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공과대학과 학생회관 사이에 위치한 임균수 추모비
창의공과대학과 학생회관 사이에 위치한 임균수 추모비

 민주주의의 특징은 '원칙에 근거를 둔 자유로운 발언과 행동이 이전 시대보다 빠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빠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시스템은 변화를 뒷받침하는 거대한 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장기간에 걸친 희생 덕분에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이들을 기리는 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지향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심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삶을 바라보는 방식과 결부지어보진 않습니다. 계승 정신은 삶 속으로 옮겨져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기고 글엔 교과서적인 내용보다, 민주주의 정신을 받아들이는 제 삶의 태도와 여기까지 이르게 된 계기를 풀어내고자 합니다.
 전 비관적 낙관주의자이며, 진취적으로 미래를 그려나가는 사람입니다. 안 되는 일이 있어도 낙담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해 건설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삶의 태도가 민주주의 시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리는 실천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변호사나 판검사가 되어 약자들을 위해 힘쓰는 삶을 살았음 좋겠구나", 제가 14살 때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정신이 온전하실 때마다 남기셨던 말씀입니다. 어머니께선 이화 여대 국문학과를 나오셨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강하던 시절에 당대 지식인들 특유의 학풍까지 겹쳐서 그런진 몰라도, 어린 시절부터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노래로 불러주셨습니다. 또한 본인의 재능을 담아 아픈 삶을 사는 사람들의 심정이 녹아져 있는 글을 많이 써주셨습니다. 당시엔 어머니의 행동이 의뭉스럽기만 하였습니다. '우리 먹고 살기도 힘든데 엄마는 왜 이렇게 오지랖이 넓으실까?'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2014년 지방 선거,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했던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처음 하는 투표라 마냥 신기한 마음으로 투표를 했습니다. 그러나 투표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 하나 하나는 그 이상의 값어치를 갖고 있었습니다. 삶의 애환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같이 녹아 있었죠. 그제서야 어머니께서 보여주셨던 것들이 무슨 의미였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제 삶의 스타일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미래를 그리고 싶으면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고,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소극적인 면모를 걷어내고 보다 진취적인 성격으로 바뀌어갔습니다.  
 병역 의무를 사회 복무 요원으로 아동 센터에 자원해서 마쳤습니다. 가난하고 힘들게 자라는 아이들이 센터에 많단 걸 알기에, 부모님이 채워주지 못하는 애정과 행복을 채워주고 싶었습니다. 방과 후 센터에 오는 아이들 한 명 한 명 따뜻하게 맞이해주었습니다. 다른 직원 분들께선 하지 말라 하셔도 고생했다며 진심 어리게 대하였습니다. 그러자 시간이 좀 걸렸지만 아이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폭력적이던 아이는 차분해졌고, 침울하던 아이도 웃기 시작했습니다. 민주 열사 분들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밝은 미래를 그리며 나를 조금만 희생하면 보다 건강한 개인이 만들어질 수 있단 걸 보여주었습니다. 
 한 번의 성공 사례를 만들고 나니, 조금 더 큰 꿈을 그리고 싶어졌습니다. 개인으로서 아픈 사람 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의사가 돼야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병역 의무를 마치는 시점에 수능을 쳤고 한의대에 입학하였습니다.
 한의대 입학 후에도 동일한 삶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청소년 교육 봉사부터 멘토링 프로그램, 아픈 분들을 위한 의료 봉사 등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전 올해 28살입니다. 어리기도 하고, 어른이기도 하며, 사회 초년생이기도 한 나이죠. 현재를 충실히 살며 미래를 그려보는 제 공상은 다른 누군가에겐 철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희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원동력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할 의지가 있는 지식인 '개인'에게 존재합니다. 
 이것을 깨닫고 내 삶 속에서 조금씩 실천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진정한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허윤(한의학과 본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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