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표류소설들이 있다. 꾸준히 표류소설이 발간되고 읽히는 까닭은 인간이 자연 속에 내던져질 때, 비로소 그 본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잘 변하지 않는다.
 전쟁을 피해 은신처로 향하던 영국 소년들은 적국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 소년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나이가 가장 많고(13살) 리더십이 있는 랠프를 리더로 선출한다. 랠프는, 돼지라는 별명을 지닌 영리한 소년의 조언을 통해 규칙을 정하고 아이들을 지휘한다. 소년들은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며 이성적인 생활을 영위해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랠프에 대한 잭의 질투와 권력욕이 커져가며 두 소년이 충돌하는 일이 잦아진다. 잭은 원래 성가대 소년들로 이루어진 사냥 조의 리더였는데, 그러한 자신의 지위를 통해서 서서히 지지 세력을 확보해 나간다. 그리고 '짐승'이란 미지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이 소년들을 엄습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소년들의 단결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게다가 마음껏 표출되는 소년들의 잔인함과 야만성은 스스로의 이성을 흐려놓는다. 소년들이 멧돼지를 사냥하는 방식이 점점 잔인해지고, 결국에는 괴로워하는 멧돼지의 모습을 보며 웃고 즐기기까지 한다.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이어오던 평화와 질서는, 의견 충돌 끝에 잭이 자신의 사냥 조를 데리고 떠나버리면서 완전히 박살난다.   
 구조를 우선시하는 랠프와 사냥을 우선시하는 잭의 대립이 심화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사냥과 살육에 대한 본능적인 충동에 끌려 잭의 패에 가담한다. 그 사이, 사이먼이라는 소년이 그동안 소년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짐승'의 정체가 인간의 시신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사이먼은 번개가 치는 가운데 광란의 춤을 추던 잭과 그 패거리에게 달려가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말한다. 하지만 사이먼을 '짐승'으로 착각한 잭 패거리는 그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만다.
 대부분의 소년들이 잭의 편에 가담한 까닭에 랠프에게 남은 동료는 돼지와 쌍둥이 형제가 전부였다. 잭 패거리는 랠프 일행을 급습하여 돼지의 안경을 빼앗아 간다. 안경은 불을 피울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기 때문에 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필품이었다. 랠프 일행은 잭을 찾아가 안경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그 와중에 잭의 심복인 로저는 바위를 굴려 돼지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영국에 있을 적엔 그리스도를 위한 노래를 부르던 성가대 소년들이 광기에 휩싸여 악마로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 랠프는 간신히 달아나지만 쌍둥이 형제는 잭에게 사로잡혀 고문을 받는다. 잭은 랠프를 잡기 위해 섬에 불을 지른다. 잭 패거리의 추격을 받으며 정신없이 달아나던 랠프는 연기를 보고 섬에 상륙한 해군 장교와 마주친다. 뒤이어 도착한 잭 패거리도 해군 장교를 보게 된다. 해군 장교와 대화하는 동안 잭 패거리는 이성을 회복한다. 모든 소년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작품은 끝이 난다. 
 이 작품의 제목인『파리 대왕』은 파리와 지옥의 왕,'벨제붑'의 별칭으로 악마를 상징한다. 『파리 대왕』에 따르면 인간의 천성은 본래 폭력성과 야만성을 동반한 악마적인 성품이며, 이는 인간이란 존재를 아주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다. 인간이 다시 야만인으로 돌아가는 것과 이성과 문명이 파괴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대자연속에 고립된 어린 소년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소년들이 전쟁이라는 인간의 폭력성을 피해서 온 이들이라는 모순점은 작품의 주제를 더욱 부각시킨다. 특히 잭과 성가대 소년들이 서서히 타락해가는 과정은 마치 타락한 천사인 루시퍼를 연상케 한다. 루시퍼 또한 타락하기 전에는 천국에서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잭은 마치 루시퍼가 다른 천사들을 타락시켰던 것처럼, 다른 소년들의 야만성을 불러일으키고 타락을 부추기는 주체였다.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이다. 윌리엄 골딩은 작품의 마지막에 소년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본성이 비록 야만적이고 잔인하지만 반성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반성은 곧 잘못을 뉘우친다는 의미이다. 이성은 회복될 수 있으며 눈물을 지닌 인간인 이상, 반성이 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간에 대한 한 가지 희망을 제시한다.     
 인간의 폭력성과 야만성은 대자연보다 문명 속에 있을 때 더 팽창하기 쉽고 위험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이성을 잃어버리고 악마로 변해버린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한없는 회의감이 밀려오는 밤이다. 소년들이 애타게 기다려온 구원자인 어른들조차 전쟁으로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으니······.
 백재열(문예창작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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