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식 감독, <아나키스트> (2000)

   이상과 현실이라는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때 우연찮게 본 영화가 있다.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나키스트>는 때론 무모하지만 자신의 이상을 향해 행동하는 의열단 단원들의 이야기다. 결말은 비극적으로 끝나지만 이상을 행동으로 옮길 때, 그것이 얼마나 떳떳하고 당당한 일인지 느끼게 해준다.
   영화는 1924년 상해에서 일본군의 학살로 가족을 잃은 상구가 소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공개처형장에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의열단 단원에게 구출이 되면서 단원이 되어 활동 하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원체 아나키스트는 무(無)지배, 무(無)권력의 사회를 지향하는 사상이다 보니 식민지 조선에서의 아나키즘 운동은 반일, 반제국주의를 배격할 뿐만 아니라 민족적 부르주아, 공산주의, 중앙집권주의에도 회의적이었다. 영화에서도 이 문제로 갈등상황을 맞게 된다.
상해 조계 지역 내에서 무력 활동을 하면 중립지역에 있는 조선인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무력활동보다 교육을 통해 민족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안창호 선생과 일본군이 중립지역에 넘어오지 못하도록 저항해야 한다는 단원들의 언쟁이 대표적이다.
   극중에선 한명곤이 동료 세르게이의 죽음이 일본군 때문이었다며 복수를 해줄 것을 가네꼬에게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 중요인사를 암살하고 가네꼬가 고문을 받는 사실을 이근이 알게 되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두고 대립하였고 인질로 잡은 일본군을 고문하는 장면에서는 '일본과 하는 일이 다를 게 없다'며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상 앞에서 보다 바람직한 방법을 찾을지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해서 실리를 찾을지도 주된 갈등거리였다.
   흥미로운 것은 나라를 잃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단원들이지만 항상 양복을 차려 입고 거사를 치루기 전에는 사진을, 거사가 끝이 나면 호화로운 곳에서 파티를 즐긴다는 것이다. 씁쓸한 현실임에도 낭만을 즐기는 아나키스트 그 삶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결국 그들의 시신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이고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영화 <아나키스트>의 기획의도는 '남북 모두로부터 잊혀진 역사를 복원한다는 것'에 있다.
   실제로 식민지 조선의 아나키즘 운동은 1920년대 자본주의와 권위주의에 억눌린 조선 청년들이 중심으로 일어났고 단재 신채호의 사상과 김원봉 단장에 의해 의열단으로 조직화 되었다. 그러나 해방 후 독립에 기여했던 아나키스트들은 남북한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했고 사상이 집대성 되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나키스트를 혼란스럽고 규칙이 없는 사람들로 기억, 단순한 이상주의자로 잊혀지게 되었다.

전영신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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