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재미' 에서는 매년 사회 이슈와 의제, 그리고 가치에 관해 지역시민들이 함께 대화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가고자 연 2회 인문학 교육 무료특강 '미디어야!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재미' 는 정연주, 진중권과 함께 하는 언론과 정치, 그리고 나꼼수 란 주제로 상반기 무료특강을 마련했다.
 지난달 25일, 진중권 교수의 '파타피직스(pataphsics) 입문' 에 대한 강연은 사전신청 없이 당일 선착순으로 입장해 들을 수 있다. 때문에 기자는 강연 시작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강연장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은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할머니 등 연령대를불문했다. 기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 할머니는 "꼭 서울프레스 센터에 온 것 같다" 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파타피직스는 20세기 중반 유럽의 지성계를 풍미하던 신 학문으로, 이 용어의 창시자는 프랑스 극작가 알프레드 자리라고 한다. 파타피직스는 메타피직스(metaphysics)의 페러다임이고 메타피직스는 흔히 형이상학으로 옮기는데, '메타meta' 는 이후의 의미를 가진 뜻이란다.
 

 
그리스어에서 '이상' 을 가리키는 것은 '파타pata' 이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말하자면 파타피직스야 말로 진짜 형이상학적인 셈이라고 했다. 형이상학은 감각세계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탐구하는데 메타학문의 머리위에 올라앉아 그것을 굽어보는 최고의 학문이 바로 파타피직스라고. 기자는 이게 대체 무슨 학문이라는 거지? 하고 감을 못 잡아서인지 의문을 품었다.
 "사실 파타피직스는 온갖 우스꽝스러운 것과 부조리로 가득 찬 사이비철학 혹은 과학을 가리킵니다. 파타파타피직스는 과학적 연구라기보다는 예술적 유희에 가까워요. 다다이즘이 연출하던 부조리와 무의미의 미학을 닮았어요. 철학과 과학영역에서의 다다이스트 퍼포먼스인지도 모르죠." 라고 진 교수는 의미를 설명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파타피직스의 근접한 예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 한창 인기가 있었던 인터넷 유머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을 예로 들었다. "전산학의 방법은, 코끼리를 low pass filter에 통과시킨다. 그럼 고기리 가 나온다. 고기리 에 circuiar right shift연산을 한다. 그럼 리고기 기 된다. '리고기 를 증폭비5인 Non-invert OP-Amp 회로에 통과시킨다.' 그러면'5 리고기' 가 된다. 이제 오리고기를 냉장고에 넣는다." 이와 같이 양자역학 등의 방법으로 청중들에게 파타피직스를 설명했다.
 이어 진 교수는 "파타피직스는 물론 이 가벼운 농담보다 더 진지합니다. 하지만 심령학이나 UFO학 같은 파타사이언스보다는 훨씬 덜 진지해요. 가령 심령학이나 UFO의 연구자들은 유형이나 UFO 존재를 믿거나, 혹은 적어도 남에게 믿게 하려 애쓰죠. 하지만 파타피지션은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도 믿지 않고 남이 자기의 이론을 믿어주기를 기대하지도 않아요" 라고 덧붙였다.
 강의실 스크린으로 전철에서 졸 때 머리를 고정시켜주는 헬멧, 눈에 안약을 넣는 깔때기 등의 사진을 보여줬다. 기발하지만 실용성이나 상품성은 전혀 없는 발명 도구들이었다.
 "2%의 편리함을 위해 98%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도구들이라고 할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파타피직스가 있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상황에 따른 배경음악이 들리잖아요. 실제 현실 상황에서도 똑같이 배경음악이 나오게 하는 거예요.(웃음) 영상이나 장비를 동원해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모든 면에서 무리가 있지요. 여러분들이 대신 해봐도 될 것 같네요.(웃음)"

파타포와 닌텐도- "현대인은 파타피지컬
한 종(種)이 되어가고 있다"


