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거든 온 길을 되돌아보면 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어디서 오고 있는지 모른다면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새로운 길과 방향을 찾고자 할 때 한 번 되돌아보는 것은 결코 낭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되돌아봄을 통해서 자신이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가야할 지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과거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며, 또한 현재는 미래의 과거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효용성'이라 하겠다. 미래 사회의 트렌드 역시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겨울 방학에 나는 그동안 디지털인문학 아카이브 구축과 관련해서 발표했던 글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어떤 부분은 현 시점에 맞춰서 새롭게 고쳐 써야 할 부분도 있었다. 글의 체재나 문맥 등은 손을 댔지만 발표 당시에 주장했던 논지는 가능한 그대로 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역사 문헌을 어떻게 디지털화해서 아카이브를 구축했는가 하는 것은,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에서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문집 등을 손쉽게 검색하고 또 원하는 자료를 찾는다. 하지만 그런 문헌들의 데이터베이스가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 검색하고 활용하는 디지털화된 문헌, 그 데이터베이스가 갖는 의미와 특성을 이해하면 훨씬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 분야에서 '디지털'화의 효시는 『CD-ROM 조선왕조실록(1995)』이다. 『조선왕조실록』의 디지털화가 가능했던 것은 3,000여 명의 학자가 26년간에 걸쳐 번역한 『국역본 조선왕조실록(1968~1993)』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록의 국역 역시 오 백년간에 걸쳐 국왕도 볼 수 없었던 888책 1,893권이라는 방대한 역사 기록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조선왕조실록을 활용하고 있다. '조선왕조실톡'이란 웹툰과 역사 드라마, 영화 등을 볼 수 있다. 이제 누구나 언제든지 'e-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여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간과해서 안 될 점은 'e-조선왕조실록'은 『CD-ROM 조선왕조실록』 위에서 가능했다는 것이다.'e-조선왕조실록'과     『CD-ROM 조선왕조실록』의 데이터베이스 구조는 동일하다. 미디어만 바뀌었을 뿐이다. 『고려사』, 『고종·순종실록』, 역과·의과·음양과·율과시험 합격자 명부인 『잡과방목』 등의   CD롬과 인터넷 데이터베이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 동안 나는 고전 자료의 데이터베이스 개발은 전산 기술자나 인문학 연구자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역설해왔다. 두 분야의 연구자들이 긴밀하게 협력해서 공동 작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 효율적이다. 상대 분야의 전문 지식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전문 지식과 융합시켜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 문화, 사상 등 인문학 분야의 전문 지식을 토대로 하고 사회, 문화의 제반 현상과 수요를 올바로 이해하면서 이를 디지털 기술과 접목시키는 것이 요망된다.
   현재 우리는, 그리고 대학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절감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같은 현실 자체가 인문학적 탐구의 대상이 된다고 하겠다. 그래서 인문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인문학 분야도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형태로 변모해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인문학 연구에서 일정한 연속성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매체나 방법론에서 과감한 도약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남희 교수(역사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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