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불명

배원우(원광대학교 문예창작과)

택배가 왔다
문 앞에 곧게 선 채로
받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 사람은 여기 없는데
종종 그 사람의 생활이 이곳으로 도착했다
작은 상자가 모서리를 가진 덕에
반드시 구석이 있는 포장 방법이 사용되었다
나는 그 사람의 짙은 눈썹이나 손등의 흉터
가려운 곳을 긁는 손짓과 어눌한 발음 같은
더 이상 벗겨지지 않을 외연을
그것으로부터 상상했다

내 생활의 구석에는
쓸리지 않는 먼지가 몇 겹 놓여있다
어떤 무렵은 공중을 떠다니기도 했으나
구석은 항상 구석에 있는 까닭에
먼지를 발견한 적은 없다
다만 한순간도 모서리를 가져본 적 없어
누군가의 모난 생을 짐작할 뿐

그 사람이 그 사람인 이유는
받는 사람의 이름이 없기 때문
그 사람은 자신의 생활이 지금
어리둥절한 마음 앞에 있다는 것을 알까
현관문을 계속 두드리는 게
택배인지 먼지인지 모호하다

나에게는 모서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그 사람을 아는 사람도 여기 없었으므로
나는 점점 어렴풋해진다

아무도 받을 수 없는
택배가 왔다



시 부문 당선 소감

이 말 역시도 변명이겠지만
 겁이 많고 무책임한 성격 탓에 무슨 일이든 멀리서 방관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사건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 어떤 것도 나의 탓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마주하고는 합니다. 
 어쩌면 시를 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생긴 버릇이겠습니다. 자신을 이야기 하는 것이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워서 저의 단어들은 자꾸만 남을 향해 멀어집니다. "스스로를 견딜 수 없다는 것만큼 견딜 수 없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심보선 시인의 말처럼 자꾸만 나로부터 나를 떼어놓아야 마음이 놓이는 이 비겁함이 부끄럽습니다.
 가끔 저에게 시를 쓸 자격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로지 남을 바라보는 저의 시는 모두 부질없는 것만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시 쓰기라는 건 부질없음의 쓸모를 찾는 과정이라고 믿기에 변변찮은 시를 계속 써 내려갑니다. 
 나도 한 번 써보자고 하는 다짐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시라는 것은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어서 답답하고, 이따금 영영 쓰고 싶지 않을 만큼 진저리가 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제 곁에 남는 것은 결국 시였습니다. 저는 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먼 집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시로부터 미움 받을 때마다 어떻게든 시에 매달려 보려합니다.
 우수한 공모작들을 뒤로 하고 제 시를 선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를 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교수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늘 숨어드는 저를 찾아와주는 친구들과 묵묵히 바라봐주는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이 상은 스스로를 마주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덕분에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제가 운 좋게 시를 씁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시 부문 심사평

시적 서사의 전개와 서정의 깊이 
 올해 김용문학상 시부분 응모작은 서정의 자장 안에서 개성 있는 목소리를 추구하는 시들이 많았다. 본심에서 논의된 응모작들은 기본적으로 시어의 해상도가 높았고, 명징한 이미지와 궤적을 나란히 하는 시적 서사도 나무랄 데 없었다. 게다가 시적 대상이 호락호락하게 시어에 포섭되지 않도록 긴장을 형성하는 솜씨도 눈여겨볼 만했다.
 꼼꼼한 읽기 과정을 거쳐 「아웃 포커싱」, 「파도의 잠」, 「석촌 호수」, 「새벽반」, 「수취인불명」 등 다섯 편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아웃 포커싱」은 초점화되지 못하는 대화를 통해 "편집했던 장면을 뒤적이듯" 인간관계의 단속적인 서사를 무리 없이 형상화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인상이 어떤 서정적 설득을 보여주기에는 다소 아쉬웠다. 「파도의 잠」은 "아빠"와 "죽은 여인"과 "아줌마"를 중첩시켜 입체감 있는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기다림은 옅은 물가에서 더 깊어졌다"는 시행으로 모아내는 솜씨가 돋보였다. 그러나 서사의 전개가 새롭지 않았다. 「새벽반」은 아버지와 함께 하는 새벽 낚시터의 풍경을 정교하게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지만, 아버지와 화자 사이를 "적막"으로 전면화한 근거가 미약해 보였다. 「석촌 호수」는 서로에게 사물이 되고 있는 관계 단절의 시대에 "옆집은 빈집"이라는 진단을 절실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하지만 서사가 너무 뚜렷하다는 점이 오히려 거슬려 보였다. 
 마지막으로 논의된 「수취인불명」은 택배 상자처럼 매일매일 "현관문을 계속 두드"리는 낯선 존재가 우리의 생활이자 삶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짚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 사람은 여기 없는데/ 종종 그 사람의 생활이 이곳으로 도착"하는 상황에서 "내 생활의 구석"에 쌓여 있는 "먼지"를 환기해내는 것이나, 수취인 없이 배달된 "작은 상자"에서 "누군가의 모난 생을 짐작"하는 일, 혹은 그 사람의 "벗겨지지 않을 외연을" 상상하는 일은 자기 존재의 본질을 응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아무도 받을 수 없는/ 택배"가 우리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서정과 통찰력 있는 사유로 제시될 수 있다는 데 착안한 상상력이 특히 돋보였다. 
 이상 최종적으로 논의된 다섯 편은 저마다 개성 있는 장점을 보여주었다. 모두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지만, 「수취인불명」의 매력이 선자들의 눈에 좀 더 두드러져서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당선자에게 더할 수 없는 축하를 보내면서, 당선되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도 머지않아 영광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고 뜨거운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강연호(시인,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신(시인,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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