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송국 NHK 앞에서 촬영한 원대신문방송사  단체 사진
일본 방송국 NHK 앞에서 촬영한 원대신문방송사  단체 사진

 

셋째 날 역시, 전날 일정처럼 아침 일찍 기상해 일정 준비에 들어갔다. 벌써 셋째 날이었지만, 탐방지를 향해 버스에 몸을 맡기는 경험은 매번 감회로운 순간이다. 그 감회에 취한 채 잠시 마음의 몸상에 빠지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교토 기타야마에 위치한 '금각사'였다

 방문 전에 가이드의 정보 전달로 어느 정도 아성을 인지하고 온 상태였다. 하지만, 직접 대면해본 순간, 언어로는 확실한 인지가 불가했던 위용에 대해 진솔한 체감을 했다.

 드넓은 호수 가운데 세워진 황금 마천루, 마치 한 폭의 명화 같았다. 위용에 대한 감탄이 끝나기가 무섭게 금각사를 둘러싼 그날의 순간을 듣게 됐다. 

 '킨카쿠지'라는 이명으로도 불리는 금각사는 1397년, 당시 성공한 통치자로 명성을 날리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은퇴 후, 직접 건설했다. 마치 자신과 동일시라도 한 듯이, 그는 금각사 전면을 황금으로 도배했으며, 아시아 전역에 위치한 보물들을 수집해 전시했다. 

 또한, 매번 성대하게 파티를 여는 연회의 장으로도 적극 애용했다. 그의 사후, 금각사는 계속 자리를 지키며 지역 내 유적지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러나 1950년, 금각사는 화재로 외면이 손상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다행히도 복원이 불가할 정도는 아니었던지라, 금세 복구가 되고 현재까지 지역 유산으로 전해져 오게 됐다.

 이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가 되면서 일본 내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국외로도 명성을 떨치게 됐다. 설명이 끝난 후, 순간 색다른 흥미가 뇌리를 스쳤다. 금각사의 형태에 대한 장엄의 감탄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시카가라는 역사 뒤편의 주연에 대한 오묘한 공감이 컸다. 

 당대의 흐름을 손바닥에 두고 좌지우지하던 인물이 은퇴라는 인생의 에필로그를 겪으면서 과연 어떤 심정으로 자신의 성소를 세웠을지 한편으론 그 내면이 더욱 의문이 들었다. 

 금각사 탐방을 마친 후, 연수단은 곧바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두 번째 목적지는 마찬가지로 교토에 위치한 명문 사립대 '도시샤대학'이었다. 

 일본 내에서는 질 높은 교육 시스템을 통한 취업 강세와 우수한 학교 평가와 더불어, 학생의 도시로 이름하고 있는 교토 지역의 특성으로 인해 도시샤대학의 명망은 드높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민족 문인 '윤동주'로 인해 대한민국에도 잘 알려지게 된다. 만인이 알다시피, 고인은 '서시'를 포함해 수많은 수작을 남긴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자신의 작품과 함께 한국과 일본의 국민에게 깊은 울림을 준 유산 그 자체로 평가받고 있다. 더군다나, 살아생전 사촌 동생'송몽규'와 함께 도시샤대학에 재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그의 사후에 유작 역시 재조명받으며 한일 시민들이 팬을 자처하기까지 했으며, 도시샤대학에는 그를 추모하는 추모비까지 설치돼 현재까지도 많은 시민이 그를 추모하고 있다. 

 특히, 드넓은 부지 아래 현대식 기법으로 건축한 학교 건물 아래 영혼같이 맑은 꽃들이 놓여있는 묘비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면의 인상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본 대학에 장식된 올곧던 모습의 한국의 청년 시인의 추모비, 살아생전 순수한 성찰을 부르짖던 한 청년 시인이 마련한 이 성소는 누가 됐든 감명의 발걸음을 하게 하는 것 같다.

 도시샤대학을 거치고 다음은 일본 나라 사슴 공원이었다. 이곳 역시, 상당히 인상 깊은 명소라 할 수 있다. 입구를 거쳐 안으로 들어가면 '동대사', 일본어로 '토다이지'라 불리는 절이 있는데, 본격적으로 사슴을 보기 전에 접하는 1차적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크기와 전통적 장식으로 도배된 특유의 웅장함 때문에 현지인들에게는 사슴 공원 이전에 순수한 명소로서 대우받기도 한다. 4대 성인으로 추대받는 '행기 보살'의 산실인 것은 물론이고, 일본의 호국 불교를 대표하는 상징성 때문에 비단 현지인만이 아닌 외국 여행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고 전해진다.

