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어도 이 이야기는 알고 있는 사람은 제법 있는 듯하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 유대인이 길에서 강도를 만나 심한 상처를 입고 길가에 버려졌다. 그 옆으로 제사장, 서기관, 사마리아인 세 사람이 차례로 지나가게 되는데, 당대 최고 지위를 누리던 제사장과 서기관은 그를 돕지 않고 지나친다. 반면 유대인이 잡종이라며 천대하는 사마리아인은 그를 치료하고 인근 주막에 데려간다. 사마리아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며 그를 돌봐줄 것을 부탁한 후 '돈이 부족하거든 돌아와서 잔금을 치르겠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마친 예수는 제자들에게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제사장과 서기관을 닮아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쿼바디스>는 한국 교회가 갖고 있는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말이 어두운 면이지, 사실 온 국민이 알고 있는 부분이다. 교인 수에 목매는 교회, 교회 세습, 부도덕한 목사 등 스크린에 비치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은 참담하다.
 <쿼바디스>는 오늘날의 교회를 기업에 빗대 표현한다. 교인 수에 연연하고 교인들의 입맛에 맞춘 설교가 주를 이루고 있는 한국 교회의 모습은, 기업이 소비자를 모으고 소비자 맞춤형 상품을 내놓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대형 교회는 지역 교회와의 소통을 거부한 채 건물을 확충하고 치장하는 것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개척교회의 재정난은 안중에도 없다. 설교는 죄에 대한 경고와 정죄의 말씀 대신 복(福)과 평안의 말씀으로 가득하다. 이에 대해 일부 목사들은 '교회가 기능적 힐링 공간이 되어 간다'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22일(현지시각) 성탄절을 앞둔 연설에서 세속적으로 변해가는 바티칸 성직자들을 거세게 비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은 한국 교회에 전하는 의미가 크다.
 물론 교회만의 잘못은 아니다. 장학금, 급여 등 풍족한 복지 인프라가 마련된 대형 교회만을 선호하는 기독교 신자에게도 문제가 있음은 분명하다. 교인들이 죄에 대해 경고하는 설교를 기피하고 봉사를 꺼려한다면 기독교는 언제까지나 개독교로 불려질 것이다.
 한국 교회 그리고 신자들이 기독교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할 때다. 기독교가 언제부터 복의 종교였는가. 교회는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예수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강도 만난 자를 외면한 제사장이나 서기관들과 다를 바 없다. 예수는 제사장이나 서기관이 아닌 사마리아인을 선택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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