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꾼 우봉 이 매방 선생은 우리 춤을 정중동(靜中動)이 춤이라 했다. "몸을 위 아래 반으로 나눠봐. 위는 동이고 아래는 정이여. 위는 낮이고 아래는 밤. 위는 건전하고 아래는 요염해부러. 한국 춤은 바로 이 요염함을 빼면 시체여."

 

요염한 춤은 우리의 반대편에 위치한 나라 아르헨티나에서도 찾을 수 있다. 두 남녀가 춤을 춘다. 남자는 여자를 이끌고 여자는 남자에게 몸을 맡긴다. 몸의 위 아래가 따로 놀기에, 몸의 위는 '고요'하지만 그 아래의 파장은 크게 일어난다. 위는 우아하게 떠있으나, 물밑 발은 열심히 움직이는 백조의 몸짓을 닮았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들의 춤은 '하나의 가슴과 네 개의 다리' 라고도 한다. 아르헨티나 춤 또한 한국 춤과 같이 '정중동'이다.

 탱고 음악은 귀에 익지만 그 낯익은 이름만큼 잘 알고 있을까. 탱고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몇몇 영화, 예를 들어 <여인의 향기>, <탱고 레슨>,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탱고, 가르텔의 망명> 등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왔기에 그만큼만 알고 있다고나 할까. 영화를 통해 받은 인상은 극히 단편적이고 말초적인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정도가 아닐까.

 우리 춤을 차분한 마음으로 헤아려보면 남다르듯, 탱고가 갖는 의미 또한 라틴 아메리카인들, 특히 아르헨티나인 들에게는 각별하다. 아르헨티나 역사는 탱고와 함께 씌여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스페인의 춤곡에서부터 시작한 탱고는 이민자들이 아르헨티나로 건너오면서, 그들의 향수와 외로움이 녹아들면서 새롭게 태어난 춤곡이기 때문이다.

 알아야 면장 노릇한다!
 탱고를 알고자할 때는 그에 통용되는 용어를 안다면 그 몸짓이 더욱 가슴에 다가올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한 탱고이기에, 탱고 용어는 그들이 살던 스페인 말로 되어 있다. 따라서 제대로 이야기하자면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 발음의 '탱고'가 아닌 '땅고'가 된다.

 탱고를 추는 춤꾼들을 '땅게로스'(Tangueros)라 하고, 탱고를 추는 남자를 '땅게로'(Tanguero), 탱고를 추는 여자를 '땅게라'(Tanguera)라고 한다. 그리고 탱고를 추는 장소를 '밀롱가'(Milonga)라 한다. 밀롱가는 또한 두 박자 탱고 음악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한편 탱고 쇼도 보고 식사도 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을 '땅게리아'(Tangueria)라고 한다.

 발레의 동작에 나오는 발레 용어도 발레리나(Ballerina) 발레리노(Ballerino)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과 같이, 탱고 동작에서 나오는 탱고 용어 또한 만만치는 않다. 바쎄(Base), 아브라소(Abrazo), 까미나도(Caminado), 끄루세(Cruce), 오쵸(Ocho), 히로(Giro), 싸까다(Sacada), 간쵸(Gancho), 볼레오(Boleo), 빠라다(Parada), 엔로스께(Enrosque) 등.  그러나 땅게로스, 땅게로, 땅게라, 밀롱가라는 탱고 용어만으로도 왠지 땅고는 내 앞에 펼쳐져 있는 듯하다.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리베로 탱고>
아르헨티나에서 그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주던 춤 '탱고'를 세계적으로 널리 전파시키는데 공헌을 한 음악가로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1921-1992)를 꼽을 수 있다.
신천지에서 출발한 '정중동'의 탱고는 초기 유럽 사람들에게는 매우 선정적이고 땅게로 땅게라의 몸짓이 남녀의 성적 행위를 그리는 것같이 여겨져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그러한 탱고가 재즈와 묘하게 어우러지고, 특히 피아졸라에 의해 탱고는 재즈와 클래식의 환상의 짝꿍이 되어 색다른 모습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에 의해서 탱고는 단순히 춤추기 위한 곡이 아닌 연주를 위한 곡이 되었고, 피아졸라 이전의 탱고와는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는 의미에서 '누에보 탱고'(Nuevo Tango)라는 이름이 붙게된다. 춤곡에서 연주곡으로 새로이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는 아르헨티나 전통 탱고의 뿌리를 두고 클래식, 특히 그가 좋아했던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22-1890)나 바르토크(Bela Bartok, 1881-1945)의 음악과 미국의 재즈가 엮어져 ꡐ하나의 가슴과 네 개의 다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시도도 많은 저항에 부딪힌다. 전통을 무시하고 탱고의 정신을 타락시킨다는 숱한 비난에 피아졸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국을 떠나 미국과 유럽 국가를 떠돌아 다녀야 했다. 그러나 그의 외유는 탱고를 세계적으로 전파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ꡐ탱고'하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로부터 '똥덩어리'라고 불린 정희연은 피아졸라의 <리베로 탱고>를 연주한다. 그 어떤 <리베로 탱고>보다도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자신의 이름은 잊혀진 아줌마였고, 그저 엄마였다. 손가락 하나 까닥 안하는 남편과 철없는 아이들 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를 찾기 위해 놓았던 첼로를 움켜쥔다. 똥덩어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희미하지만 다시 찾은 그 꿈을 느끼면서 그녀는 <리베로 탱고>를 연주한다. 그녀에게서 <리베로 탱고>는 아줌마나 엄마가 아닌, 강마에의 말처럼 그녀의 이름에 책임을 질 수 있게 하는 그런 곡이었을 것이다.

장규원 (경찰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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