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크게 흥행했던 적이 있다.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감정을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라는 다섯 캐릭터로 인물화하여 주인공이 새로운 삶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독창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소설이 있었다. 독일 출신의 작가 모니카 페트가 쓴 『행복한 청소부』라는 책에 실린 〈생각을 모으는 사람〉라는 작품이다. 생각은 감정을 일으키고, 감정은 생각을 싹틔우니 두 작품은 서로 닮은 듯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부루퉁 아저씨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다. 아저씨는 아침 일찍부터 오후 두 시 무렵까지 거리에서 발견한 생각들을 낡은 배낭에 주워 담고, 집으로 돌아가 모아온 생각들을 정리하여 하나씩 커다란 화단에 심는 일을 매일 반복한다. 

 아저씨의 일은 생각을 모으는 거야. 예쁜 생각, 미운 생각, 즐거운 생각, …(중략)… 조용한 생각, 긴 생각, 짧은 생각.
 아저씨에겐 모든 생각이 다 중요해. 물론 아저씨가 좋아하는 생각들도 있어. 하지만 다른 생각들이 마음을 다칠까 봐 내색을 하진 않아. 생각들은 아주 예민하거든. 아저씨는 도시의 모퉁이나 골목들을 돌아다니며 귀를 기울이지. 


 우리는 매일 아주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생각은 감정을 만들어 낸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고 다른 사람과 부대껴 살아가면서 성격이나 하는 일과 관계없이 나와 타인의 생각을 모으는 임무를 부여받았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접붙여서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이 많으니 말이다. 그다지 부지런하지 않아도, 그리고 의도적이지 않아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생각을 모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짊어졌다. 
 그런데 생각을 모으는 사람으로서 부루퉁 아저씨는 다른 생각들이 마음을 다칠까 봐 좋아하는 생각들을 내색하지 않는데 나는 과연 어떠한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마음속에 처한 상황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지시라도 해 주는 신호등이라도 있다면, 빨간불일 때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어서는 안 되고, 노란불일 때는 주의해야 하며, 녹색불일 때 마음껏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가진 마음의 장치는 그러한 기계적 작동까지 허용하지는 않는다. 나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는 행동의 문제라기보다는 생각의 문제이다. 하나의 생각이 다른 어떤 생각에게 상처가 될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함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고, 타인을 존중하게 만든다. 마음속 신호등에 어떤 색깔의 불을 켜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겸손과 존중의 미덕을 실천함은 생각의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할 과업이다. 우리가 달성할 과업, 즉, 나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에 대한 배려는 우리가 얽혀 살아가는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밖에는 갈퀴로 깨끗하게 흙을 고른 커다란 화단이 있어. 아저씨는 생각을 하나씩 바구니에서 꺼내 흙 속에 심어. 아저씨가 손에 묻은 흙가루를 비벼 털고 나면, 그 날 일이 모두 끝나는 거야. 
 이슬이 내린 화단에는 불그스름한 아침놀을 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기자기하고 특별한 꽃들이 반짝이고 있어. 상상밖에 할 수 없는 그런 꽃들이 말이야. 


 어떤 생각들은 치유가 필요하다. 특정 대상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 뜻대로 되지 않아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 마음이 구겨져서 세상이 온통 검게 보이는 우울 같은 생각들은 돌보지 않으면 더 많은 아픔을 양산한다. 화단에 심긴 생각이 흙의 온기로 꽃이 되듯, 치유가 필요한 생각도 마음의 온기가 필요하다. 타인의 생각뿐만 아니라 나의 생각도 둘러보면, 돌봄이 필요한 생각이 분명 있다. 이 작품이 따뜻한 이유는 우리 마음이 온기를 갖도록 불을 지필 장작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부루퉁 아저씨는 어떤 생각이든 편견 없이 바라보며, 좋은 생각이든 그렇지 않은 생각이든 화단에 심어 놓으면 예쁜 꽃을 피울 거라는 믿음이 있다. 우리도 혐오, 분노, 우울과 같은 생각에 대해 눈여겨 볼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고 취급하기보다는 그 생각들이 변화하여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치유의 손길을 건넬 수 있는 따스함을 지니는 게 어떨까?

 생각들을 정리하는 일은 정리하는 일은 아주 많은 조심성이 필요해. 생각들은 가려내기가 쉽지 않아 혼동하기 일쑤거든. 때때로 어떤 생각들은 아저씨한테서 도망치려고 어딘가로 숨기도 하지. 그럴 때면 아저씨는 그 생각을 찾아 무릎으로 방안을 기어 다니며, 컴컴한 구석과 모서리를 뒤지곤 하지. 하지만 그런 일은 아주 드물어. 단지 건방진 생각, 제멋대로 구는 생각, 나쁜 생각, 못된 생각들만 그렇게 하거든. 

 지금껏 살아오면서 건방진 생각, 제멋대로 구는 생각, 나쁜 생각, 못된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컴컴한 구석이나 남들은 잘 모를 거라 생각하는 곳에 숨겨 놓고, 그런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은 적도 많았을 것이다. 이불킥을 유발할 부끄러운 역사의 빈도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성이다.
  〈생각을 모으는 사람〉은 나에게 분명 반성할 기회를 주었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도 분명 그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대희 교수(국어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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