 동대사를 지나면 바로 사슴 공원이 나온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원 입구에서부터 정겨운 손님들이 반겨준다. 여기저기 사슴들이 앉아있거나 혹은 관광객들이 주는 먹이를 먹거나 자는 등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는 게 이곳의 주된 광경이다. 

 특히, 사슴 공원의 장점은 단순히 동물 관람도 있지만, 순수하게 종족을 늘리며 살아가는 사슴들을 통해 자연의 연대를 체감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에게 유순하게 대하는 모습을 통해 종을 초월한 유대를 몸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자 본인이 사슴공원을 추천하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주변의 명소 거리나 건축물들을 보는 것도 만족감을 얻기에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사슴 공원처럼 인간과 유대를 나눌 수 있는 개체와 만나며 무언의 대화를 하는 것 또한, 충분히 시간과 돈을 들이기에 충분한 값진 경험이라고 본다. 평소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순수한 연대감과 유대, 어쩌면 이곳이 그걸 충족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라고 본다.

 마지막 날의 해가 밝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귀국을 준비해야만 했다. 넷째 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오사카 성이었다. 이곳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언급된다. 오사카 성은 히메지 성, 구마모토 성과 함께, '일본 3대 명성(名城)' 중 하나이다. 

 하지만, 현존하는 오사카 성은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여 복원한 것으로 내부는 현대식 건축기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봄에는 수많은 벚꽃 나무로 전경이 펼쳐진다고 하나, 아쉽게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내부에는 오사카 성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정권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3년 수도 교토의 외항이자 상업 도시인 오사카의 중심부에 거대한 성을 건설해 자신의 거점이자 히데요시 정권의 수도로 삼았다. 

 오사카 성 부지는 혼간지가 노부나가에게 10년간 대항할 정도로 지리적으로 유리한 입지였다. 이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설한 오사카 성은 지금 남아있는 오사카 성과는 달리 훨씬 규모가 큰 성이었다고 나타나 있다. 대규모의 이중 해자가 성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후 598년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가 격돌한 1615년의 오사카 전투에서 도쿠가와 가문이 승리하면서 오사카 성의 건물들은 도쿠가와 측의 화포 공격 등으로 모두 소실되었고 성의 바깥 해자는 완전히 매립됐다고 한다. 

 오사카 성의 역사 층을 지나 5층에 올라가면 천수각 정상에서 오사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유리가 따로 없어 전망대 보다 더욱 넓게 볼 수 있던 게 좋았던 점이라 꼽을 수 있겠다. 여러모로 도시의 역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일본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방송국인 NHK를 방문했다. 일본방송협회라고도 불리는 NHK는 한국의 KBS라 불릴 정도로 대내외로 명성이 자자한 외신 방송사다. 우리가 다녀온 이 NHK는 유일한 전국 방송이자 최대 규모의 방송국이다. 동시에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회원사이기도 하다. 

 일본 내에서 히트를 낸 작품은 대개 NHK를 통해 나오는 경우가 빈번할 정도로 제작 재간 및 인프라가 인정받고 있는데, 체험방문을 하러 온 이들에게도 만족스러운 경험을 주기에 적합한 명소다.

 명색이 방송사 답게 방송과 관련해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하다. 로비 중앙에 대형스크린에 NHK의 작품이 방영되는 것은 물론이고, 인기 캐릭터 동상들을 세워놓은 포토존이 설치돼 있다. 

 가장 인상적인 코너라 할 수 있는건 보도국  체험 코너다. 실제 뉴스에서 접한 모습 그대로 방문객 본인이 앵커가 된 것처럼 체험할 수 있게 촬영 카메라를 구비해 놓은 코너를 설치해 놨다. 끝나고 나서는 바로, 본인이 어떻게 체험을 했는지 촬영한 영상본도 확인할 수 있어 신박한 추억을 가지기에 탁월화돼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방송 제작 과정도 직접적으론 아니지만 멀리서 창 너머로 관람할 수 있어서 미디어에 열광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기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디어 분야 기관인 신문방송사 연수단에 있어서도 NHK 방문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경험이다.

 NHK를 끝으로 신문방송사는 연수를 종료하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사실 일본은 평소에도 미디어로 자주 접하는 국가인지라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의 마음 한편이 자극받을 정도로 오묘한 매력이 잠재하고 있다. 때문에, 상상 저편에 저장해두지 않고 직접 대면한 이번 경험은 연수에서 맞이한 큰 가치인 것 같다.

 

  배성민 기자 [email protected]

이민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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