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원대신문>이 창간 65주년을 맞이했다.  1956년 10월 20일 창간한 이후 <원대신문>은 현재까지 전국적 명성을 이어가는 4년제 대학학보사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단단히 쌓아올린 공든탑도 비바람 앞에서 시련을 겪기 마련이다.
 이에 <원대신문>은 창간 65주년을 맞아 <원대신문>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 대학학보사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원대신문>이 창간 65주년을 맞았다. 지난 65년의 역사가 우리대학의 역사요, 우리 사회의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한없이 궁핍했던 경제개발의 시대와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격랑의 시대,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이다.
 65년,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의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해왔는가. 그것은 <원대신문>도 마찬가지. 오래된 신문은 이제 꿉꿉한 냄새를 풍기고 작은 손짓 하나에도 바스라지기 시작했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기록은 여전히 날카롭게 날이 선 채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학내 탄압과 검열로 인해 홍보지로 전락하거나 폐간하는 학보가 있는 반면, <원대신문>은 익산 유일의 4년제 대학 학보사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는 선임 기자들의 피와 땀이 담긴 노력의 결실이며,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기자들의 헌신 덕분에 이룩할 수 있었던 성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예견돼 왔던 대학신문의 위기를 <원대신문> 또한 피해갈 수 없었다. 주간 발행이 격주 발행이 되고, 일시적이지만 월간 발행을 했던 적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재앙이 캠퍼스를 휩쓸면서 취재거리가 줄어들고 퀄리티 또한 낮아져 신문 제작에 난항을 거듭한 적도 있다.
 이런 위기가 닥쳐왔음에도 기자들은 여전히 펜대를 놓지 않고 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이 위기는 그저 시대가 흐름에 따라 도래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달리 해야 할 때다. 지금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원대신문>은 창간 65주년을 맞아 지난날의 과거와 오늘날 도래한 대학신문의 위기를 짚어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

<원대신문>의 흐름
 1956년 10월 20일, 우리대학 <원대신문>은 <圓大學報(원대학보)>라는 이름으로 창간되며 세상에 첫 발을 내디뎠다. 옛날신문답게 국한문을 혼용했으며 신문은 단락의 오른쪽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읽어야 했다. 면은 총 4면으로 '보도', '종합', '기획', '문화' 등으로 구성됐다.
 이 당시 신문은 지금처럼 지역사회나 국내 사회 이슈도 함께 다루기보다는 오로지 교내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주로 입학식이나 졸업식, 학과 신설, 교내 건물 증축 및 신축 등 학사 보도 혹은 당시 재학생들의 시·소설·수필을 담아내고 있다.
 이후 70년대에는 전면 흑백에서 개강호·창간기념호에는 1면 컬러로 바뀌고 면수가 늘었으며 한글을 좀 더 많이 사용하는 등 변화가 생겼고, 80년대에 접어들면서 가로로 판형이 바뀌고 면수도 한층 더 늘어났다. 이때가 바로 <원대신문>을 비롯한 대학신문의 황금기라고 감히 표현할 수 있는데, 그 위상이 어느정도였냐면 월요일 아침이면 학생들이 우선 학과 사무실부터 들러 <원대신문>부터 찾았다고 한다. 정치적 억압이 극에 달했던 시절, 학내 여론을 형성해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등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학생운동에 중추적 역할을 맡았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90년대에는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기자 이름 뒤에 개인 이메일 주소가 생기고 오로지 한글로만 기사를 작성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이후 21세기에 이르러서는 대판에서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변형됐고 전면 컬러 인쇄로 바뀌었다. 이때 지면은 '보도', '인터뷰', '현장', '기획', '문화', '학술', '대학', '심층진단', '글로벌', '여론', '화보' 등의 총 16면으로 구성됐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변화를 겪으며 다들 잘 알고 있는 지금의 <원대신문>으로 모습을 갖췄다. 65년이라는 긴 세월만큼 모습 또한 많이 바뀌었지만, 대학학보사로서 교내소식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히 학생들에게 알리려는 이념 하나만큼은 창간 당시와 비교해도 변한 것이 없다.

