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 듣고 사람을 판단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소문의 일부는 사실이었으나 대부분이 사실과 달랐다. 아주 좋은 사람의 헛소문을 먼저 듣고 사람을 가려 만나다가 뒤늦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적이 많았다. 몇 번 그런 사람을 놓칠 뻔한 뒤, 더이상 직접 보고 듣는 것 외의 소문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평판이 아주 좋은 사람이 알고 보니 자기 이익만 중요시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고 그런 이미지는 모두 거짓인 경우 말이다. 이런 사건에 얽히면 아무리 내가 피해를 호소하더라도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는다. 증거는 없으나 정신은 지쳐가는데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렇게 의심만 하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이상한 건가' 라는 자괴심까지 들게 된다. 우리가 잘못한 것은 없는데 말이다.
 <다우트>는 이런 의심에 관한 영화다. 1964년성 니콜라스 교구 학교의 교사수녀 제임스는 완고하고 원칙주의적인 알로이시스 교장수녀에게 플린 신부가 흑인학생을 상대로 죄를 저지른 것 같다는 의심을 털어 놓는다. 이전부터 사사건건 알로이시스와 플린은 학교와 개인적인 사상에 대해 서로 부딪혀 왔기 때문에 알로이시스는 제임스 수녀의 말을 듣고 플린 신부의 죄를 밝혀 학교에서 내쫓으려고 한다. 그러나 도덕적 확신 외에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자신의 심증만으로 플린 신부를 추궁하고 플린은 무척 억울해 하며 미사시간에 의심에 빠진 사람의 어리석음에 대해 설교할 정도로 둘의 갈등은 깊어져 간다. 그러나 이들의 전쟁은 조용하다. 비가 내리는 겨울날씨처럼 둘은 말과 눈빛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이 영화를 보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알로이시스 수녀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메릴 스트립이기 때문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편집장을 맡은 그녀는 입 주름 만으로 감정을 연기 했다. 그만큼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라서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던 중, 누군가 남긴 영화평이 그녀의 연기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입으로는 총을 쏘고 눈으로는 방황하는 메릴 스트립."
 플린 신부가 죄를 지었다고 확신하는 알로이시스 수녀는 누구보다 그가 무죄이기를 바랬다. 상처받은 학생이 없길 빌었다. 신부를 학교에서 내쫓은 뒤, 알로이시스 수녀는 제임스 수녀앞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울며 고백하며 괴로워 한다. 이 영화에서 정말 플린 신부가 죄를 지었는지 아닌지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해 하고 추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직업이 속세의 사람들 보다 고귀한 종교인들이라는 것도, 그 누구라도 의심을 할 때는 추해진다는 걸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누구보다 독단적이고 강한 알로이시스는 사실 '강한 척'을 한 건지도 모른다. 자신이 강해져야, 비록 근거 없는 의심으로 자신의 바닥을 되짚는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그녀에게는 학생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비록 우리가 납득하기 힘든 방식이지만 그녀는 학교와 학생들을 사랑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척'이 무너져 터진 눈물에 우리도 비난을 던지는 대신 알로이시스를 동정했다. 영화를 보며 입으로 쏘는 총이 아닌 방황하는 눈을 포착 한 건, 그 눈빛에서 진실이 아니길 바라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해서가 아닐까. 
  배한별(문예창작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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