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5면에는 매년 원대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원광김용문학상의 역사와 역대 수상자 명단, 그리고 부문별 이전 당선자들의 기고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제16회 시 부문 - 박서영
제16회 시 부문 - 박서영

방어기제와 부끄러움 사이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내 소원은 강아지를 기르는 것이었다. 엄마는 항상 안 된다고만 했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연말이면 제작하는 학교 문집에 나는 『어린 강아지』라는 시를 썼다. 강아지는 이미 어린 개체이므로 제목부터 비문이다. 내용도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를 내가 주워서 키운다는 게 전부다. 문집이 발행되고 난 후 나는 내 시가 적힌 페이지만 의식적으로 피했다. 혹여 누가 읽었을까 봐 항상 조마조마했으며, 드물게 시를 언급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거 정말 이상하지 않아?'라고 먼저 나서서 깎아내렸다. 고작 여덟 살이었으니 제목이 비문임을 알아챘던 것은 아니었다. 그 시는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고백한 나의 내면이었다.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드러낸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따로 배운 것도 아닌데 본능처럼 그랬다.
 시는 그런 것이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때처럼 어리지도 귀엽지도 않으며, 세상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못한다. 둘리보다 고길동을 좋아하고, 새하얀 눈이 쓰레기보다도 못하게 느껴진 지가 한참 됐다. 그러나 내면을 고백하는 일만은 그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창피해한다. 자라는 동안 많은 것을 잃었고 또 떠나보냈는데, 이 부끄러움만은 내 곁에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김용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됐을 때도 나는 부끄러워했다. 수상작인 『격자』는 그 당시 나를 지배하던 패배감에 관한 고백이었다. 내가 이렇게 못나고 우중충한 인간이라고 광고하는 것만 같았다. 누가 이 시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를 바랐다. 시가 실린 신문의 페이지는 읽지조차 않았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었으므로 언급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술자리에서 나는 몇 번 수상에 관해 남들과 이야기를 나눠야만 했다.
 분명히 대화의 주제는 문학이었다. 그런데 문학 얘기는 다 잊히고 그날의 온도와 사람들 얼굴만 선명하게 기억난다. 종강을 앞둔 연말이었고 몹시 어두운 곳이었다. 나는 시 얘기를 하다가 밴드 자우림을 언급했다. 콘서트에 간다고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자우림을 그때만큼 듣지 않는다. 별로 위로가 필요 없어서다. 하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벅차서, 하루하루가 솔직히 고통이라서, 자우림을 자주 들었다. 문학으로 구원받는 게 너무나 당연한 환경이었다.
 내가 달라졌음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것이 바뀌어도 부끄러움이 사라지지 않으면 그건 진짜 변화가 아니다. 나는 아마 영원히 내 시를 창피해할 것이다. 그러다가도 내면을 전부 고백하고 말 테다. 왜냐면 나는 글쓰기 말고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방어기제와 부끄러움 사이에서 창작은 계속된다.

 

제16회 희곡 부문 - 박윤식

김용문학상, 인문학의 부흥 꿈꾸다
 김용문학상은 준비하면서 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습니다. 응모 기간이 추석 연휴와 겹쳤었는데 본가가 인천이라 상경 준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글을 써서 공모전에 제출은 해야겠고, 시간은 없고 해서 무작정 컴퓨터를 켜고 생각이 나는 대로 써 내려갔습니다. 제 작품을 보면서 사람마다 다른 감상과 생각을 가졌을 텐데 어떻게 보면 그 부분에서 참 죄송하기도 합니다. A부터 Z까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썼을 뿐 대단한 계획과 계산으로 쓴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작품 『죗값』을 쓰는데 걸린 시간은 단 20여 분이었습니다. 심지어 퇴고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초고를 10분 만에 쓰고 5분 정도 오타가 없는지 점검하고 바로 짐을 챙겨 익산역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당선에 대한 기대도 없었거니와 당시 제가 다른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 모든 신경과 집중은 그곳으로 가 있었습니다. 연휴 끝나고 익산으로 돌아와 인쇄해서 바로 신문사에 제출했으니 사실상 퇴고랄 것도 없었던 셈입니다. 그런 작품이 덜컥 당선돼버렸으니 제가 얼마나 뜨끔했을지 아마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작품 소재 선정과 이야기에 큰 영감을 주신 모든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김용문학상은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이고 또한, 적지 않은 부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인기가 좋습니다. 시와 소설 그리고 희곡 등 여러 부문에서 당선자 목록에 우리대학 학생이 많이 없다는 건 많이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문학과 밀접한 인문대학 학생들을 비롯한 원광대학 학생 여러분들 분발하시길 바랍니다.
 김용문학상이 우리대학동문인 김용 시인을 기리는 행사인만큼, 교내구성원들의 참여와 홍보가 활발히, 그리고 빈번히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김용문학상을 포함해 더 높은 권위와 인지도를 갖고 있는 다양한 문학상에도 관심을 보이면 좋겠습니다. 
 '대산대학문학상'이나 '신춘문예' 같은 공모전에서 우수한 작품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자교에서 개최하는 김용문학상이 비교적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거침없는 도전을 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학상을 도전한다는 행위 자체에는 굉장히 단단한 용기와 각오가 필요합니다. 낙선의 위험이 훨씬 크기 때문에 도전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을 딛고 세상에 이름과 작품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특히 김용문학상에서 전국대학생 수상자 사이 모교 후배 학생들의 이름이 보이면 괜히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제13회 소설 부문 - 천우승
제13회 소설 부문 - 천우승