찬란한 기록들
 앞서 언급했듯 1970~80년대는 <원대신문>을 비롯한 대학신문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시대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언론 탄압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1980년 전두환이 집권하는 시대 한국 언론은 가장 암흑기였다. 전두환 정권은 다수의 언론인을 강제로 해직하고 광주사태 이후 언론통·폐합을 실시해 민주화 요구를 막고 신군부에 대한 언론의 자발적인 충성을 요구했다. 9시 뉴스의 시작은 항상 전두환 대통령이 등장했으며 대중매체는 전두환 대통령의 이미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이른바 '땡전뉴스'의 시대가 펼쳐졌다. 1988년 2월 노태우 정권이 집권한 후에도 광주사태, 전두환 구속 요구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 등으로 언론에 대한 국민의 비판의식을 고조시켰고, 국민은 '누구를 위한 언론이고,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라는 목소리를 냈다.
 1980년은 수많은 탄압과 독재의 시기였다. 특히 사람들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독재 정권의 검열이 생기며 시민들의 언론을 향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학생들은 이 독재 정권의 검열을 피하려 종이신문을 통해 자체적으로 정보를 모으고 공유하며 더욱 응집돼 나갔다. 그렇게 자체적으로 학생신문과 대학신문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고, 주로 대학의 이야기보다는 사회적 시국 현안을 다루며 학외 기사로 도배됐다. 그만큼 대학언론은 대학생들이 사회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을 수 있었던 당시 몇 없던 매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검열을 피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학 대내외적으로 신뢰도가 높았고 활발했던 학생운동을 도와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이는 대학언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의의가 돼주었다. 아래는 당시 <원대신문>의 주요 기사들이다.

작아져만 가는 대학신문
 1988년 580호 원대신문
 - '누구를 위한 언론 자유인가'
 88년도에 발행한 32주년 창간기념기획은 일제강점기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이어진 '한국 언론 탄압사'를 심층적으로 적어냈다. 지금까지 각 정권의 언론탄압 정치를 겪으며 언론의 색깔이 사라졌음을 '울지 않는 새, 짖지 않는 개'에 비유했다. 개는 짖어야 하고 새는 울어야 한다며 과거 언론과 달리 이제는 비판의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 '청년 학생의 투쟁 방향'
 88년 2월 집권한 노태우 정부가 광주학살 진상조사, 제5공화국 부정비리 진상조사 및 전두환·이순자 구속 문제, 부정선거 진상조사 등 많은 국민의 요구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뒤로한 채 자신의 정권 안정화에만 힘쓰고 있다고 외쳤다. '노태우 재신임을 저지하고 결국에는 노태우 권력을 박살 내는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며 강하고 거침없는 태도를 가졌다.
 1989년 607호
 - '너와 내가 함께 어울려 참세상의 그날까지 뛰어보세'
 우리대학의 축제에서도 당시 학생들의 운동 정신을 비춰볼 수 있다. 학생들은 탄압과 독재에 맞서 독재 타도 5종 경기를 진행하고, '투쟁! 참세상 그날까지'라는 문구로 된 나무를 태우는 등 당시 대학생들의 축제 속에서도 정부를 향한 투쟁 정신을 엿볼 수 있다.
 1991년 660호
 - '언론노동운동의 성과와 반성'
 우리대학 학생들은 70년대 유신정권 이후부터 80년대 제5공화국에 이르는 상황과 언론의 자유 쟁취운동들이 오랜 기간 동안 계승돼왔다. 그 방향과 목적을 잃지 않고 어떻게 운동을 이어왔는지를 시작으로 그간의 성과를 살펴보고 언론노동운동의 한계를 정리했다.
 1970~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약해진 민주화의 열기, 운동권 쇠퇴와 함께 인터넷이 발달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시선은 종이신문보다 편리성이 뛰어난 웹서비스에 집중했고, 이는 곧 종이신문의 퇴보를 앞당기게 됐다.
 이어 대학신문들은 학생들의 전유물이자 학교에 귀속된 부속기관이 되며 일부에서는 대학에 대한 비판 기사와 민감한 정치 이슈에 대한 검열이 이뤄지기도 했었다.
