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의 몬로빌에서 소설가 하퍼 리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로 그녀가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은 두 권이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1961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앵무새 죽이기』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미국 남부는 북부에 비해 인종 차별의 잔재가 짙게 남아 있다. 작가인 하퍼 리 역시 남부 출신이며,『앵무새 죽이기』는 그녀의 자전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그녀는 이 소설을 통해, 미국인의 가슴속에 잠들어 있는 평등 정신과 양심을 일깨우고자 했다.
   『앵무새 죽이기』는 경제 공황이 극심했던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시골을 배경으로, 어린 소녀의 시선을 통해 선입견과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스카웃'은 오빠인 '젬'과 함께 다양한 사건을 겪으며 성장한다. 폐쇄적인 생활을 하는 부 래들리는 마을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인물이다. 스카웃과 젬은 그가 무서운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며, 그의 집 근처에 가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부 래들리는 집 안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내였다. 그는 젬과 스카웃을 몰래 지켜보다가 남매의 천진난만한 행동에 웃기도 하고, 몰래 선물을 놓아두기도 한다. 젬의 바지를 꿰매 주고, 남매를 닮은 조각상을 만들어 두거나 몰래 담요를 전해준 일은 그의 온화한 성품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일로 인하여 스카웃은 사람들의 선입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된다.
   작품 내에서 스카웃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인 '애티커스 핀치'다. 작품 중반에서 핀치는 자녀들에게 이웃인 듀보스 할머니의 죽음과, 원래 모르핀 중독자였던 그녀가 명징한 정신으로 세상을 떠나기 위해 모르핀을 끊었다는 사실을 전하며,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새로 시작하고, 그것을 끝까지 해내는 게 바로 용기"라고 말한다. 이 말은 자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자,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그는 백인인 메이옐라를 강간했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흑인,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는다. 이 일로 인하여 핀치는 보수적인 백인들의 비난을 받고 심지어 이웃에게서 '깜둥이 애인'과 같은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게다가 승률도 낮은 소송 사건에서 흑인 피고의 명예를 지키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회와 투쟁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스카웃은 감동을 받는다. 이러한 핀치의 행동은 작품 전체를 꿰뚫는 본질, 즉,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앵무새'가 의미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끄는, 나약하지만, 적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 사회적인 약자이지만 선량한 사람을 의미한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언제 희생될지 모르는 나약한 앵무새들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앵무새를 죽이려는 사회에 맞서 앵무새를 지켜내는 용기, 앵무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배려, 이것은 규칙이나 예의 따위가 아닌, 우리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목소리이다.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강한 개인'이야말로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하퍼 리가 꿈꾸었던, 앵무새를 지켜주는 세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그녀 덕분에 우리가 지금 사는 시대가 아직은 앵무새를 죽이고 있는 시대라는 걸 안다. 그녀가 펜으로서 해준 모든 일에 감사한다. 그녀는 죽었으나 이제 우리는 앵무새를 살릴 차례다.


백재열(문예창작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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