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선 김치볶음밥에 사라다를

강지훈(문예창작학과 4년)

 사람들이 야구를 보고 응원팀을 정할 때 저마다 여러 이유를 가진다. 누군가는 단순히 좋아하는 선수가 있어서, 재미있는 경기를 해서 특정 팀의 경기를 보기도 한다. 반대로 선수와는 상관없이 자기 동네에 팀이 있어서 응원하는 사람도 있다. 내 주변은 주로 전자에 속하지만 나는 좀 특이하게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게 뭐 술 취한 아저씨마냥 우리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가까운 곳에서 야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가까움'이라 하는 거리적 요소에 주안점을 두고 응원팀을 택한다. 야구같이 매일 해도, 축구처럼 일주일에 한두 경기만 해도 늘 가까운 팀을 응원한다. 팀의 강하고 약함과는 별개다. 그냥 우리 동네 팀이니까. 물론 지는 날이 당연히 더 많고, 심하면 두 배나 더 많기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팀의 경기는 보러 가지 않는 게 유익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질 못한다.
 누군가는 인기 없는 약팀의 빈 경기장을 보면 못해서 인기가 없다며 혀를 차겠지만 그래서 더 좋다. 옆에 가방을 놓을 공간이 생기고, 앞좌석에 발을 올리고 맥주를 홀짝일 공간이 있으니까. 경기가 열리는 매일 18시 30분경의 경기장, 국민의례 중 생각 없이 위를 올려다보면 마치 김치볶음밥을 만들 때 들기름이 입혀진 밥알에 김칫국물이 물 들 때의 때깔 같은 해질녘 하늘이 입에 침이 돌게 하며 동시에 고소한 볶은 김치 냄새를 연상케 한다.
 잘게 썬 김치와 햄 등 내용물과 뒤섞여 후라이팬 속 제 형체를 잃은 밥을 예쁜 반구형 모양으로 담아낼 나팔꽃 그림이 그려진 하얀 접시를 그려내고, 경기 전 몸을 푸는 선수의 타구 소리가 팬에 붙은 밥풀을 긁어낼 때의 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
 주심이 플레이볼을 외치고 외야 양 끄트머리에서 높이 솟은 조명탑이 부채처럼 펼쳐진 그라운드의 초록 잔디를 난연히 비추면 나는 넓은 필드에 조그마하게 서 있는 열댓 명의 선수가 담장 너머 전광판보다, 길 건너 주상복합 아파트보다도 크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야 보이는 전광판은 점수를 보면 혈압이 오르니까 일부러 보기 어려운 위치에 뒀다고 모두가 말하지만, 나는 경기에만 몰입할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하얀 조명이 밝게 비추면 관중석으로 빛을 반사할 하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과 초록색 천연잔디가 김치볶음밥에 어울리는 사라다 반찬 같다. 이렇게 식탁 위에 밥과 반찬을 올려 경기를 음미할 준비를 마친다.
 김치볶음밥에 사라다, 그리고 야구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적당히 밍밍한데 미지근하고 비싸면서 그냥 잘 넘어가기만 하는 싸구려 맥주까지. 이 얼마나 맛난 조합인가. 내가 야구를 본다는 건 승패와 관계없이 저 식단을 맛보기 위해 가는 여정이다. 사실은 지는 경기를 볼 가능성이 두 배나 높아 늘 저런 발상을 머금고 있어야 돈을 내고 입장할 수 있는 법이다. 순수하게 지는 모습은 인터넷 중계, 아니 경기 후 기사로도 충분하다.
