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소중한 지금을 타임라인에 흘러가는 인스타 피드(feed)처럼 그냥 재핑(zapping)하듯 흘려보내고 계시진 않는가요? 스마트폰을 신주단지인양 내려두지 못한 채 무심코 열어본 릴스나 숏폼 콘텐츠를 쳐다보기 시작하고는 10~20분은 그냥 훌쩍, 때론 한 두시간이 찰나와 같이 지나가버리더군요. 눈이 침침해지고 손끝이 얼얼하여 슬며시 내려두고 날 때 쯤이면 나에게 남은건 무엇이던가 돌아보게 되곤 합니다.

 지금처럼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콘텐츠가 활성화 되기 전까지는 블로그가 대세인 시절이 있었지요. WEB에 적는 LOG라 하여 BLOG로 명명되었다고도 하지요. 2004년에 네이버블로그를 시작해서 지금껏 운영하고 있으니 나의 블로그는 24학번 신입생들과 나이가 비슷하겠네요. 물론 티스토리는 나이가 조금 더 먹었긴 하지만요. 그리고 최근 동향 통계자료를 보면 영상콘텐츠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 분들이 다시 블로그로 돌아오고 있다고도 하구요.
 우리 인류의 삶에 있어서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자면 고대 이집트나 나일강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가 파피루스를 들고 나오거나 훈민정음이나 조선왕조실록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우리의 문화는 텍스트를 바탕으로 기록하고 학습하여 전달되어져 왔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코로나19 이후로 대면의 교류가 데면데면해진 요즘 강의실에서의 모습을 보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문자나 카톡 또는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는 현실이기도 하구요.
 메신저를 사용하거나 이메일을 사용하기 위해서 즉 문자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진지해질 수밖에 없고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해보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다고 볼 때에 우리는 보다 소통에 있어서 기록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이 1997년에 우리라나의 첫 등재기록물로 지난해 동학농민혁명 기록물과 4.19 혁명기록물이 더해져 총 18건이 등재되어 있답니다, 또한 지난해 11월에는 직지의 고장 충청북도 청주의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가 세계 유일이자 최초의 기관으로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대학에서도 작년부터 100년 전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곳 신룡벌에 터잡은 원불교의 초기교단 자료들을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하는 <원불교 기록유산 데이터베이스> 사업을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10년간 진행하고 있답니다. 기록은 학문으로서도 그렇고 인류문화의 유산(Heritage)으로 그 가치를 보호받고 후대에 전승해야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또 기록학이라는 학문으로도 자리를 잡았답니다. 무엇보다 ChatGPT로 대별되는 생성형 AI가 주류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대체하고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시대가 되어지고 있지만 모든 걸 대체할 수는 없겠고 특히나 나의 진가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서 대해장강을 이루고 하루하루의 일기가 모이면 내 인생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지겠이요. 내 일기장이 조선왕조실록처럼 현시대의 바로미터가 된다거나, 충무공의 난중일기나 서애의 징비록과 같이 후대에 사료적 가치가 되지는 않더라도 힘들고 지칠 때 또는 20~30년 뒤 나를 꼭 닮은 미니미가 그 시절 아빠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딜 바라보고 살았느냐는 질문에 나 이렇게 치열하게 살았노라 답해줄 최소한의 근거자료 하나쯤 마련해둘 요량으로 블로그를 시작해보면 어떨는지, 또는 작은 일기장을 마련하여 오늘부터 사라져가던 나의 일상기록을 놓치지 않고 갈무리 해보는건 어떨런지요? '관종'의 기록이 아닌 오늘부터 '갓생' 살기를 위해서 말이죠. 잠시도 멈춰있지 않고 변화무쌍하는 나의 마음일기라면 더욱 좋을테구요.

송영철 교수(역사문화학과)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