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크로폿킨
표트르 크로폿킨

 

 일본의 오스기 사카에(大杉榮,1885-1923)는 대표적 크로폿킨주의자였고, 중국의 리스쩡(李石曾), 스푸(師復) 그리고 한국의 신채호, 류자명 등은 모두 크로폿킨주의자였다. 그만큼 근대 동아시아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인물은 러시아 혁명가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폿킨(Pyotr Alexeyevich Kropotkin, 1842-1921)였다. 
 크로폿킨은 귀족의 작위를 버리고 국가에 맞서는 혁명가의 길을 선택한 인물이다. 그는 러시아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장교직을 사임하고 영지로 돌아와 토지를 사들였고, 당시 약 1,200명의 농노와 소작으로 준 넓은 토지를 소유한 부자였다. 그는 가정교사에게 예법, 문법, 역사, 지리 등을 배웠으며, 형 알렉산드르와 연극 놀이를 즐겨했다고 한다. 그리고 황제의 최측근이 될 수 있었던 페테르부르크의 근위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근위 사관학교는 궁정 귀족의 자제들을 교육해 근위대 장교로 임관시키는 궁정 학교였고 우등생은 궁정 근위가 될 수 있는 우선권을 가지게 되는 등 황제의 측근이 될 수 있었다. 
 근위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크로폿킨은 당연히 출세가 보장되었다. 하지만 그는 평탄한 길을 포기하고 시베리아 장교에 지원했다. 그는 시베리아에서 지리학과 동물 생태를 연구하는 등 과학 활동에 몰두했는데, 이러한 그의 과학활동은 그의 사상적 전환의 동력이기도 했다.
 그는 시베리아에서 국가 행정기구의 명령과 규율은 민중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명령과 규율에 따라 행동하는 것 보다 상호이해를 원칙으로 삼아 행동하는 것이 더욱더 효과적이라고 보았다. 이때 그는 아나키스트 길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의 아나키스트 사상은 동부 시베리아, 바이칼, 만주 등 여러 지역에 대한 지리학적, 민족지학적, 지질학적 탐험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시베리아에서의 동물사회에 대한 관찰은 상호부조론이라는 새로운 진화론의 해석을 낳았다. 그는 동물의 같은 종 내부 개체들의 상호협동과 종과 종 사이의 상호부조를 비롯해 인간사회도 상호협동과 상호부조의 맥락에서 이루어졌음을 자연세계와 인간사회에 대한 오랜 관찰을 통해 밝혀냈다. 이렇게 상호부조론이라는 크로폿킨의 대표적인 사상은 시베리아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상호부조론은 정치적 의미로 확장되었다. 개미와 흰개미, 꿀벌, 새, 물고기, 포유류 등이 어떠한 조직 구조없이 협력하고 있는 모습은 그를 아나키스트의 길로 이끌었다. "나는 이미 아나키스트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하고 있듯이 시베리아는 그를 아나키스트로 전환시킨 공간이었다.

만물은 공생한다!
 크로폿킨은 상호부조를 진화과정의 중요한 요소이고 이를 입증한 최초의 인물이다. 상호부조론은 크로폿킨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책인 1902년에 출간된 『상호부조: 진화의 요소(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에 자세히 논의되어 있다. 이 책은 김영범에 의해 『만물은 서로 돕는다: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로네상스, 2005)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소개되었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라는 표현은 크로폿킨의 사상의 핵심을 정확히 간파한 문장이다. '만물은 공생한다'가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왜냐하면 크로폿킨은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사회도 생존경쟁 보다는 협력과 연대를 통한 공생을 더 중요한 진화의 논리로 보았기 때문이다.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은 다윈의 진화론 전체에 대한 비판에서 형성된 것은 아니다. 동물과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적자생존이라는 관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다윈의 진화론을 인간사회에 적용하면서 다윈의 특정한 관점 즉 적자생존만을 강조한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스펜서는 처음으로 진화론을 인간사회에 적용한 사회진화론의 영감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크로폿킨은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진화론이 적자생존 혹은 승자독식의 논리로 이용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그래서 크로폿킨은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1890년부터 1896년까지 영국의 유명한 잡지 〈The Nineteenth Century〉에 '동물의 상호부조', '원시인의 상호부조', '고대인의 상호부조', '중세도시의 상호부조', '근대사회의 상호부조' 등 다섯 차례에 걸쳐 생존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진화론을 비판하는 글을 연재했다. 당시 연재한 글들을 보완해 1902년에 출간한 책이『상호부조: 진화의 요소(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이다. 
 1914년 판 서문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마자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은 끔찍한 투쟁에 휩싸였다…. 이런 침상을 해명할 만한 구실을 찾으려 했던 사람들에게 '생존경쟁'이란 용어는 안성맞춤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크로폿킨은 생존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진화론이 제국주의 정당화의 논리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했다.
 근대 동아시아 지식인들도 사회진화론은 강자의 약자 지배를 뒷받침한 논리로 인식했다. 일본에서는 제국주의론으로 변질되었지만 한국인에게 식민지 상황은 세계 대세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로 인식하는 등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당시의 상황을 힘의 논리로 이해했다. 그래서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 등의 논리가 만연했던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정치철학이 되었다. 나아가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은 한·중·일 아나키스트들의 연대를 가능케 한 동력이기도 했다. 이렇게 상호부조론은 서로 협조해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역량을 확신시켜 주었다.
 현재 동북아시아는 공생보다는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 팽배했던 크로폿킨이 살았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동북아시아는 승자독식의 공간이다. 크로폿킨은 꿀벌사회를 통해 "약탈 성향을 지닌 개체들보다는 연대를 실천하는 종을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라고 이해했다. 
 승자독식에서 벗어나 동북아시아 평화공생체를 구상해야 하는 이 시점에 크로폿킨의 이 말은 여전히 우리가 생각해 볼 이야기가 아닐까?

허남진 교수(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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