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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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들은 소설 『삼국지』를 즐겨 읽는다. 지금부터 약 1800년 전의 역사 이야기이지만, 독자들은 소설 속 인물들을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친숙하게 느끼며, 더러는 한국의 역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어려서는 만화로 친해지고, 청소년기에는 논술 준비로 추천되며, 대학 시기에는 인생의 지침서로 탐독되곤 한다. 문학의 위기가 곧잘 논의되는 21세기가 되어서도 삼국지 열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우리나라에는 소설 『삼국지』가 더욱 독자를 사로잡는 듯하다. 요즘에는 만화와 게임으로 출몰하며 영화로 제작되곤 한다. 그밖에도 삼국지를 정치, 경영, 군사, 외교, 문화, 인간관계 등에 응용한 책들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중국의 고전 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은 『홍루몽(紅樓夢)』으로 치지만,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삼국지』이다. 일본에서도 『삼국지』는 수많은 애호가를 가지고 있다. 소설 『삼국지』가 이처럼 동아시아 삼국에서 인기가 있는 것은 확실히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주목할 만하다. 『삼국지』는 동아시아가 공유한 최고의 문화 콘텐츠이다. 이들 상황을 보면, 약 600년 전에 만들어진 소설은 시대와 문화가 달라진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설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중국의 삼국시대는 220년부터 280년까지 60년에 불과하다. 삼국은 위, 촉, 오 세 나라를 말하며, 이들은 각각 220년, 221년, 222년에 건국하였다. 촉은 263년 위에 망하며, 위는 265년 서진에 망하며, 오는 280년 서진에 통합된다. 그러나 세 나라가 건국하기 이전에 이미 주요 인물들이 활동하고 관도전과 적벽전 등 본격적인 투쟁이 일어났으므로 관습적으로 삼국시대는 184년(황건의 난)부터 280년(오의 멸망)까지 약 백년을 친다.
 소설은 삼국의 투쟁과 흥망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역사 이야기이다. 다만 인물을 생생하게 부각해내고, 사건의 전후 맥락을 구체적으로 연관시키고, 문장을 쉽고 유창하게 써서 전개함으로써 독자들이 흥미진진한 내용에 빠져들게 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즐겨보는 사극과 유사하다. 세종과 이순신과 장옥정이 과연 저랬을까 의구심이 들지만 기본적인 뼈대는 역사서에서 빌려온다. 말하자면 뼈대만 남은 역사에 살을 바르고 피가 돌게 하여 생생하게 살려내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에 가장 성공한 것이 『삼국지』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소설이 역사에 비해 얼마큼의 허구가 있는가가 종종 화제가 된다. 청대 장학성(章學誠)은 '칠실삼허'(七實三虛)론을 내놓았다. 사실 70%에 허구가 30% 차지한다는 의견이다. 소설에서 기막히게 재미있는 부분은 허구라 보면 된다.
 삼국에 대한 정식 역사서는 서진 때 진수(陳壽)가 썼다. 그의 아버지가 제갈량의 부하였기 때문에 진수는 삼국시대를 겪었다. 이후 북송 때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에서 삼국시대의 사건을 연월에 따라 정리하였다. 그리고 이미 당대부터 삼국시대 이야기가 시장의 이야기꾼에 의해 공연되기 시작하였다. 원나라 때는 여러 가지 희곡으로 각색되어 무대 위에 공연되었다. 이러한 일은 역사를 소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문화는 대중이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전히 흡수된다. 이야기꾼이 쉽고 재미있는 말투로 삼국 이야기를 할 때 역사는 비로소 뿌리가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원말 청초 때 나관중(羅貫中)이 삼국의 흥망성쇠를 통합하여 소설로 서술하였다.
 
