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남자친구는 나쁜 남자다.'
 2000년대 당시 'B형 남자친구'라는 키워드가 대두되며 사람들은 혈액형별 특징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했다. 별자리, 생초, 출신 지역 등 사람의 기질을 구분하는 방식은 모습을 달리할 뿐 늘 시대와 함께했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또한 이와 유사한 성격 유형 지표다. 그러나 자기보고서 문항을 통해 분류된 개인 경향과 인간 행동에 끼치는 영향을 실생활에 응용한 심리 검사라는 점에서 MBTI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 확산되고 있다.
 혈액형, 별자리, 생초 등을 바탕으로 한 성격 유형 분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유행으로 웃고 넘어갈 수준이었다. 첫 만남이 있는 자리면 서로의 MBTI부터 묻는 요즘 MBTI가 그 정도의 유효성이 있는지 재고해야 할 시점이다.

16가지 성격 유형 지표 
 MBTI는 크게 네 가지 척도로 나뉜다. 각각의 기준은 두 개의 척으로 성격을 유형 짓는다. 내향(Introversion)과 외향(Extroversion), 직관(iNtuition)과 감각(Sensing), 감정(Feeling)과 사고(Thinking), 인식(Perceiving)과 판단(Judging). ISTJ 유형이라면, 내향적이고 판단적이며, 사고와 감각을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ENFP 유형이라면, 외향적이며 인식적이고, 직관과 감정을 우선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두 가지 기준으로 두 개의 경우의 수가 생기기 때문에 16가지 성격 유형 지표가 만들어진다.

MBTI 자기소개서의 등장 
 20대와 30대를 중심으로 MBTI 문화가 번져가며 같은 유형의 사람끼리 유대감을 갖는 경우도 발생한다.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자신과 같은 유형의 사람들과 공유하며, 특정 성격 유형의 사람들만 모이는 익명 대화방을 만들어 공감을 얻기도 한다.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은 지난달 2일 진행한 신입사원 채용 자기소개에 '자신의 MBTI 유형을 소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장단점을 들어 소개하시오'라는 질문을 넣었다. 아워홈 관계자는 "MBTI 자소서 문항은 지원자의 창의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입했다. 또, MZ세대 트렌드를 반영해 지원자의 차별화된 자소서가 작성될 수 있도록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MBTI 성격 유형은 16개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자기소개서의 다양성이라는 의도가 제대로 작용할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배원우 씨(문예창작학과 2년)는 "MBTI 검사를 진행해 본인이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더라도 자신과 다른 부분이 있을 텐데 이 부분을 간과한 것 같다. 취준생들은 취업 성공을 위해서 자기소개서에 큰 비중을 두는데 자신을 MBTI에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검색량을 분석해주는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MBTI 자기소개서' 검색량은 지난 6월까지 0을 기록하던 것이, 7월 들어서 73,   9월에는 100으로 급증했다. 데이터랩은 조회 기간 특정 단어의 최다 검색량을 100으로 설정한 뒤 상대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다.
 부동산 애플리케이션 집토스, 간편결제 업체 차이코퍼레이션, 자산관리 서비스 불리오 또한 신입사원 자기소개서에 MBTI를 기재하도록 했다. 대학들도 이에 발맞춰 '찾아가는 취업투데이', 'MBTI 검사 분석결과 상담제공 부스', 'MBTI 이용한 취업설계'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다. 기업들은 MBTI를 통해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 업무 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한 용도라고 하지만, 취업에 사활을 거는 취준생들은 이마저도 큰 압박으로 느끼고 있다.

사적 MBTI와 공적 MBTI 
 사회적으로 MBTI가 큰 인기를 끌다 보니, 취준생뿐만 아니라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MBTI가 화두에 오른다. 지난 8월 인크루트는 직장인 870명에게 MBTI 관련 의견을 물어본 결과를 발표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협업하고 싶은 동료의 MBTI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1위는 13.5%를 차지한 ISTP,   2위는 INTJ(9.5%), 이어 ISTJ(9.0%), ESFJ(8.9%)로 집계됐다. 가상 이상적인 동료로 ISTP 유형을 뽑은 이유엔 '조직에 잘 융화될 것 같아서'라는 답변이 58.0%, '성실한 이미지'라는 답변이 52.7%였다. 반면 '협업하기 가장 부담스러운 유형'으로는, ESFP(18.8%)가 1위로 꼽혔다. 이어 ENTP(18.5%), ESTJ(16.4%)로 집계됐다. ESFP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이유엔 '직장생활과 맞지 않는 성격일 것 같다'는 답변이 45.2%로 제일 많았다. 이와 같은 결과는 직장인들 또한 MBTI를 바탕으로 동료와의 업무 융합성을 판단하고 특정 유형을 꺼릴 수 있다는 방증이다.
 또한, '자신이 공적일 때와 사적일 때의 MBTI가 다른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78.4%가 '다르다'고 답했다.  78.4%의 답변으로 미뤄보면 취준생들의 MBTI가 실제 업무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미지수다. '회사에 MBTI 공유 문화가 조성된다면 어떨지'에 대한 질문에는 응답자 61.2%가 '반대한다'고 밝혔다. 76.6%로 'MBTI로 동료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MBTI와 업무는 별개'(55.4%)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인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MBTI 속 유형으로 업무 협력의 장단을 파악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것이 선입견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표출했다. 공적인 면과 사적인 면이 다르듯 MBTI 또한 검사 기간과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와 개인의 성격 유형을 연결 지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한 결과를 불러올 뿐인지도 모른다.

