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달려오며 행복을 저축했지만, 이자는 만성피로였다

송승민(치의예과 2년)

 (수상자 명단이 적힌 카드를 꺼내며) 다음은 '올해의 열심人' 상입니다. 은행장 상 수상자는, 축하합니다. 나중혜 님!
 수상 소감 한 말씀해 주세요.
 - 네, 제가 이 상을 수상할 줄은 몰랐는데... 우선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살면서 한 번을 쉬어본 적이 없어요. 늘 무언가를 위해 달려왔는데, 그런 날들이 쌓여 이런 큰 상을 받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중혜 씨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사시나요?
 - '나중'이요. 나중을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나중에 편하고 싶어서요. 근데 그 나중이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계속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이든 행복이든 쌓이지 않겠어요. 저축하는 느낌으로다가.
 그럼 행복을 저축해서 얻는 게 뭔가요? 저희 은행은 따로 이자를 드리지 않잖아요.
 - (당황하며) 이자요? 이자는 늘 받고 있어요. 경험은 늘 값지잖아요.
 어떤 경험을 얻으셨나요?
 -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통해 시험지 잘 보는 방법을 익혔고 오래 앉아있느라 허리 통증도 얻었고요, 대학 재학 중에는 쉼 없이 한 아르바이트 덕에 쥐꼬리만큼의 돈을 얻었어요. 취준 때는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미련을 얻었고, 지금은… 지금은 끊임없는 야근으로 거북목과 만성피로를 얻었네요. 
 와, 그것 참 값진 경험이네요.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중혜 씨는 등가교환의 법칙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가치가 서로 같은 상품과 상품, 또는 상품과 화폐가 교환되는 일을 말하는데요, 그렇다면 중혜 씨는 말씀하셨던 값진 경험을 위해 무엇을 지출하셨나요?
 - (한참 생각하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친구관계를 포기하고 공부를 했고, 학점을 잃어가며 알바를 했어요. (울먹이며) 자존감을 죽여가면서도 포기하기를 참았고, 집에서 편히 쉬는 걸 피로와 교환했네요.
 그게 등가교환이라 생각하세요?
 - (주저하며) … 아니요. 저,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저한테 상 주러 오신 거 맞나요?
 그럼요. 이렇게라도 안 하면 중혜 씨의 지나간 세월은 무엇으로 대신하겠어요. 
 - (이상함을 느끼며) 저, 이 상 반납할래요. 그리고 제 통장 해지해주세요. 이 은행에 맡긴 행복, 전부 돌려주세요.
 죄송합니다. 저희 행복저축은행이 파산해서, 중혜 님의 미뤄온 행복을 돌려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상은 위로 겸 드리는 저희의 작은 선물입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 뭐라고? 당신들 지금 그게 할 말이야? 
 고객님, 약관 안 읽어보셨습니까? 당신의 젊은 시절 차곡차곡 쌓아온 행복은, '나중에' 돌려드린다고 적혀 있을 텐데요. 어차피 지금은 약관에 명시된 '나중에'가 아니라서 해지하셔도 그 행복, 못 받습니다.
 - (한숨을 푹 쉬며) 하… 그럼 그 나중에가 언제인 건데요, 기다리면 받을 수 있기나   해? 당신들 사기꾼이지?
 고객님의 '나중에'는 향년 128세의 생신날이었습니다. 규정 상 정확한 날짜는 알려드리지 않았던 것이지만, 이제는 알려드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군요.
 - 지금 장난쳐요? 그럼 128살까지 쉬지 말라는 거야? 그때 돼서야 여태 못 누린 거 다 해보라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처음에는 날짜 안 알려준다면서. 당신들 규정을 그렇게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거면, 내 행복이나 돌려줘!
 고객님, 규정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저희 행복저축은행의 규정 제4조 제1항에는, 행복저축통장의 만기일을 고객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나중혜 고객님께서는 방금, 생을 마감하셨다고 연락이 와서 저희가 알려드릴 수 있는 거예요. 아 참. 사인은, 과로사였다고 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쉴 수 있겠네요. 축하드립니다. 
 (나중혜의 목에 꽃 목걸이를 걸어준다.)

 (나중혜의 독백) 
 - 무미건조한 인생이었다. 나중을 위해 열심히는 사는데, 그 나중이 언제인지 나도 몰랐다. 처음 생각했던 '나중'의 근처쯤 되는 시간에 도달했을 때는, 나중의 나중의 나중으로 자꾸만 미루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건 바로 행복이었다. 나는, 행복을 저축하며 만성피로를 이자로 받는, 요상한 등가교환의 원리에 빠져있었다. 
 돌아보니까 내가 '쉬고 싶다'라는 얘기를 습관적으로 했더라. 근데 진짜로 쉬어버리면 답이 없다는 걸 알았다. 쉬면 뒤쳐지는 거니까. 그래서 쉬는 걸 미뤘고 기계처럼 일만 했다. 이렇게까지 나를 괴롭혀서 얻는 게 뭘까. 고통 속에서 살다가 언제쯤 행복해지는 거지. 늘 생각했지만, 여전히 여유는 없었다. 그런 생각조차 사치였기에, 잡생각이 들 때마다 더 열심히 일했다. 행복을 저축해서 나중에 더 큰 행복으로 돌려받을 거란 신념으로 살아왔지만, 다 끝나고 보니 행복은 크기보다는 빈도가 중요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당신도 행복을 저축하고만 있다면, 당장 그 적금을 깨는 것을 추천한다. 소소하고 확실한, 현재의 행복을 위하여.

