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사 부산·통영 연수가 지난해 12월 20일부터 22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원대신문>에서는 이번 연수기를 단편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노을과 등대 그리고 부산 해운대

 우리대학 신문방송사 연수단은 지난 동계 방학기간   (12월 20일~22일) 중에 국내 연수를 다녀왔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시점이었기에 연수단 전원 백신 접종을 마치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진행했다. 연수단은 첫째 날 경남 김해에 위치한 봉하마을과 부산 해운대, 둘째 날 거제도와 통영, 셋째 날 장사도를 거친 후 연수를 마무리했다. 이번 호에서는 연수단이 남긴 족적을 뒤밟으며 행복했던 추억을 되새기고자 한다.
 
 연수 첫째 날
 연수 첫 날이었던 지난해 12월 20일, 연수단은 아침 일찍 모여 체온 측정 및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잠이 덜 깬 탓인지 정신은 몽롱했지만, 타지로 떠난다는 사실에 두근거리는 가슴이 여행의 이유를 실감케 했다. 연수단 모두 같은 생각이었는지 버스 안 공기가 금세 설렘으로 가득 찼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은 화가의 손길이 스친 듯 더없이 아름다웠고, 피부에 와 닿는 햇볕도 따스했던 그런 날이었다.
 깜빡 졸기에도 아까운 이동 시간을 뒤로 하고 연수단은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경남 김해시에 위치한 봉하마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우리대학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바 있으며, '인간적인' 서민 대통령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회자하고 그리워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봉하마을은 삼삼오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은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연수단 역시 그의 생가를 돌아본 후 봉하마을 이곳저곳에 새겨져 있는 그의 흔적들을 좇아가기 시작했다.
 사법고시 합격 이후 판사를 거쳐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던 시절,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파격적인 정치 행보를 보이던 시절, 이후 제16대 대통령으로서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시절 등. 봉하마을을 거닐며 그의 생애를 돌아보니 참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사신분이구나 싶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그가 변호사 시절 구속된 적이 있었는데, 이 건과 관련한 구속적부심사에서 무려 99명의 변호사가 무료변론을 자청했다는 이야기다. 이 일은 영화 「변호인」에서 그대로 묘사됐는데, 그의 성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이지 싶다.
 어느 정치인이 안 그러겠냐마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다. 우리나라 정치인 중 최초로 팬클럽이 생겼을 정도로 열렬한 지지자가 많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적 또한 많았다.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에는 조심스럽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치인들에 비해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졌던 인물이었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화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화마을

 

 한동안 봉하마을을 둘러본 연수단은 다음 목적지인 부산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몸을 내리자 물씬 풍기는 바다 내음이 장거리 이동으로 지친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이후 송정과 해운대를 운행하는 해안열차를 탔는데, 열차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해안열차는 부산 바다를 품고 있는 수평선을 따라 멈출 줄 모르고 달려 나갔고, 어느덧 날은 저물기 시작해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자 온통 어둠이 내려앉은 채였다. 연수 첫째 날을 이렇게 마무리하기는 아쉬워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나가 무작정 모래사장을 밟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여행이 이제는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지금, 하루라도 빨리 우리의 일상이 돌아와 걱정 없이 국내를 누비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필자는 밤바다가 들려주는 파도 소리에 젖어들었다.
 
