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아내를 보는 남편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아내'와 '나'는 늦게 낳은 아이 '알암'을 키우며 약국을 운영하는 평범한 부부다. 알암은 초등학교 4학년으로 다리 한쪽이 불편하고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 하나 없다. 또한 주위의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나'와 '아내'는 걱정이 많다. 그런데 아이가 유난히 주산에 관심을 보이고 흥미로워하는 것을 발견한 '나'와 '아내'는 알암을 동네 주산학원에 보낸다. 어느날 학교가 끝나고 집에 들렀다가 주산학원에 가야 할 알암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나'와 '아내'는 유괴된 알암을 찾아 다닌다. 하지만 알암은 돌아오지 않았고, 철거 예정이던 상가 지하실에서 2달여 만에 비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아내'는 알암이 실종상태일 때 그 동안 끈질기게 입교를 권했던 '김집사'의 말에 따라 아이의 귀환을 바라며 열심히 교회에 다녔지만, 아이가 시체로 발견되자 절망에 빠지게 된다. 범인은 주산학원의 원장 '김도섭'이었다. 나중에 '아내'는 범인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을 안고 겨우겨우 삶을 버텨나가게 된다. 그 와중에도 '김집사'는 끈질기게 신앙을 권한다. '아내'는 복수와 분노를 안고 삶을 살다가 나중에 '김집사'의 설교로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간다. '나'는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아내'가 정상적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아내'는 교회에 다니며 신앙심을 길렀고, 결국 '김도섭'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범인을 직접 만나봐야겠다고 '나'에게 말한다. '나'는 무언가 지나치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으나 확고한 '아내'의 결심에 결국 허락하고 '아내'는 교도소로 가서 '김도섭'을 만난다. 그러나 '아내'는 범인을 만나고 난 뒤로 완전히 절망 상태에 빠져버리고 만다.
 '나'는 집으로 찾아온 '김집사'와 '아내'의 대화에서 그 이유를 깨닫는다. '아내'가 범인을 용서해 주려고 찾아갔지만, 교도소에서 교인이 된 '김도섭'은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받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던 것이었다. 절망에 사로잡힌 채, 용서할 기회마저 주님에게 빼앗겼다고 말하던 아내는 범인의 교수형이 집행되고 나서 이틀 후 자살을 하고 만다.
 소설은 한 아이가 사라져가는 과정과 그로 인해 남은 자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을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아이의 유괴와 살인이라는 사회적이고도 묵직한 소재를 통해서 용서와 구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신을 등장시켜 "신의 사랑 앞에 사람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과 권리란 무엇인가?"를 따져묻는다. 용서의 주체는 누구인가. 죄와 용서의 관계에 신이 개입할 영토는 어디에도 없으며 용서의 권한이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골자다.
 또한 이청준은 특유의 철학적 시선과 집요한 문제의식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짓밟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갓 벌레로 전락하는지, 절대자 앞에서 어디까지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국성근(정치행정언론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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