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0년 입춘날을 맞이하여 수운 최제우 선생이 입춘시를 썼습니다. 이때 수운(水雲)이란 호를 지었고, 이름을 제우(濟愚)로 바꾸었습니다. 우리에겐 동학(東學)을 창시한 사상가로 친숙합니다. 그는 19세기 중엽부터 심상치 않은 국제 정세를 간파했습니다. 결국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외세에 밀려 일제 강점이란 치욕을 겪었지만, 그가 남기고 간 우리 시대의 정신은 아직도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외래사상이 아닌 순수 우리의 생각을 담았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수운은 스스로 흐르는 물(水)과 서리는 구름(雲)과 같이 누구나 보고 느끼며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자연(自然)에서 깨닫고 실천하고자 했고, 스스로 우매한 보통 사람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즉, 어리석음을 건너게 할 주체를 자신이라고 확고히 믿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리석은가? 조선 말기의 민중과 단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린   200여 개국 가운데 선진국 문턱에 와 있습니다. 눈 떠 보니 선진국이라 하여 자긍심을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엔 그 반대로 눈 떠보니 후진국이 됐다라고 하는 한탄이 들립니다. 우리가 성격이 급해서 선진국에 갔다가 후진국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일까요?

 이처럼 급변하는 사태의 근본은 평화 한반도 환경을 스스로 구현하지 못하기 있기 때문입니다. 확장의 한계성을 갖는 것이죠. 복잡하게 얽힌 국제 정세 속에 확고한 우방의 질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반면, 냉정한 세계에서 늘 디딤돌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그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주춧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월,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을 뽑는 선거가 코앞입니다. 누구나 선택의 몫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새로운 수운의 등장을 꿈꾸어 보면 어떨까요? 특정한 인물에만 기대하는 제2의 수운도 좋지만, 바로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봄이 올까요? 따사로움이 깃든 우리 산천,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고 존재 그 자체의 자연을 느끼며 삽니다. 그 고마움을 모를 뿐이죠. 자연(自然)은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스스로 그러하다'란 뜻도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저절로 꿈을 이루게 하는 힘을 가져 봅시다. 봄을 맞이하는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입니다. 수운의 동학론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하늘의 길이란 형체가 없는 것 같지만 뚜렷한 흔적이 있는 것이고, 땅의 이치란 크기만 한 것 같지만 뚜렷한 기준이 있다. 하늘과 땅을 채우고 비우지만 움직임과 멈춤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자연의 섭리, 허투루 생각하지 맙시다. 우린 강력한 힘을 가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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