 연수 둘째 날
 아침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고, 연수단은 둘째 날 일정을 위해 숙소를 나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둘째 날의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부산 국제시장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의 무대이기도 한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전국 각지에서 엄청나게 많은 피난민이 몰려들어와 장사를 시작한 시장으로, 부산항으로 유입된 미군의 구호물자 및 군용물품, 밀수품 등이 이곳을 통해 전국으로 공급됐다. 그때의 영향으로 지금도 국제시장 곳곳에서 미군 군용물품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규모도 어마어마해 볼거리가 상당했다. 그리고 국제시장 바로 옆에는 국내 최대 수산시장인 자갈치시장이 자리 잡고 있는데, 수많은 관광객과 상인들로 인해 활기가 넘쳐나는 곳으로 그야말로 바다의 도시 부산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부산을 떠날 때가 찾아왔다. 떠나는 발걸음에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연수단은 다음을 기약하며 떠날 채비를 했다.
 다음 목적지는 바로 거제와 통영. 가는 길에 부산과 거제를 잇는 다리인 거가대교를 통해 이동했는데,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와 눈부신 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고 표현하는 게 올바르리라. 어머니의 품처럼 광활하고 깊은 바다를 바라볼 때면 불안과 걱정 따위의 생각들이 그대로 저 파란 세상에 스며드는 듯 했다. 그렇게 백지가 된 머릿속에 남는 것은 자연의 위대함과 세상의 아름다움으로, 필자가, 그리고 많은 이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연수단이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거제 포로수용소였다. 거제 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 중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세워진 수용소로, 전쟁 기간 동안 전국에 세워졌던 수용소 중 가장 큰 규모라고 일려진 곳이다. 또한, 한국전쟁의 참상을 증언하는 자료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관광지로서 많은 변화를 맞았지만, 그럼에도 거제 포로수용소는 입구부터 왠지 모를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백년도 채 되지 않은 과거, 이곳은 얼마나 아픈 사연들이 공존하는 곳이었을까. 대부분 철거됐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몇몇 유적들이 그날의 지옥도(?)를 보여주는 듯 했다. 전쟁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참호와 막사 그리고 군용 물품 등, 그곳을 둘러보는 내내 이상하게 발걸음이 무거웠고 전쟁의 참혹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그 장소가 다시금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우리나라는 휴전 상태일 뿐 여전히 전쟁을 겪고 있는 나라로, 지금이야 관광지가 된 이 거제 포로수용소가 언제든 본래 목적에 걸맞은 곳으로 바뀔지 모를 일이다. 물론 상상만으로 그쳐야 할 일이겠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지 않나. 지금은 평화롭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우리는 마음 한구석에 그날의 아픔을 담아둬야 할 것이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민족의 고통을.
 거제 포로수용소를 둘러본 후 연수단은 날이 어두워지기 전 통영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부산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바다가 한 눈에 내다보였다. 잔잔하면서 고요한 바다. 온통 어둠이 내려앉아 달이 더욱 도드라져보였다.
 유독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침대에 누워 연신 잠을 청해봤지만 도통 잠들 수 없었다. 한 해의 끝이 바투 다가온 것이 실감났기 때문일까. 깊은 고뇌가 불러온 침묵의 연속은 결국 의식의 흐름을 멈춰놨고, 눈을 뜰 때쯤 통영의 햇살이 따스하게 필자의 얼굴을 핥고 있었다.

부산·통영 연수에 참여한 신문방송사 연수단
부산·통영 연수에 참여한 신문방송사 연수단

 연수 마지막 날
 연수의 마지막 날이었다. 벌써?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누가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있으랴. 서둘러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연수단은 아쉬움을 가득 그러안고 숙소를 나섰다.
 짧았다면 짧고 길었다면 긴 연수의 마지막 목적지는 장사도 해상공원이었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은 그 어떤 곳보다 바다를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연수단은 장사도 해상공원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 이동했다. 배를 타본 적은 꽤나 예전이라 처음에는 무척 신나고 설렜지만, 이윽고 찾아온 배 멀미 탓에 눈을 감고 얼른 도착하기를 바랐다. 씁쓸하고 웃픈 기억이지만 이따금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과 드넓은 망망대해가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뚜렷하다.
 장사도 해상공원은 그렇게 큰 섬은 아니지만 볼거리가 많았다. 장사도 해상공원 하면 동백꽃으로 유명한데, 그 때문인지 섬 곳곳에 동백꽃으로 꾸며놓은 포토 존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탁 트여진 전망대 또한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손쉽게 만끽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무지개다리, 옥상정원, 공원 등 즐길 거리가 다양해 연수의 마지막 여행지로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후 장사도 해상공원을 빠져나온 연수단은 여정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싣고 익산으로 향했다. 2박 3일이라는 기간 동안 연수단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각자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그리고 한 해의 끝에서 우리는 마음 한구석에 평생 남을 경험을 간직했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여정을 완전히 만끽할 수는 없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 아닌가. 눈 깜짝할 새에 어느덧 새해가 찾아왔고, 신문방송사 연수단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우리대학 언론의 불을 지필 것이다. 올해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런 추억 하나쯤 가슴에 품고 지낸다면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 또한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았기를, 또 앞으로도 가득 쌓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인다.

김정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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