pas de deux (흔히 발레에서, 두 사람이 추는 춤)
 내 청춘은 나 대신에 어딘가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번듯한 직장도, 쾌적한 집도 없습니다. 저의 빛나던 시절이 대학시절이라고도, 그 시절이 그립다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때론 지옥 같고 때론 지겨웠습니다. 그 당시에 떠안고 있던 고민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내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뭘 두고 온 거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 거예요. 뭐였더라, 어디였더라 생각하며 빠른 속도로 스크린 도어를 빠져나가는 지하철 속의 사람들을 봅니다. 수많은 얼굴이 겹치고 겹쳐 어떤 홀로그램을 만든다면 그건 필시 너의 얼굴이구나.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원대신문사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여차하면 죽지 뭐!
 그런 말을 단검처럼 품고 살다보니, 글 같은 건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쓰지 않았습니다. 나를 망가뜨리는 것만큼 재밌는 건 없었고 저는 하필 잘 망가지는 사람이더군요. 서른이 조금 넘다 보니 어떤 식으로든 망가진 나를 받아들이는 게 어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 됐구나. 내가 나를 꽉 안아줘야지!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내 몸을 더듬듯 계절이 갑니다. 오늘 회사 동료가 나노 블록을 갖고 와서 같이 조립을 했습니다. 처음엔 강아지를 만들려고 했는데 다 조립하고 보니 헬리콥터가 돼있었습니다. 그런데 온전한 헬리콥터라고 하기엔 블록이 모자라서 헬리콥터의 꼬리 부분을 응용해서 물고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물고기에게 도미니크라고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아무런 뜻도, 이유도 없습니다. 내 응용력과 상상력을 동료가 칭찬해 줬습니다.
 한 5천 년쯤 뒤에 지구가 멸망합니다. '외계연합지구탐사팀'이 나의 도미니크를 발굴하고 외계 고고학자가 "이건 물고기입니다"고 학계에 보고합니다. "지구의 유기물들은 가끔 쓰레기를 조립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고 하자 다른 행성의 박사가 즉각 반박합니다. "무슨 소리세요? 이건 헬리콥터예요." 외계연합지구탐사팀은 분열되고 물고기파와 헬리콥터파로 나뉘어 내전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블록을 조립했던 나의 데이터가 복원되면서 "여러분 최초엔 강아지였습니다! 제발 전쟁을 멈춰주세요!"라고 외치는 나의 홀로그램이 전 우주에 송출되고 내전은 종식됩니다. 훗날 평화를 기리는 의미에서 도미니크 동상이 모든 행성에 설치되고 이해와 타협의 상징이 됩니다.
 김용문학상에 공모하실 대학생 여러분. 나는 나를 응용해 당신을 상상하고, 처음 만져보는 내 몸처럼 당신을 껴안겠습니다. 꼭 소설을 쓰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껴안을 몇 가지 방법을 알아두세요. 그리고 그걸 공유해 주세요. 저는 기다리겠습니다.

〈정리〉 강동현 기자 [email protected]
임지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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