 "파타피직스가 메타피직스의 패러디라면, 파타포 는 은유를 의미하는 메타포의 페러디라고 할 수 있지요. 과거의 시인과 화가들이 메타포의 대가였다면, 현대의 파타피지션들은 파타포의 명인이라 할 수 있어요. 파타포는 그저 몇몇 괴짜들의 해괴한 지적 유희에 불과한 게 아니죠" 라며 오늘날 그것은 대중의 일상을 지배하는 체험이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진중권 교수는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쇼가 현대인은 파타피지컬한 종(種)이 되어가고 있다" 라는 말을 했다고도 했다.
 닌텐도의 역사는 게임의 상상력이 메타포에서 파타포르로 변모해왔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했다. 이어 진 교수는 "닌텐도 위(wii)는 발전의 또 다른 단계라고도 할 수있어요. 예전의 비디오 게임에서 인간은 가상현실 속에 가상으로만 들어갈 수 있었죠. 하지만 동작 감지 장치가 장착된 닌텐도 위의 등장으로 인간은 현실의 육체를 가지고 그곳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죠." 라고 말했다.
 

디지털의 광우(Folie)- 허경영 현상

얼마 전 젊은이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허경영의 공중 부양사진, 홍대 콘서트 대자보가 화면에
띄어졌다.
 진 교수는" 이 콘서트에 저도 가봤어요. 홍대 앞 카페를 빌린 공연장에서 발 디딜 틈도 없이 홀을 가득 메운관객들이 인상 깊었어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허경영!허경영!" 을 외쳐댔죠(웃음) "라고 말했고 청중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진 교수에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연장 뒤쪽에 조용히 지켜보고 앉아 있던 노인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희한한 관객 분포는 허경영 신드롬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죠. 무대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에게 허경영은 그저 새로운 '개그맨' 일 뿐이죠. 그들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개그에 열광하고 있던 거예요. 반면 뒤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허경영은 정치인 인 것이죠. 즉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신과 업적을 계승한 민주공화당의 총재이시고, 존경하는 지도자의 정치행사에 초대받아 왕림한 것이죠.(웃음) 자신들의 지도자가 사랑받는 것을 보러 왔으나, 그 인기가 매우 비범한 성격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거북스러워하는 중이었을 겁니다" 라는 진 교수의 설명을 들으니, 기자도 파타피지컬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됐다.

 

 개그와 정치는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정치인을 소재로 한 개그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개그맨 배칠수는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등의 정치인 목소리를 흉내낸다. 그렇다, 그가 아무리 똑같이 흉내낸다고 해도 정치인으로 착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허경영은 어떤가요? 그의 인격 속에서 개그맨과 정치인은 하나로 통합되어 있어요.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개그예요. 그의 인기비결은 진지한 정치와 하릴없는 개그의 모순적 결합에 있습니다. 허경영을 대 하는 젊은이들의 태도 정확히 이것이죠. 파타피지컬."
 우리 젊은 세대가 허경영에게 열광한 적이 있지만 그때도 결코 허경영이 하는 말이 진실이나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들은 허경영의 말이 순도 100%의 헛소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 마치 그의 말을 진짜로 믿는 듯 이 행동합니다. 허경영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태도는 파타피지컬 한 것이지요" 라고 말했다.
 이 새로운 취향의 등장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 교수는 "은유와 사실, 가상과 현실을 중첩시키는 '파타포' 는 오늘날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원리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게다가 모바일 기술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라도 현실의 층위에 가상의 층위 즉 정보의 층위를 겹쳐놓을 수 있게 되었어요. 태어나서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세대들에게 가상 보기를 현실처럼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지요."
 강연을 듣고 나니, '파타포(patapo)' 는 가상과 현실이 중첩된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암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기자는 평소 진중권 교수하면 공격적이고 치밀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청중들의 다소 날카로운 질문에도 친절히 답변해주는 모습이나 마지막에 함께 사진 촬영과 사인을 해주는 모습이 친숙하고 편하게 느껴졌다. 2시간이나 진행된 열강이었지만 듣는 동안 계속 몰입된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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