 승리의 단념, 이것이 내 고장 팀을 응원하는 데 있어 가져야 할 필수 마음가짐이다. 경기장에 갈 이유를 경기 밖에서 찾는다. 어르신들은 이 사유를 주로 애향심에서 찾는데, "우리 동네의 자존심이 걸렸으니까"같은 핑계를 구구절절 대신다. 그래서 매일 승기가 기울어지면 숨겨온 소주 팩을 꺼내 밍밍한 맥주에 말아 한잔 잡수시곤 필드에서 들리지만 않을 수준으로 적당히 크게 소리를 지르며 욕만 하신다. 누군가는 이를 추태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가끔 불 조절에 실패해 타 버린 밥풀 쪼가리라고 생각한다. 매일 먹으면 문제가 있지만, 가끔 삼키면 큰 지장은 없으니까. 가끔 보면 재미있는 모습이다. 격동하는 낭만과 혈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끔 가다 이기는 경기도 있다. 이런 날엔 괜히 과식을 한 느낌이 들고 속이 더부룩해진다. 나는 승리를 전제로 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나름의 대책이 있다. 그냥 실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왜 가끔 사라다도 보면 제대로 섞지 않아서 한 곳에 메추리알이 서너 개씩 눈에 띌 때도 있고, 김치볶음밥도 햄을 대충 썰어서 큰 덩어리가 한두 개씩 나오는 날도 있지 않나? 나에게 승리란 그런 존재다. 단지 못하는 팀이 실수로 만들어 낸 조합 중 하나.
 한 예로 소설가 박민규는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는 "잡지 못 할 타구는 잡지 않고, 치지 못할 공은 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보는 야구도 아마도 이와 가장 비슷할 것이다. 그냥 잡지 못할 타구를 잡지 않고, 치지 못할 공을 치지 않는 경기를 보고, 간혹 상대가 더 못 해서 이기는 경기를 본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 나오는 만년 패전투수 감사용도 프로야구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OB 베어스의 박철순을 상대로 뛰어난 투구를 한 번은 보여준 것처럼. 못하는 놈도 가끔은 잘 할 때가 있고, 이는 그저 실수일 뿐이다.
 이처럼 야구가 아닌 경기장 같은 다른 요소를 즐기면 되는 법이다. 물론 이런 관점에서 경기를 보는 사람은 적다. 비인기 팀도 연간 60만 명 언저리의 사람이 이기는 경기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고, 응원 팀의 승리를 위해 돈을 쓴다. 나도 야구를 10년 넘게 보며 그런 다양한 관점들을 한 번씩 체험했기 때문에 아직 뭘 모른다고 손가락질을 하지도 않고 대놓고 면박을 주지도 않는다. 다만 역전패의 후유증이 온몸을 껴안은 나머지 욕을 하는 몇 사람들은 무언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냥 김치볶음밥에 사라다를 먹으러 왔다 생각하면 그만인데. 이 분위기를 보고 배경을 먹으면 그만인데.
 그래서 경기의 결과와 상관없이 집에 온 뒤, 혹은 보러 가기 전에 엔간하면 김치볶음밥을 먹으려는 편이다. 사라다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메뉴라 귀찮기도 해서 종종 생략하지만. 난 주위 사람들에게 어디든 경기장을 한 번만 가보라고 한다. 그곳에서 저마다의 메뉴를 찾아 맛을 보고, 질릴 때까지 먹어봤으면 해서다. 이것이 내가 야구를 보는 관점이고, 저마다 레시피가 하나씩 있었으면 한다. 잊을 때마다 한 번씩 먹는 음식이 있다고 나쁠 건 없으니까.
 