 소설의 구성
 
 소설은 모두 120회로 되어 있으며, 전체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여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은 난세의 시작과 영웅들의 등장(제1회~제21회)이며, 둘째 단락은 조조의 북방 통일(제22회~제33회)이며, 셋째 단락은 적벽대전(제34회~제50회)이며, 넷째 단락은 유비의 서촉 평정(제51회~제72회)이며, 다섯째 단락은 영웅들의 퇴장과 제갈량의 남정북벌(제73회~제104회)이며, 여섯째 단락은 진(晉)의 삼국 통일(제105회~제120회)이다.
 소설은 비록 위, 오, 촉 등 세 나라의 대립과 투쟁을 그렸지만, 그 중심은 위나라와 촉나라의 대립이다. 오나라 역시 두 나라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지만, 실제 오나라는 촉나라와 연합하여 활동한 부분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소설은 조조를 중심으로 한 위나라와 유비를 중심으로 한 촉나라 위주로 그려졌고, 이러한 큰 구도 속에 수많은 인물과 사건이 전개된다.
 소설의 중심부분은 제21회에서 제57회까지이다. 여기에는 관도전과 적벽전이 포함된다. 이 부분 이전에는 군웅이 등장하지만 아직 중심인물과 사건이 전개되지 않았으며, 이 부분 이후에는 천하가 삼분으로 정착되어 상대적으로 국지전이 많다.
 
 왜 촉이 주역인가?
 
 "『삼국지』는 세 번 던진다"는 말이 있다. 책을 읽다가 더 이상 재미가 없어져 책을 던지고 안 본다는 뜻이다. 첫 번째는 관우가 죽을 때(제77회)이고, 두 번째는 유비가 죽을 때(제85회)이고, 세 번째는 제갈량이 죽을 때(제104회)이다. 이러한 점만 보아도 소설의 중심은 유관장 삼형제와 제갈량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위 : 오 : 촉' 세 나라의 국력은 '5 : 2 : 1'였다. 인구, 인물, 영토, 군사력 등의 측면을 종합하여 볼 때 삼국 가운데 위나라가 가장 강성하였고, 촉나라는 위나라의 1/5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촉을 중심으로 하여 서술하였을까?
 역사는 이미 지나갔지만 이를 해석하는 문제가 남았다. 세 나라 가운데 어떤 나라를 정통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달리 말하면 조조와 유비 가운데 누구를 이상적인 군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역사서와 달리 소설에서는 '유비를 높이고 조조를 낮추는'(尊劉貶曹) 의도가 뚜렷하다. 조조는 권모술수에 능란하고 황위를 찬탈하려고 하였지만, 유비는 정치적 관용과 도덕적 이상으로 미화되었다. 조조는 "내가 천하 사람들을 배반할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반하지 않도록 하리라"(寧敎我負天下人, 休敎天下人負我)고 말했지만, 유비는 "내가 죽을지언정 어질지 않고 의롭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吾寧死, 不爲不仁不義之事)라고 말했다. 비단 유비 한 사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유비를 칭송하기 위하여 소설은 촉나라도 찬양하고 있다. 어진 군주에 현능한 신하는 서로를 신임하고 단결하며, 조조 진영은 물론 손권 진영보다 우월한 집단으로 등장한다. 결국 소설은 유비를 전통시대의 이상적인 인군(仁君)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관중이 소설을 쓰던 원말 명초는 몽골족이 지배할 때로 그 지배를 받는 한족의 의도가 반영되었다. 예컨대 삼고초려 때 집을 나오며 제갈량은 "한실이 흥할 것이오!"(漢室可興矣)라고 했는데 이는 곧 원나라 시기 한족들의 마음이기도 했다. 명말 청초에 모종강이 소설을 개작할 때에도 명나라의   멸망에 대한 울분을 소설에 반영시켰다. 『삼국지』에 깃든 '조조 때리기'와 '유비 높이기'는 한족의 부흥을 열망하는 정서와 깊이 닿아있다.
 
