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돋아나는 식물을 마주할 때면 다른 계절의 식물을 볼 때 보다 더 반가운 마음이 앞섭니다. 춥고 황량한 겨울 끝에 마주한 푸르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춥고 매서운 겨울을 이겨내고 거친 땅 위로 나온 귀한 생명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봄이면 언제나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 기쁨과 설렘으로 새싹들을 맞이합니다. 
 초봄의 대지를 다채로운 빛깔과 향기로 채우는 많은 식물 중 저는 유독 제비꽃을 사랑합니다. 제비꽃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꽃잎을 흩날리는 벚꽃의 화려함도, 진달래나 개나리 같은 고운 빛깔도 없지만, 제게는 소중한 추억이 담긴 꽃이기 때문에 더 애정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제가 어린아이였던 어느 봄날, 엄마와 저는 들에 있었습니다. 엄마는 분주히 일하셨고 저는 들녘을 가로지르는 철길 위에서 혼자 놀았습니다. 아지랑이는 아른아른 피어올랐고 봄볕은 더없이 맑고 따사로운 사랑스러운 봄날이었습니다. 저는 깡충깡충 뛰어놀다 철로의 딱딱한 돌 틈 사이에서 아주 작은 한 송이 보라색 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꽃이 어찌나 가녀리고 사랑스럽던지 저는 몸을 한껏 웅크리고 그 여린 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꽃을 만난 기쁨은 곧 걱정으로 변했습니다. 딱딱한 돌 틈에서 물은 어찌 마실 것이며 동무도 없이 어찌 홀로 있을지, 그 꽃이 안쓰러워 엄마에게 집으로 데려가자고 졸랐지만, 엄마는 들꽃은 들에서 자라야 한다며 묵묵히 일만 하셨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엄마 손을 잡고 긴 둑을 걸으며 몸은 집을 향하고 있었지만, 안타까운 제 마음은 자꾸만 그 꽃에게 향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제 휴대폰의 행방을 찾아야 하는 일이 빈번하지만, 유년 시절 그 봄날의 추억은 박제가 되어 제 마음의 액자에 언제나 그대로 걸려있습니다. 그 귀한 유년의 봄날로 인해 제비꽃을 마주할 때마다 항상 환하게 웃으시던 엄마의 모습도 떠오르고, 인생의 가장 평화롭던 유년의 그 하루가 생각나 기쁜 시간을 선물 받게 됩니다. 우리 학교 교정 여기저기에도 봄이면 언제나 제비꽃이 피어납니다. 강의실로 향하다 그 여린 꽃잎들을 만나게 되면 저는 언제나 허리를 굽히고 눈인사를 나눕니다. 그러나 강의실에 들어서서 학생들에게 캠퍼스에서 제비꽃을 보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제비꽃이 무엇이냐는 듯한 묘한 표정을 짓곤 합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 사태와 봄의 불청객인 미세먼지와 황사로 인해 어쩌면 많은 한국인은 반가운 마음으로 봄을 맞이하지 못할 것입니다. 코로나 시국에 조심스레 상춘객이 된다고 할지라도 무리 지어 피어나는 화려한 벚꽃이나 개나리, 영산홍 등 화려한 꽃에 눈길이 머물지 허리를 굽혀야만 볼 수 있는 제비꽃같이 작은 들꽃에는 눈도 마음도 쉽게 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매일 소중한 선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마음이 아닌 감각이 신속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더 많이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고 낮게 피어난 들꽃을 바라보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 하듯, 삶의 소중한 것들을 찾기 위해 우리는 힘겨운 까치발을 들기 보다는 마음의 허리를 가끔 낮추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기울인다면, 진정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봄날 들녘에 지천으로 들꽃이 피어나듯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 더 많이 피어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올봄에는 우리 학생들이 마음의 허리를 낮추어 주변에 있는 것에서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이 여러분의 청명한 마음의 시선이 되도록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박경화 교수(융합교육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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