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란 드 러셀 / 출처 : 나무위키
버트란 드 러셀 / 출처 : 나무위키

 

 영국의 수학자이며 철학자로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한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1920년 10월 12일 량치차오, 차이위엔페이 등이 설립한 강학사의 요청으로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로부터 1921년 7월 11일까지 9개월을 중국에 머물게 된다. 러셀은 상하이, 항저우, 난징을 거쳐 점점 북상하여 한커우, 창샤를 거쳐 베이징에 도착하였다. 여러 도시 중 베이징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러셀이 가장 맘에 들었던 도시는 항저우와 베이징이었다. 항저우는 고대 문명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로, 이탈리아의 도시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러셀은 고전적인 미를 갖고 있으면서도 중국인들의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베이징이 더 좋았다. 물론 베이징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기도 했다.
 러셀은 통역을 맡은 하버드대 출신 학자인 자오웬런(趙元任), 중국의 러셀이라 불리는 베이징대 교수인 장션푸(張申府) 등과 같은 지식인들과도 친했지만, 평범한 중국인들도 좋아했다. 그들의 미적 감각도 좋았지만, 그들의 유머 감각을 더 좋아했다. 러셀은 자서전에 중년의 중국인 상인 두 명과 오래된 탑을 보러 갔던 일에 대해 썼다. 탑 꼭대기에 오르고 나서야 두 명의 상인이 따라오지 않은 것을 안 러셀은 내려가서 그들에게 왜 올라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도 올라가려고 했었지요. 그리고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닌지 얘기를 나눴습니다. 둘 다 여러 가지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로 올라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탑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정말로 무너지면, 최소한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철학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증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러셀은 그들이 탑에 올라가지 않은 진짜 이유가 날이 너무나 더웠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둘 다 너무 뚱뚱해서 올라갈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러셀은 다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탑에 오르지 않은 중국인들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중국인들이 "이성적 쾌락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신분의 고하와 관계가 없었다. 모든 계층의 사람이 쾌락을 추구하고,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고 보았다. 특히 중국인은 예술을 통해 즐거움을 누리고자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중국은 예술의 나라였다. 

중국문제의 해답은 문화
 중국은 예술의 나라이고, 예술가는 모든 선악의 덕을 갖고 있기 마련이라고 러셀은 생각했다. 중국인에게 선은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악은 스스로를 해롭게 하는 것이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미덕을 후대에 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세계 모든 나라들은 중국인들이 중국인들의 생활방식대로 살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도 생존을 위해 육군을 만들고 해군을 만들며, 광산을 개척하고, 강철을 제련할 수밖에 없다. 중국인들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며 살고 싶지만, 생존을 위해 공업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러셀은 생각했다. 하지만 러셀이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까지는 아직도 다른 공업 국가들과 달리 중국은 문명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고, 즐길 줄 아는 여유와 목욕을 하며 햇볕을 쬐며 철학을 논할 수 있는 즐거움을 아는 나라였다. 러셀은 중국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이 고유한 문화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 이런 내용을 가진 러셀의 중국 강연은 당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는 변혁의 시기인 신문화운동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민주"와 "과학"이라는 두 가지 기치를 내세우며 중국의 전통을 비판하고 서양의 사상과 학문을 배우자고 외치던 시절이었다. 전통적인 모든 것은 그것이 예술이든, 철학이든 부정되던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러셀이 중국의 것을 긍정한 것은 진보적 인사들에게는 상당히 우려되는 일이었다. 저우줘런(周作人)은 「러셀과 국수(國粹)」라는 글에서 중국인들에게 국수를 부추기지 말라고 러셀에게  경고했다. 
 러셀은 한 나라의 발전에 있어서 정치, 경제, 문화 중에서도 문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화 문제만 해결된다면, 어떤 정치나 경제 제도라고 해도 그런 목표를 실현한다면 나는 받아들인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렇다고 러셀이 중국의 모든 문화를 긍정한 것은 아니었고, 모두 다 옳다고 생각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러셀은 중국 전통문화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공자사상에 두 가지 약점을 지적했는데, 그것은 바로 강한 가족의식과 효의식이라고 보았다. 과도한 가족의식은 공공정신을 손상시키고, 군주의 독재적 권력을 초래할 수 있으며, 과도한 효 의식으로 인해 가족 이외의 타인들에 대한 존중이 약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 약점은 서양 국가들에게 있어서 지나친 애국심이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로 발전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로 배우면서 진보하는 문화가 정답
 러셀은 문화적으로 중국인들이 맹목적으로 서양 문화를 추종하는 것에 반대하였지만, 중국 전통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보존하는 것에도 반대했다. 그는 『중국문제』라는 책에서 "중국 전통문명이 진보하지 않고는 예술과 문학적으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하고, 서양의 사상과 문화가 진보를 위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러셀은 중국 문화가 완벽한 것은 아니듯이, 서양 문화도 결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동서양이 모두 서로의 좋은 점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보았다. 러셀이 보기에, 서양인들의 인생관은 기계적 인생관으로, 과학으로 사람의 마음마저 만들 수 있다고 여기는 단점이 있다. 그러므로 서양의 것을 배우더라도 그런 단점은 배우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서양의 기계적 인생관은 경쟁과 개발을 부추기고 만족하지 못하게 하므로 결국은 파괴로 치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세계가, 동북아시아가 함께 살아가야 하며, 위기를 함께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너는 나와 다르다'라는 생각이 지나쳐 진정으로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 러셀은 서로의 차이점이 우리가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얘기하고자 한 것이며, 결국은 우리에게 함께 하겠다는 '공공정신'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김현주 교수(원광대 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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