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유럽에 건너간 탱고는 종래의 어떤 춤보다 자극적이고 관능적이었기 때문에 대중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1912년 무렵 파리의 신문과 잡지들은 탱고에 관한 기사들로 문화면을 도배했다. 향수나 음료수는 물론 여성들이 입는 란제리, 심지어 프랑스의 유명한 해변 휴양지 도빌(Deauville)로 가는 기차에도 󰡐탱고󰡑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만큼 누구나 탱고에 관심이 많았고 또 도발적인 탱고를 즐기고 싶어 했다. 파리의 대주교는 카톨릭 신자들에게 탱고를 금지시켰고, 교황 베네딕트 15세도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파괴하는 음란하고 야만적인 춤이 교황청에까지 침투해 있다고󰡓 불평하였다.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 또한 장교들에게 제복을 입고 탱고를 추지 못하도록 단속하였지만 탱고의 인기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더구나 1914년 1차 대전이 일어나 혼란한 사회 속에서 구시대의 질서는 무너졌고, 예전보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탱고는 1920년대의 황금기로 접어들었다.
기존의 탱고는 반도네온(2), 피아노(1), 콘트라베이스(1), 바이올린(2) 네 종류의 악기를 위주로 한 악단으로 󰡐표준적인 스타일(Orquesta Tippica)󰡑이다. 반도네온은 아코디언을 변형한 것으로 고안자인 독일인 반트(H. Band)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악기이다. 네모난 주름상자의 양 끝에 단추 형태의 건반을 갖추고 있으며 오른손 38건 왼손 33건으로 142음을 내는데, 둘 이상의 음을 부드럽게 이어 연주하는 󰡐레가토(legato)󰡑 주법은 물론 아코디언으로는 불가능한 탱고 특유의 󰡐스타카토(staccato)󰡑 주법도 가능하다. 또한 탱고가 지니는 뼈저린 회한이나 슬픔을 표현해내는 데 있어 깊고 매혹적인 음색이 제격이었기 때문에 초기 아르헨티나 탱고의 형성과 전파에 반도네온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유럽으로 건너간 탱고는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반도네온 대신 아코디언을 사용하여 현악기가 중심이 되는 오케스트라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중심 악기의 변화, 즉 반도네온에서 현악으로의 변화는 결정적인 차이를 가져와, 원래의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탱고와 구별하여 유러피언 탱고 혹은 콘티넨탈 탱고(Continental Tango)라 불렀다. 콘티넨탈 탱고는 숙련된 음악성으로 유럽 상류사회의 사교장에서 신사 숙녀가 춤추기 위한 무도회의 반주로 발전하였으며 멜로디도 친근하고 리듬도 경쾌하여 연주 스타일도 박자가 척척 들어맞는, 본래의 탱고에 비해 선율적이다. 즉, 기존의 탱고가 주로 가다듬어지지 않은 인간의 정감을 격하게 연주하거나 노래하였다면, 콘티넨탈 탱고는 댄스를 위한 품위 있는 연주곡으로 발전했다. 흔히 재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유럽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널리 유행하여 대중음악의 왕좌를 차지하였다고 평가되는 탱고는 바로 콘티넨탈 탱고를 가리키는 것이다.
탱고의 황금기와 관련하여 아르헨티나 태생이 아니지만 탱고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린 두 예술가의 등장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 <위대한 여인>으로 여성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든 원조 꽃미남 배우 루돌프 발렌티노(Rudolph Valentino)와 깊이 있는 바리톤으로 탱고를 열정적으로 노래했던 미남 가수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이 바로 그들이다. 1912년 <묵시록의 네 기사>로 할리우드에 데뷔한 발렌티노는 1926년 불과 31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배우 및 댄서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세계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련된 미모에 검은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그가 정열적인 눈빛으로 상대 여배우를 응시하며 열정적으로 탱고를 추는 장면은 마치 마약과도 같은 매력을 지녔다고 한다. 그가 스크린에서 보여준 탱고의 황홀하고 관능적인 매력이 1920년대 탱고의 광풍을 불러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프랑스에서 태어나 2살 때 아르헨티나로 온 가르델은 1917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엠파이어 극장에서 󰡐슬픈 나의 밤(Mi Noche Triste)󰡑을 노래하여 세상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탱고 곡들도 더러 가사가 붙여지기는 했지만, 주로 춤을 위한 연주곡이 대부분이었다. 가르델이 등장하기 전까지 청중에게 탱고가 지니는 슬픔과 고독을 전달할 수 있는 가수가 드물었다고 하는 평가도 있을 만큼 󰡐가사가 있는 탱고󰡑, 즉 탱고 칸씨온(Tango Cancion)의 대중화에 미남이며 미성인 그의 역할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탱고 칸시온의 확산에는 1926년 음성취입(어쿠스틱)에서 전기녹음(일렉트릭) 방식으로 진보된 레코드 녹음기술 덕에 탱고가 쉽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까지 계속 리메이크되는 뛰어난 탱고 칸씨온의 노랫말을 보면 하나같이 잃어버린 사랑이나 이루지 못한 인생의 꿈에 대한 회한이 가득하다. 일반적으로 탱고하면 격정적인 음악과 도발적인 춤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리워하지만 만날 수 없고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사랑과 욕망에 대한 절절한 노랫말도 탱고가 갖는 남다른 호소력의 근원인 것이다.