 

당선소감

건너뛴 생일을 빼면 여태 난 십대
 이 이야기의 주인공 나중혜의 이름은, 예상하셨다시피 '나중에'에서 따왔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정작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그러니까 진정 중요한 것들을 미뤄오고 있더라고요. 언제일지도 모르는 나중에 돌려받을 행복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모습이 잘 담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안정을 위한 불안정은 참 모순적이에요. 극단에 위치하지 않으려 아등바등, '평균'을 향해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심사평에도 나와 있듯이 이 글은 소설과 수필의 경계, 그 어디쯤에 있습니다. 장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단순하게 수필로 정한 이유는, 주인공 '나중혜'가 당신과 나를 투영하기 때문이겠죠.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인 평범한 글을 쓰려고 했더니 제가 주인공이 돼버렸네요.
 저는 몇 년 동안 생각하던 물음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왜 마음에 여유가 없고 세상은 왜 이리도 바쁜지에 대해, 그런데 빠를수록 더 쫓기는 기분은 어디서 오는 감정인지에 대해서. 왜 인생은 끝도 없이 밀리는 러닝머신이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충을 위해 열심히 사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나중'을 위해 현재의 안정을 꼬박꼬박 저축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나중혜는 그렇게 성실히, 행복을 저축하며 살았지만 이자라고 받은 것은 만성피로와 거북목뿐이었어요. 이 이야기가 당신이 행복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달 26일 홀림-Day  공모전 시상식 장면 / 사진 : 홍건호 기자
지난달 26일 홀림-Day 공모전 시상식 장면 / 사진 : 홍건호 기자


심사평

『어린왕자』 모티브, 익숙함을 빌려 특별함 창조
 2022학년도 홀림-Day <글> 공모전에 모인 작품은 작년에 비해 47% 증가한 136편이었다. 참여 열기가 높아진 만큼 다채로운 주제를 가진 다양한 장르의 글이 모였다. 지난해와 비교해 달라진 점은 일상적 소재를 활용한 작품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이는 비로소 우리 학생들이 길고 험했던 팬데믹의 터널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심사 내내 안도와 기쁨을 동시에 느낀 이유다.
 범박하게 정의하자면 글쓰기의 핵심은 말장난이다. 즉 삶의 모습이나 생각, 감정 따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독자를 설득할(홀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판가름 난다. 그런 의미에서 수필과 시, 소설 등을 아우르는 순수문학 작품은 보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감상문이나 비평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감상이나 가치 평가 등을 짜임새 있게 구조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읽는 이의 시선을 묶어둘 방편의 마련이다. 독자를 끌어당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글의 성패를 좌우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최우수 작품의 자리를 두고 경쟁한 「어린 왕자는 돌아가지 못했다」와 「쉼 없이 달려오며 행복을 저축했지만, 이자는 만성피로였다」는 특별하다. 앞의 글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생택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를 모티브로 한다. 원작의 주인공과 이야기 전개 방식을 차용해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익숙함을 빌려다 특별함을 창조하는 노련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만, 경쟁작에 비해 신선함이 다소 부족한 것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우수 작품에 선정된 「쉼 없이 달려오며 행복을 저축했지만, 이자는 만성피로였다」는 '행복'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너무 흔해서 자칫 평범한 글이 되기 십상인 이야깃거리를 선택한 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행복의 개념을 설명하거나 그것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역설하지 않는다. '저축'이라는 소재와 '등가교환'이라는 개념을 활용해 내용의 신선함을 유지한다. 아울러 소설과 수필의 경계를 오가는 전개 역시 인상적이다. 수필은 일상생활에서 느낀 감정이나 체험을 중심으로 주제 의식을 드러내야 한다는 공식에 과감히 도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모험은 성공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활동을 기대한다.
 아쉽게 수상의 기회를 놓친 학생들이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에 선정되지 않은 이유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직 서툴렀기 때문이다. 서툶은 포기의 사유가 아니라 분발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글쓰기 능력을 갖추기 위해 꾸준히 정진한다면 다음 수상의 영예는 본인의 몫이 될 수 있음을 믿고 자신감을 얻길 바란다.
 청춘이여, 건투를 빈다.

2022 홀림-Day <글> 공모전 심사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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