“면접도 보지 못하나요?” 
 앞선 인크루트의 조사와 달리 취준생들은 채용 시 I (내형성) 유형 등 특정 유형의 사람이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목소리 높인다. '외향적인 E 유형의 취준생은 채용하고, 내향적인 I 유형의 취준생은 채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문이 그것이다. 일각에선 MBTI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회사와 맞지 않는 사람을 뽑지 않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의심이 부푸는 중이다. 이에 취준생들은 기업이 원하는 MBTI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자신을 제단하고 있다.
 일부 유튜브와 블로그는 직종별로 선호하는 MBTI를 분류해 놓기도 한다. 서비스직, 영업직, 판매직, 마케팅 등 다양한 직종에서 원하는 MBTI에 맞춰 취업 준비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것이다. 한 기업은 채용 공고에 'MBTI 성형 E 유형 선호'라고 기재할 정도로 MBTI와 채용의 긴밀성이 높아지고 있다. 직종별로 선호하는 업무 스타일과 성향이 있지만, MBTI가 등장한 이후로 MBTI가 기준이 돼버렸다. 단순 개인 성향과 진로 방향성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쳐야 하는데, 그 열기가 과해져 어떤 항목에 어떤 답변을 해야 특정 MBTI 유형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식의 또 다른 과제로 변질하고 있다.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고집이 세고, O형은 욱하고, AB형은 괴팍하다는 혈액형별 특징은 널리 알려졌다. 또한, 이에 맞춰 상대방에게 혈액형을 물어보고 그 사람을 지레짐작하곤 했다. MBTI와 유사한 모습이다. A형이 스스럼없이 행동하거나, B형이 우유부단하면, 그 사람을 보통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특이한 유형으로 몰아가는 상황은 빈번히 벌어졌다. 혈액형별 특징은 단순 재미에서 그치지만, MBTI는 과학에 근거했다는 미신에 가까운 믿음으로 인해 취준생들은 채용에 조금이라도 유리하고자 MBTI를 자격증처럼 공부한다. I 유형과 E 유형으로 지원자를 선별하고 예상하는 선입견은 오히려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일이다.

단순한 참고 지표일 뿐 
 MBTI가 한국에 알려진 지는 꽤 오래됐다. 전문가들은 근래 들어 MBTI가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재영 한국MBTI연구소 연구부장은 지금의 MBTI에 관해서 "자신과 타인이 왜 같거나 다른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MBTI는 개인마다 지닌 특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퍼뜨리는 순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MBTI가 개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개인을 이해하는 도구로 쓰여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MBTI는 객관적인 데이터 없이 내적 추론을 바탕으로 한 이론이기 때문에 인간의 내면을 일반화하는 이론이다. 또한, MBTI는 정서의 부정적인 면, 불안정성, 신경증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서 온전히 인간의 특성을 논할 수 없다. 이외에도 N 유형과 S 유형으로 나뉘는 감각과 직관은 극으로 배치되는 특성이 아니다. 인간의 직관과 감각은 상호 조화를 통해 드러나는 특성이라는 지적이다. 지극히 이분법적으로 인간을 구분하고 있다는 뜻이다. MBTI가 타자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쓰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인간은 16가지의 유형으로 구분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을 보다 오해 없이 받아들이는 방편으로 MBTI를 사용해야 한다.
 MBTI 유형별 공감을 끌어내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 손상윤 씨는 "오해하고 싶지도, 오해받고 싶지도 않아서 사람들이 MBTI에 빠진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우리는 서로를 인식하고 행동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MBTI에 관심을 가졌다. 구태여 MBTI가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에 공감할 필요는 없다. 단지 상대의 행동을 의도와 다르게 해석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MBTI다. MBTI가 개인이 개인을 거르는 그물로 호도되지 않고,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고, 오해하지 않게 도와주는 하나의 지표로써 쓰이길 바란다.

오병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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