식된 케이크였다. 긴 초 두 개, 짧은 초 두 개. 길고 짧은 초 네 개를 꽂았다. 지훈은 빵집에서 준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시영의 시선이 촛불에 꽂혔다. 촛불은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문득 손가락을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도는 하지 않았다.
격 자 박서영(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가끔은 온몸이 알록달록한 시체를 마주치는 것이다 아파트 담장 앞이라든가 운동장이라든가 관공서의 입구 같은 곳에서머리맡에는 화분 깨진 조각이 있는데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알록달록해진 것 같지는 않고하여간 그렇다, 사건은 언제나 하여간 종결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강해져야 할 것 같았지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은 손에 파리채를 들고 있고선이 가로로 세로로 아무렇게나 그어진 격자 문양의 파리채,그 격자가 진짜 내 코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나는 수화기만으로도 쉽게 외상을 입곤 했다죄송합니다를 반복하는 24시 콜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