 현재에 와서는 정치적인 이슈보다 사회문제, 대중문화 같은 더 다양한 문제가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이는 다른 매체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더 정확하게 알려지기 때문에 대학신문만이 주는 진보적인 성향과 젊은 지성 및 시각 등의 특색이 무뎌지게 만들었다. 특히 정보 전달 매개체의 증가는 이를 더 가속화시켰다. 오늘날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의 정보 혁명은 종이신문의 역할을 급격하게 위축시키고 있다. 매일 발행하는 일반 신문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하물며 대학신문의 신세가 오죽하겠는가. 많은 대학들이 지면을 줄이거나 발행주기를 격주로 하는 등 대학의 언론 창구로서 종이신문의 역할을 축소하고 있는 현실이다. 
 1998년 <경향신문> 오창민 기자가 작성한 <'세월무상' 흔들리는 '대학신문'>에서는 "근래 들어 대학신문은 학생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며 선동적인 편집과 근거리통신망의 등장 등을 원인으로 해석했다. 2020년 <경향신문>에서도 <'대학언론의 위기' 우려 확산, 90년대 이후 정체성 혼란 심각>이라는 제목으로 대학신문의 위기를 꼬집었다.
 대학신문과 종이신문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면서 <원대신문> 또한 학생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긴 시간 동안 이야기된 '학보사의 위기' 속에서 우리대학 영자신문사 <원광헤럴드>가 폐간을 맞이했고, <원대신문> 또한 매년 발행 횟수가 줄어드는 추세다.<원대신문>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이슈와 대학생들의 관심사를 적절히 섞으며 '원광리포트'를 기획했고, 특히 학생들의 관심이 필요한 대학의 문제점을 알릴 수 있는 '고슴도치'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열린소리', 신문사와 소통 및 피드백이 가능한 '원대신문을 읽고' 등의 코너를 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다른 숱한 학보사에서도 기울였던 노력이다. 계속해서 학생들의 관심이 시들해져만 가는 이 상황을 더 이상 노력이라는 안대를 뒤집어 쓴 채 두 눈을 가려서는 안 될 일이다. 잔혹할지라도 이제는 현실을 마주해야 할 때다.

대학신문의 현실 
 앞서 대학신문의 위기가 도래한 것에 대한 이유로 인터넷의 발달을 꼽았지만, 이는 가장 거대한 덩어리일 뿐 이를 잘게 나눈다면 여러 이유가 더 있을 것이다.
 먼저 신문은 소통의 방향성이 일방향성이다. 이는 <원대신문>만이 아닌 신문이라는 매체가 지닌 특성인데, 신문은 일단 발행이 되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더 이상 손댈 수가 없는 것이다. 최근 대학신문을 대신해 대학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SNS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살펴보면 댓글을 통해 실시간으로 쌍방향 소통이 이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학신문이 과거에야 학생들의 공적·사적의 장을 제공했지, 더 쉽고 간편한 대체제가 많은 지금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낼 수가 없다.
 또한 대학신문은 학보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보니 학교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과거 1970~80년대를 돌이켜보면, 그 당시 대학신문들은 자신의 학교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일에 거침이 없었다. 물론 당시 운동권이 강성했었기 때문도 있었고 지금과 달리 대학신문의 위상이 드높았기 때문도 있겠지만, 지금의 학보사는 대체로 '신문'이라기보다 '홍보지'로 읽힐 우려가 깊다.
 지난 2015년 배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대학언론의 자유' 조사 결과에 따르면, 45.8%가 '재단 비판보도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답했다. 학내 신문이 최우선으로 비판하고 평가해야 하는 대상이 대학이라는 지점에서 학보사와 학교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예고됐던 대학신문의 위기를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위기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 이는 한철 지나가는 열병이 아닌 <원대신문>의 존폐가 달린 문제다.
 창간 65주년을 맞은 <원대신문>이 더욱 장대한 미래를 그려나가기 위해서는 필자를 비롯한 기자들이 마음을 달리 먹어야 할 때다. 지난날의 소극적이었던 태도는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앞으로 <원대신문>의 기자들은 독자들이 어떻게 하면 읽을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늘 품고 있어야 할 일이다. 시키면 쓰고 하라면 하는 수동적 태도보다는, 먼 과거 선임 기자들이 그러했듯 치열한 자세로 책임감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원대신문>의 주체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바로 기자들이다. 기자들이 있기에 <원대신문>이 있고 비로소 우리대학의 역사가 기록된다. 앞으로도 65년의 역사 위로 찬란한 기록을 겹겹이 쌓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정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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