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시를 쓰기 시작했으니 오늘로 딱 일 년째입니다. 드러내면 감춰야 한다 하고 감추면 드러내야 한다 하고, 짧게 쓰면 길게 써야 한다 하고 길게 쓰면 짧게 써야 한다 하고! 중간이 어려워 머리를 싸맸던 지난 계절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작품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사실 문학상 같은 것에 냉소적인 태도를 꽤 오랫동안 견지했었는데, 이유는 고등학교 때 백일장을 전전하면서 연거푸 겪었던 낙방 때문이었습니다. 그 경험은 굳은살은커녕 어떤 상처로 자리 잡아버려서, 저는 시도조차 안 하고 포기하는 데에 버릇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정해야겠습니다. 상처는 사실 그럴듯한 핑계에 불과했음을요.
소설만 쓰던 제게 시의 언어를 가르쳐주신 문창과 선생님들과 함께 작품을 합평하는 문청들, 더없이 소중한 친구들, 그리고 수상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뻐하시던 부모님, 모두 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쓰라는 뜻으로 알고 앞으로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시 부문 심사평
높은 수준과 거침없는 상상력의 전개
올해 원광 김용 문학상 시 부문 심사는 특별했다. 문학보다 콘텐츠가 더 논의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시를 쓰고 시인을 꿈꾸는 문청들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응모작들을 심사하며 새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특히 시 부문에서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무척 고무적이었다. 지금도 시를 쓰겠다고 불면의 밤을 보내는 문청들로 인해 심사는 자못 즐거웠다.
결선에 오른 작품은 「모래의 온도」 외 2편, 「격자」 외 3편, 「정육점」 외 2편, 「떨기나무」 외 2편, 「유리창의 기억」 외 2편 등이었다. 이들 작품들은 제각각 근사한 시적 상상력을 펼치고 있어 매력적이었고, 물론 또한 제각각 어딘지 균형이 완전하지 않은 풋풋함도 보여주고 있었다.
「모래의 온도」나 「얼음의 알츠하이머」 등의 작품은 간결한 시행 전개와 응축된 표현이 돋보였다. 수준이 고르게 높아서 안정적이기도 했는데 다만 조금 건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격자」나 「자세」 등은 작품 속에서 활달한 스토리텔링과 서사적 맥락이 뛰어났다. 그런 만큼 작품들이 대체로 길어 좀 더 압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정육점」과 「모래시계」 등의 작품은 세밀한 관찰을 통한 시적 형상화가 두드러졌다. 습작의 연륜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는 얘기와 함께 한편으로는 다소 밋밋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떨기나무」와 「언어의 기원」 등은 시적 표현이나 언어의 구사가 활달하고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설명적으로 풀어져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유리창의 기억」과 「수몰지구의 소문」 등은 능숙한 표현과 세련된 어법을 구사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롭지 않고 너무 익숙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최종적으로 당선작을 골라내다 보니 「격자」와 「유리창의 기억」 두 편이 마지막에 남게 되었다. 심사위원들은 「격자」가 펼쳐내고 있는 거침없는 상상력의 전개와 「유리창의 기억」이 보여주고 있는 안정적인 세련미 사이에서 잠시 서성거렸다. 선택은 늘 망설임을 동반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24시 콜센터에 근무하면서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화자의 내면을 포착하고 있는 「격자」를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안정적인 세련미보다 문청의 거침없는 패기를 택한 것이다. 투고한 모든 분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