탱고를 이야기할 때,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열렬한 탱고 팬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반도네온을 선물 받은 피아졸라는 어릴 때부터 반도네온 연주에 남다른 재능을 드러냈다. 열세 살 소년 피아졸라가 가르델의 마지막 영화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날(1935, 파라마운트)>에 반도네온 연주자로 출연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젊은 피아졸라는 탱고보다 클래식에 매료되었다. 1937년, 아르헨티나로 귀향한 후에도 밤에는 밴드에 참여하여 반도네온 연주자로 탱고를 연주하였지만, 낮에는 바르톡과 스트라빈스키 같은 현대 클래식에 심취하여 작곡을 공부하였다. 1953년에는 작곡 경연대회에서 1등하여 파리 음악원에 간 피아졸라의 인생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스승인 나디아 블랑제(Nadia Boulanger)를 만나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탱고를 연주했던 것을 부끄럽게 여겼던 피아졸라는 블랑제의 지도로 탱고와 클래식 음악 사이의 분열된 정체성을 극복할 수 있었다. 1955년,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피아졸라는 자신만의 개성과 민족정서를 토대로 독창적인 화음개념을 탱고에 도입하여 새로운 탱고(Tango Nuevo)의 지평을 개척하였다. 이에 매료된 걸출한 클래식 연주가들, 예를 들어 기돈 크레머(Gidon Kremer),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살바토레 아카르도(Salvatore Accardo)나 요요마(Yo Yo Ma) 등은 자신의 공연목록에 피아졸라의 탱고 곡들을 포함시킴으로써 탱고를 백안시하던 클래식 애호가들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로큰롤이 등장하면서 차츰 외면당했던 탱고는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중에는 지하로 숨어들어야 했고, 그 사이에 유럽 특히 파리에서 새로운 형태로 꽃피어 그 열풍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역수입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에 들어 엄청난 수의 댄스 쇼가 제작되었는데, 1983년 탱고의 명곡에 현대적인 스텝을 가미한 󰡐탱고 아르헨티노(Tango Arjentino)󰡑의 성공적인 공연은 그 기폭제가 되었다. 이후 탱고를 쇼 형식에 적합하게 바꾼 󰡐탱고 판타지아(Tango Fantasia)󰡑라는 새로운 장르가 전 세계에 크게 유행하였으며, 우리나라에도 1999년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포에버 탱고 (Forever Tango)󰡑의 첫 내한 공연이 전석 매진된 바 있다. 또 2002년 10월 󰡐패시네이팅 탱고(Fascinacion de Tango)󰡑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특히 󰡐포에버 탱고󰡑는 2003년, 2005년에 이어 올해 3월에도 충무 아트홀 개관 5주년 기념공연으로 올려질 만큼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탱고의 부흥에는 영화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알 파치노가 열연한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 1992)>외에도,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주연을 맡은 <트루 라이즈(True Lies, 1994)>, 살마 하예크가 주연한 <프리다 (Frida, 2002)> 등의 인기 영화에 탱고가 O.S.T로 삽입되어 영화의 감동과 흥미를 더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탱고를 뒤집어 명명한 고탄 프로젝트(Gotan Project) 등의 실험적인 연주자들이 탱고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접목시키는 등 새로운 시도가 행해지면서 탱고는 세계 각국의 대중음악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를 봐도 지난주에 언급한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나 조덕배의 <왜 세상은>, 심수봉의 <눈물의 술> 등등 탱고음악이 한동안 전파를 탔었다. 또 어떤 방송국 영화제에서 오늘날 대중음악의 아이콘인 비와 이효리가 여성 일렉트로닉 현악 4중주단 본드(Bond)가 연주한 피아졸라의 <리베르탕고 (Livertango)>에 맞추어 관능적인 탱고를 축하공연으로 선보여 엄청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이처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부둣가에 태어나 부침을 거듭하며 한 세기를 풍미했던 탱고, 단순히 음악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고독과 아픔을 담아낸 넋두리요, 짙은 회한으로 혹은 강렬한 퍼포먼스로 탱고는 우리 곁에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이우정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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