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심력주의보

 오병현(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엘리베이터 안은 시원하네요
 무더위가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이번 여름은 길고 질겨서
 멈추지 않는 눈물처럼 땀이 흐른다
 
 삼면이 거울로 둘러싸인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에 비친 사람은 나뿐이다
 모든 장면이 눈에 익는다
 면과 면이 만나는 구간마다 내가 반복된다
 몸이 떠오르고 있는데
 얼마간 잘 수 있는지를 어림잡는 거다
 지구를 떠올리는 힘은 무엇일까
 
 출입문 앞에 붙은 기대지마시오
 세계에 몸을 의탁하기엔
 너무 쉽게 깨져버리는 유리의 성질
 엘리베이터는 아무 때고 점검중이지만
 인류는 화성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긴팔이 필요 없을 만큼 여름이 지루하고
 수억으로 비켜선 내가 공중에 떠 있다
 
 초장만 들고 가면 되겠군
 파괴적인 열기 때문에 서부의 조개들이
 찜이 되어 폐사했다
 우리나라는 물부족국가라고 배웠지만
 디스토피아 영화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없이 착한 마음이 지구를 받쳐든다
 엘리베이터가 시원해질수록
 매미는 더욱더 크게 운다
 
 우화가 유달리 늦는 폭서
 선생님 몰래 떠들던 수학여행 마지막 날 밤
 그 열대야에서 매미가 울고 있었을까

 

시 부문 당선 소감

주꾸미를 낚으며 든 단상
 며칠 전 주꾸미 낚시를 하기 위해 오천항에 들렀습니다. 새벽 2시에 집을 나왔습니다. 비몽사몽 배에 오른 저는 주꾸미 씨를 말려버릴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미 주꾸미 씨를 말려버렸는지 조그마한 녀석들만 드문드문 잡힐 뿐이었습니다. 삼각형으로 부서지는 파도만 바라보고 있자니 조금 슬퍼졌습니다. 출항하고 얼마간 시간이 흘러서야 주꾸미를 잡아야 한다는 섣부른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그제야 갑오징어며, 크기 좋은 주꾸미가 연달아 올라왔습니다.
 아이로니컬하다는 점에서 주꾸미 낚시는 시 쓰기와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낚시가 좋아서 낚시를 하지만, 무언가를 잡아야 한다는 욕심이 들끓곤 합니다. 낚시꾼의 마음이 아니라 장사치에 가까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마음이 급하면 물고기들에게 미끼 물 시간을 주지 못하고 자꾸 챔질하게 됩니다. 영리한 물고기들은 후다닥 물러납니다. 제에게 시 쓰기란 성급한 낚시꾼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번 상은 경거망동하는 제 마음에 기다림을 주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무언가를 잡아가려 하지 않고, 낚시 자체에 집중하겠습니다. 틀리지 않았음을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따금 시가 미워질 때마다 시집을 꺼내 읽습니다. 삼각형으로 부딪히며 깨지는 파도. 눈이 멀 정도로 반짝거리는 윤슬. 이것들이 시라면, 저는 한 마리의 주꾸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무수히 많은 미끼가 던져져 있지만, 제가 소화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겠습니다. 거센 파도에 휩쓸릴 때 믿을 수 있는 건 오롯한 제 몸뿐인 것처럼 가닿지 못하는 시에 허우적거릴 때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시 같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언어로 낳아보겠습니다. "시집을 읽기 전과 후의 자신은 분명 달라져 있다"는 서윤후 시인의 말을 비틀어 한 편의 시를 쓰기 전과 후로 달라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 달라짐을 위해서 부족한 시를 뽑아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흔들릴지언정 시선(詩線)은 올곧게 미래를 바라보려 합니다. 시 한 편을 쓰고 난 후의 저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우수한 공모작들을 뒤로 하고 제 시를 뽑아주신 것에 감사한 한편, 매순간 방황하는 제 시가 뽑혀 죄송합니다. 그러나 죄송한 마음보다 더 크게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믿음에 부합할 수 있는 오롯한 시를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 부문 심사평

압축의 서사와 긴장의 언어
 올해 김용문학상 시 부문 응모작을 읽고 난 첫 느낌은 수다스러움이었다. 오늘의 우리 삶이 다분히 산문적이라는 사실에 동의하더라도 심사위원들은 시가 압축의 서사와 긴장의 언어를 잃어서는 곤란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시가 바라보는 오늘의 삶이 간단하지 않을 텐데, 다수의 응모작이 단선적 세계 인식에 갇혀 스스로 시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었다. 감각과 사유를 메타적으로 재사유(재감각)하는 대신 삶의 표면을 그리는 데 몰두하고 있는 작품도 많았다. 심사위원들은 우리 시가 천착해온 삶과 역사의 심정과 심층을 기대하면서 응모작을 꼼꼼하게 읽었다.
 심사위원들이 재독을 위해 가려 뽑은 작품은 「상태의 감정」, 「비비탄은 자꾸 흩어지기만 하고」, 「연못」, 「끝말잇기」, 「구심력주의보」 등 5편이었다. 「상태의 감정」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향해 가는 소실점의 감각을 '추상'해내는 방식이 이채로웠다. 「비비탄은 자꾸 흩어지기만 하고」는 사건의 언어를 부리는 데 능란했지만 우리 시에서 익숙하게 다루어 온 서사라는 아쉬움이 컸다. 「연못」의 경우 예언의 목소리를 통해 분위기를 주도하는 방식이 눈에 띄었지만, 이야기가 늘어지면서 모호해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끝말잇기」와 「구심력주의보」가 남게 되었다. 두 작품 가운데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뽑아도 무방할 만큼 특징적인 장점이 있었다. 「끝말잇기」는 "세 명 이상이 있는 공간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즈음의 생활 감각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특히 "외로움"의 끝말을 잇기 위해 "움"이라고 입술을 모으는 순간,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아이 석상" 이미지로 전환해내는 솜씨가 능란했다. 반면 「구심력주의보」는 직설적이고 우직한 언어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면과 면이 만나는 구간마다" 반복되는 자기로부터 "우화"의 상상력을 끌어낼 때만큼은 섬세한 통찰이 빛났다. "너무 쉽게 깨져버리는 유리의 성질"을 매미의 우화에 걸쳐놓는 솜씨도 기억해둘 만했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그야말로 구심력주의보가 울린 지 오래인 지구촌의 삶에 대한 인식도 인상적이었다.
 두 작품 모두 장점이 부족한 점을 덮고도 남았지만, 심사위원들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발굴되는「구심력주의보」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응모자 모두에게 감사와 격려의 말을 전하며 조심스럽게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시는 다 들려주는 장르가 아니다. 시인이 침묵할 때 독자는 스스로 찾아 읽을 줄 안다. 이렇게 여지를 남기는 장르가 시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심사위원: 강연호(시인,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신(시인,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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