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도 인종차별이 없다고 주장할 수 없으며, 인종차별은 전 세계적 관심사이며 이를 해결하려면 보편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더반 선언과 행동프로그램)

 여름 방학 동안 많은 학생들이 외국을 여행했을 것이다. 특히 유럽이나 북미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종종 피부색이나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게 되고, 인종차별의 피해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험은 한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민감성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인이 흑인이나 다른 아시아인들에게는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한국 사회에는 백인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동남아시아인이나 흑인에 대한 선호도는 매우 낮다. 이는 한국 사회가 백인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하고, 다른 아시아인이나 흑인을 낮게 보는 편견을 내면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유학 광고에서 백인 비율을 강조하는 문구나, 같은 흑인이라도 이들이 미국이나 유럽 출신인지, 아니면 아프리카 출신인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경제적 지위와 출신 국가와 결합되어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며,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이를 '한국적 인종주의', 'K-인종차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인종차별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편견이나 무지로 설명될 수 없다. 동북아시아 인종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내재화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동북아시아의 인종주의는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1904년에 발발한 러일전쟁(1904-1905)은 단순한 지정학적 충돌 이상의 인종주의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무릇 성패는 만고의 정해진 이치이다.

   오늘날 세계는 동서로 갈라졌고, 인종도 서로 달라 상호간에 경쟁하기를 밥먹듯이 하고 있다"라고 하여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동양과 서양, 황인종과 백인종으로 나뉘고 서로를 적자생존의 경쟁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는 인종주의와 사회진화론이 결합된 시각으로, 지역적으로 인접한 황인종인 동아시아 3국이 평등한 관계로 연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러일전쟁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이 서구 열강 중 하나인 러시아와 싸워 승리한 사건으로, 당시 세계 질서와 인종적 위계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왜냐 하면, 러일전쟁은 동양(황인종)과 서양(백인종) 사이의 충돌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구 열강은 식민지 확장과 제국주의적 팽창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고, 인종주의는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념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시아 국가로서는 최초로 서구 열강에 대항하여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아시아가 서양 세력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편 일본은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성을 주장했다.

   이것은 사회진화론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 사회진화론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논리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일본은 이러한 사회진화론을 수용하여, 자신들이 동양에서 가장 강한 민족이며, 따라서 다른 아시아 민족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일본은 황인종의 연대를 주장하면서도 우생학을 수용하면서 '유전적 순수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일본의 국가주의적 이념과 결합하여 일본을 '우수한 민족'으로 규정하고, 다른 민족과의 혼혈을 억제하려는 인종주의적 정책으로 이어졌다.

   그 대표적인 정책이 1940년에 제정된 '국민우생법'이다. 이 우생보호법은 1996년 폐지되었지만 인종주의적 사고방식과 우생학적 사고의 잔재는 여전히 일본 사회에 내재화되어 있다. 중국 역시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자국 중심의 세계관을 형성하며, 주변 민족이나 국가들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경향을 보였다. 

 한국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이러한 인종주의적 시각을 내면화하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고, 이러한 경제적 성장은 민족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성취는 자부심으로 끝나지 않고, 경제적으로 덜 발전한 국가나 민족에 대한 인종주의적 태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2019년 인종차별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인종차별은 '경제적 수준'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차별 이유를 '출신국가'로 응답한 비율이 절반이 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경제적 지위를 기준으로 다른 인종과 국가을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등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인종적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인종주의는 강하게 남아 있다. 특히 경제적 수준에 따라 인종차별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예를 들어, 같은 아시아인이라도 경제적 지위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고, 이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경제적 차별과 인종주의를 내면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우리는 인종차별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이중적 위치에 서 있다. 

 또한, 한국 사회는 유럽과 미국 출신의 백인들에게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의 사람들에게는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한국이 경제적, 문화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특정 인종에 대해 차별적 시각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한국 사회에서 백인 선호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여러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대표적으로 서구 중심의 근대화의 결과이다. 한국은 19세기 말부터 서구 열강의 압박 속에서 근대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서구 문명은 문명의 상징으로 인식되었고 서구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았다. 이로 인해 서구, 특히 백인 중심의 문화와 가치관이 우월하다는 인식이 형성되었다. 

 이런 인종주의적 인식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인종차별은 한국 사회가 국제 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하고자 하는 지금, 매우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인종차별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과거의 민족적, 인종적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즉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이제 과거의 인종주의를 극복하고, '동북아아시아 평화공생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인은 인종차별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적 성숙을 위한 첫걸음이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틀에 갇히지 말고,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동북아시아의 미래는 바로 이러한 변화에서 시작될 것이다. 과거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인종주의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한국 사회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우리들의 생각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허남진 교수(원광대 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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