 

당선 소감

"뭐라도 써보자"
 당선작을 쓰던 시점엔 사실 글을 쓸 열의가 별로 없던 상태였습니다. 지난 3년 반 동안 질리도록 봐왔지만 나아진단 느낌이 별로 들지 않던 저의 텍스트를 굳이 만들 이유도, 다듬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강 후로는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나 『세컨드 핸드 타임』등의 논픽션을 읽기도 했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 등 여러 책을 두루 읽어 볼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나는 저런 글을 왜 쓰지 못 할까?"하는 고민도 생기지만, 한 편으로는 "뭐라도 써보자"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개선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단 쓰는 자체로 나아질 가능성은 생기니까요. 그래서 정말 좋아하지만 가장 미워하는 공간인 야구장에 대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올해의 야구장을, 코로나 이후 사람이 들어가지도 못하는 야구장을 가지고는 쓸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구를 가장 재미있게 봤었던, 막 창단 후 한참 못 하던 시기를 소재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6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해 틀린 내용도 있고 어디까지나 평일 저녁경기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분위기만큼은 잘 전해진 것 같아 조금은 뿌듯합니다.
 졸업선물로 주는 상이라 생각하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홀림-Day '글' 공모전 당선작 시상식(왼쪽에서 세 번째 강지훈 씨)
홀림-Day '글' 공모전 당선작 시상식(왼쪽에서 세 번째 강지훈 씨)



심사평

 올해 <홀림-DAY 글 공모전>에 모인 글은 총 92편으로 작년에 비해 20% 가량 증가했다. 더욱 뜨거워진 참여 열기의 원인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함께 견디고 있는 코로나 시국과 연관 지어 분석하는 게 타당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부분적이나마 대면 수업이 재개되며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했고 그만큼 공모전에 대한 관심 역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아이러니하게도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되며 학생들이 작년에 겪었던 우울감과 무력감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분석이 가능했던 이유는 늘어난 응모작의 수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글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모인 상당수의 작품은 코로나와 관련된 주제 및 소재를 지니고 있었고 그 내용의 분위기 또한 침울하였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주제와 소재는 다양했으며 그 분위기 역시 활력이 넘쳤다. 그 덕분에 올해 심사는 작년에 비해 한결 순조롭고 마음의 부담 역시 덜했다.
 <홀림-DAY 글 공모전>은 다른 사람을 홀릴 수 있는 매력적인 글을 찾자는 취지로 탄생했다. 따라서 모든 문학 공모전이 그렇듯 이번 심사 역시 글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따져가며 진행되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에 모인 시 작품들은 진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시는 그 장르적 특성을 고려할 때 그에 맞는 언어와 형식을 요한다. 단순히 짧은 문장을 통해 감정을 토로하는 것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따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시를 어려워하고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는 점을 학생들이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에 반해 수필, 소설과 같은 산문 작품들의 완성도는 전반적으로 높았다. 참신하고 흥미로운 소재가 많았고 비교적 그 형식과 구조 역시 잘 갖춰져 있었다. <살과 봄>의 경우 일상적 소재를 정교한 문장과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수필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번 공모전의 심사 기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흥미 요소'가 경쟁작에 비해 다소 아쉬웠다.
 아이가 새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이 새로운 가정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에로틱과 위트의 경계를 오가며 풀어낸 소설 <언덕> 역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다만, 분량 탓인지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급진적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공모전의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야구장에선 김치볶음밥과 사라다를>은 수필의 매력을 잘 발산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수필을 쓰는 목적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 목적이 무엇이든 일상 속에서 발견한 어떤 의미와 가치를 글로써 구체화하는 작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수상작은 저자의 넓은 시야와 통찰력이 느껴지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야구장'이라는 공간에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삶의 전반적인 영역으로 옮겨와 그 의미를 능숙하게 확장해 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안정적이고 완성도 높은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도 선정에 크게 작용하였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활동을 기대한다.
 아쉽게 수상의 기회를 놓친 학생들이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선정에서 제외된 것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서툴렀기 때문이다. 글쓰기 능력을 갖추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다음 수상의 영예는 본인의 몫이 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갖길 바란다.
 여전히 글이 지닌 치유의 힘을 믿는다. 때로는 두렵고 쓸쓸할 청춘의 길을 거닐고 있을 우리 학생들이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읽고, 쓰며 그 치유의 힘을 경험하길 간절히 기대한다.

임석규 교수(심사위원장, 국어국문학과)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