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란, 인생에서 보편적이고도 가장 난해한 과정일 것이다. 헤세의 아프락사스에 대한 문장을 빌리자면, 성장이란 새가 하나의 세계를 깸으로써 발생하는 '결과'보다, 새가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오려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현실의 직시와 극복, 자신이나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 성장으로 이어지는 다소 상투적인 전개에도 불구하고, 성장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오는 주인공의 '과정'을 통해 독자로부터 객관적인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 작품의 주인공인 동구는 어리지만 순박하고 생각이 깊은 소년이다. 하지만 동구의 일상은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가족 때문에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동구의 엄마와 할머니의 지독한 고부갈등은 가정뿐만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조차 긴장시키는 전쟁이다. 일방적으로 할머니 편을 들어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아버지의 무심함은 동구에게 이해되지 않는 광경이다. 게다가 동구 자신은 그 귀하다는 사대독자이지만, 며느리 기를 살려주기 싫은 할머니의 심술로 인하여 매번 기죽어 사는데다가 난독 증세까지 앓고 있어서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온갖 멸시를 받으며 지낸다. 이러한 차가운 분위기 속에 여동생 영주가 태어난다. 영주는 타고난 귀여움과 총명함을 내세워 집안의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온 가족에게 예쁨을 받는다. 영주의 탄생은 동구에게 있어 성장의 시작이다. 난독 증세로 인하여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도 글을 읽지 못하는 동구에게, 세 살의 나이로 글을 읽어 가족들을 놀라게 한 영주는 자랑거리이지만 동시에 열등감을 안겨준다. 게다가 자신이 글을 읽지 못한다는 이유로 엄마가 학교에 불려가면서 동구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상처받는다. 어느 날, 동구는 방과 후에 담임인 박영은 선생과 면담을 하게 된다. 동구가 마음이 넓고 생각이 깊다는 것을 알아차린 박영은 선생은 그에게 자존감을 심어주려 노력한다. 
 그날부터 동구는 방과 후에 박영은 선생과 이야기를 하고 책을 읽으며 한글 공부를 시작한다. 난독 증세가 서서히 해소되면서 동구는 천사 같은 박영은 선생을 사모하게 된다. 하지만 동구의 할머니와 아버지는 여전히 어머니에게 고통을 가하고, 어머니는 홀로 서러움을 삭힌다. 박영은 선생은 동구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생각과 태도이다. 동구가 글을 거의 다 깨우칠 무렵, 그는 3학년이 끝나고 박영은 선생과 헤어져 4학년으로 진급하게 된다. 동구는 박영은 선생이 있는 술자리에 따라갔다가 술기운에 박영은 선생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박영은 선생은 동구의 마음을 받아준다. 그런데 여동생 영주가 사고로 인하여 목숨을 잃는다. 박영은 선생도 본가가 있는 광주로 내려갔다가 전두환 정부에 의하여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제 주변에 있는 이들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진 상태에서, 동구는 박영은 선생을 추억하며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서울을 떠나 아픔을 잊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아버지와 할머니를 설득한다. 그리고 동구가 자신이 사랑했던 삼층집의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하는 것으로 작품은 끝난다. 
 동구의 성장은 영주나 박영은 선생처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등장하며 시작된다. 동구는 사랑을 받으며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나중에는 타인으로 하여금 사랑을 일깨운다. 이 모든 과정들이 어린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절절하게 전개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 이 작품은 유신말기와 군부독재, 민주항쟁이라는 한국 현대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역사적 격동기를 소년의 시점을 통해 그려냈다. 동구에게 그 혼란과 암흑의 시대는 기껏해야 탱크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일 뿐이다. 어린 소년의 관점은 미숙하여 역사의 겉만 훑어볼 뿐이지만, 그 격동기를 한 발짝 떨어져서 살펴보는 폭 넓은 시선으로 본질을 꿰뚫는다.
 아마도 온전한 성장(成長)이란, 사전적인 의미대로 그저 몸이 커져 자라는 것만이 아닌, 타인을 이해하고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내면적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인가 보다.
 
 백재열(문예창작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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