 현대적 의의
 
 시대와 문화가 달라진 오늘인데도, 왜 많은 사람들이 소설 삼국지를 읽는 것일까. 노신(魯迅)은 『초한지』처럼 두 나라로 너무 단순하지 않고, 『열국지』처럼 여러 나라로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인생 자체가 싸우는 전장(戰場)과 같고 서바이벌 게임장 같기 때문에 전쟁 이야기가 독자를 잡아끈다고 한다. 이밖에도 반전과 지략이 주는 재미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의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사회의 특징을 잘 구현하고 있어 오늘의 현실에도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국가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총체적으로 그려내고 인간관계의 룰을 파악한다는 일은 소설이든 다큐멘터리든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작품은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실은 의도된 조작을 거치거나 왜곡되기 쉽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 교육과 상품광고와 언론 조작이라 할 수 있다. 허위가 난무하는 세상을 바르게 보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삼국지』는 백년의 기간 동안 활동한 인간군상으로 충성과 신의, 모략과 배반이 이루어지는 만화경을 그려낸다. 소설은 아예 병불염사(兵不厭詐)라고 말한다. 세상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뜻이다. 이런 이유로 어떤 사람은 모략과 배반이 난무하는 악서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의리와 충정으로 난세를 환히 밝히는 사람들도 많다. 또 배반과 충정은 상대적이어서 상황에 따라 달리 평가된다.
 두 번째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전범이다. 최근 미국의 대학연구소에서 발표하기를 사람의 성공은 능력 15%에 인간관계 85%라고 한다.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한 데도 학교의 교과목에는 들어있지 않다. 예컨대 잠자는 장비를 죽인 범강과 장달이 그 목을 들고 오나라에 바친다. 그러나 손권은 범강과 장달을 죽여 그 목을 촉나라에 보낸다. 같은 일이 위나라에서도 일어난다. 사마소의 하수인 성제가 황제(고귀향공)를 찔러 죽이지만 사마소에 의해 살해당한다. 범강과 장달과 성제는 사태를 잘 판단하고 실행하였지만 더 큰 관계의 그물망을 보지 못하였다. 『삼국지』는 인간관계의 작은 그물망 위에 얽힌 큰 그물망을 보여준다.
 세 번째로 소설은 용기와 지혜를 격발하는 자기계발서이다. 유비, 조조, 손권 등은 모두 맨주먹에서 시작하였다. 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증가시키는 근원적인 힘은 용기와 지혜였다. 유비가 발전해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제갈량이었다. 조조가 군웅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군사를 잘 부리고 사람을 잘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손권 역시 자신을 낮추고 주유와 노숙 등 인재를 광범위하게 흡수하여 조조를 견제하고 유비를 이겼다. 이들이 국가를 이루어가는 과정은 사업가가 기업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세상은 난세이고 믿을 놈은 하나 없다. 조조는 망매지갈(望梅止渴)의 지혜와 분서불문(焚書不問)의 관용으로 북방을 통일한다. 유비는 비육지탄의 분발과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겸허함으로 대업의 초석을 닦는다. 손권은 지균상증의 노숙, 장간도서(蔣幹盜書)의 주유, 괄목상대(刮目相對)의 여몽을 얻어 성장한다. 하다못해 여포도 원문사극(轅門射戟)으로 사태를 원만히 처리하며, 양수는 계륵(鷄肋)으로 조조의 의도를 간파하며, 백미(白眉) 마량은 유비에게 근거지를 안정시킬 책략을 내놓는다. 관우는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의 용맹과 화용도(華容道)의 의석(義釋)으로 천고에 이름을 남긴다. 와룡 제갈량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결단으로 군기를 확립하고 초선차전(草船借箭)과 공성계(空城計)로 지혜의 화신이 된다. 어느 누구 하나 게으른 자가 없고, 지혜를 다하지 않은 자가 없고, 용기를 쏟아내지 않은 자가 없다. 『삼국지』는 난세를 살아가는 법을 말하고 있다.  
  서 성 교수(열린사이버대학교)
 <필자소개>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와 동대학원 석사 졸업, 북경대학교 박사학위 취득
 · 현재 열린사이버대학교 교수
 · 저서로 『양한시집』,『한 권으로 읽는 정통 중국문화』,『중국문학의 즐거움』(공저),『삼국지, 그림으로 만나다』등과, 역서로 『그림 속의 그림』,『다리가 여섯이면 더욱 빠르지』,『대력십재자 시선』,『한시, 역사가 된 노래』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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